백구 워리, 돈 워리

by 혜윰의 해밀

[심오재일기] 2022.4.23.

백구 워리, 돈 워리


어느덧 십오륙 년을 걸은 동네 산책길이다. 빤한 길인데도 날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새로 돋고 피는 풀과 꽃들 덕분이다. 어느 날 불쑥 솟아난 나무처럼 새로 생긴 집들이 시선을 끌기도 하고, 거기에 나날이 커 가는 강아지 한 마리가 더해졌다. 외로운 산책길에 반가운 동무가 생긴 셈이다.

동네 어느 집 울타리 가에 매인 백구다. 저도 외롭고 나도 외로워, 우리는 스치는 길 위에서 서로를 알아본다. 조그만 강아지였을 때부터 추운 바깥에서 자라더니 어느덧 중형견이 되었다. 밖에서 홀로 겨울을 나는 그 개가 못내 안쓰러웠는데, 그나마 요즘 날이 따뜻해져 마음이 조금 놓인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늘 개가 있었다. 개가 없으면 그렇게 외롭고 적적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 다녀왔을 때 어쩌다 개가 없으면 마음이 푹 꺼졌다. 대개 죽었거나 보신탕감으로 끌려갔을 터였다. 다행히 부모님은 곧 새 개를 데려와 마당에 놓아두셨다.


나는 겨울이면 그 개들이 추울까 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엄마가 주무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동생과 함께 마당에 있던 개를 데리고 들어와 내 이부자리에서 재우곤 했다. 다 큰 마당개였으니 얼마나 더러웠을까. 그래도 그때는 더럽다는 생각보다 안쓰럽고 가엾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철이 없었다. 추운 겨울, 이불 호청을 빨아 풀 먹이고 다듬질해서 새로 갈아 꿰매야 했을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개만 걱정했다. 엄마는 개들은 사람만큼 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나는 내가 추우니 당연히 개도 추울 거라고 여겼다.


세월이 지나면서 개들에 대해서는 잊고 지냈다. 그런데 요즘 나를 반기는 이 녀석을 보니 예전에 키우던 개들이 다시 떠오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선물 받아 17년 동안 우리 가족으로 살다 떠난 깜비. 말티즈였던 그 녀석도 털이 하얀 백구였지만 코가 유난히 까매서 ‘까만 코’, 곧 깜비라 이름 붙였었다.


친정엄마에게서 전해 들은, 나의 아기 적 일화 속 진돗개도 백구였다. 겨우 걸음마를 하던 아기가 너른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개를 따라다니며 “백구 워리, 백구 워리” 부르며 놀았다는 이야기.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절을 지금껏 마음속 파라다이스처럼 간직하고 있다.


아무 걱정 없이 그저 강아지처럼 즐거웠던 시절. 언제나 내 외로움과 불안을 잠재워 주던 메리, 베스, 토니, 쫑 같은 개들. 나를 반기던 녀석들의 천진한 눈빛과 힘차게 펄럭이던 꼬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돈 워리, 비 해피!"

녀석들은 지금쯤 다 하늘나라에 있을까. 우리와 함께 살다 떠난 찌롱이와 태평이, 마리, 그리고 머지않아 떠날 치요 같은 고양이들도 천국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언젠가 어느 신부님께 여쭈어 본 적이 있다. 식물과 동물에게도 혼은 있지만 그것은 ‘생혼’이나 ‘각혼’이라 하여 인간의 ‘영혼’과 달리 죽으면 소멸된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다 같은 혼인데 어떤 혼은 살아남고 어떤 혼은 사라진다니. 그저 고개만 갸우뚱하고 말았다.


그 뒤로 이런저런 공부를 하며 소울, 스피릿, 프시케, 프네우마 같은 말을 얻어들었고, 감각혼이니 이성혼이니 하는 개념이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알아도 여전히 아리송하다.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이 익숙해지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소위 이성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개보다 나을 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영혼이 개나 고양이의 혼보다 반드시 더 고귀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 생각 앞에서 내 영혼은 더욱 아리송해진다.


그나저나 이 녀석의 이름은 토리라고 한다. 처음에는 반가운 마음에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돌아왔는데, 언젠가부터는 육포를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매일 한 개씩 주게 되었다. 그랬더니 전에는 그저 내 존재 자체를 반가워하던 녀석이, 요즘은 휘어 도는 길 어귀에서부터 내 기척을 알아채고 꼬리를 치며 짖어댄다. 팔짝거리고 오줌까지 찔끔거리다가도 육포를 주면 낼름 물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어느 날부터 토리는 나보다 내 주머니를 먼저 반긴다.


그래도 토리는 요즘 내 산책길의 반가운 동무다. 토리가 없었다면 이 길이 얼마나 심심했을까. 만약 천국에 개와 고양이가 없다면, 그곳은 얼마나 적적할까. 날마다 새로 돋고 피어나는 저 식물들이 없다면, 그곳은 또 얼마나 황량할까.


만약 그곳에 백구 깜비, 태평이와 치요 없다면, 그곳은 과연 천국일까.


월, 수, 금 연재
이전 05화사라진 110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