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본인의 쓸모에 매우 예민하다. (첫 글에서 말했지만) 자신의 쓸모를 걱정하고 전전긍긍하며 가끔 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엄마도 할머니도 그렇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본인의 중국 여행을 앞두고 뇌졸중이 왔다. 뇌졸중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고2가 잘 기억이 안 난다. 할머니가 어느 날 병원에 입원했고 나는 독서실을 가고 엄마는 학원과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나는 한 게 없다. 어릴 때 내 감정이 어땠는지 기억이 안나는 이유는 내 현실보다 공부와 학교에 집중했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누가 할머니 이야기만 하면 눈물을 쏟지만 감당이 잘 안 되는 큰 일이었다. 엄마는 어땠을까. 본인의 엄마가 팔다리를 못 움직이고 앞으로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말이다. 그 이후로 엄마는 할머니 옆에서 병간호와 식사와 말동무를 하며 엄마의 삶의 대부분을 할머니를 위해 보낸다. 십 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나는 감히 그 마음에 간섭하지 않는다.
엄마의 마음 말고 내가 관찰한 할머니는 이렇다. 아프기 전에 할머니는 고집이 세고 친구가 꽤 있었다. 할머니는 세 자매였고 할머니의 할머니 친구들 한복집 할머니 애란할머니 등등 과 화투를 치고 만나러 갈 때 나도 따라다녔다. 할머니는 엄마 학원에서 자판기와 매점관리를 했다. 나는 옆에서 핑클빵 국진이빵 포켓몬 빵을 차례로 얻어먹었다. 할머니가 아프면서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돈과 사람이었다. 자신이 아프니 사람들이 오지 않고 아파서 돈을 벌지 않으니 다들 무시한다고 했다. 엄마와 내가 아니라고 백번 말해도 고집이 센 할머니는 여전히 고집이 세다.
원래는 요양사분이 오시지만 우리 할머니는 내가 한국에 오기 전 요양사 분과 대판 싸우셨다. 엄마에게 듣기론 1) 할머니가 요양사분이 오셔서 하는 요양사 분의 가족 이야기나 밥 먹은 이야기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듣고 싶지 않으셨고 2) 치매 예방을 위해 할머니와 구구단과 한글 공부를 하는데 엄마가 추가 비용을 지불한 일이 아니므로 제대로 하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과 미안함이 있었고 3) 할머니가 해달라는 대로 안 하고 요양사 분도 할머니만큼의 고집이 있으셨던 것 같다. 할머니의 우아함을 지켜드리고 싶으니 구구절절 설명은 안 하겠지만 할머니 옆에서 오래오래 있겠다고 하더니 화나서 갔다며 꼭 한마디를 덧붙이시는 걸 보면 정도 많이 들고 그만큼 배신감도 컸나 보다. 할머니는 외로울 테다. 요양사분의 이야기를 듣는 게 고생스러웠던 거보다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랬을 테다. 구구단과 한글 공부를 도와줘서 고마운데 어떻게든 폐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고집을 부렸을 테고 옆에 계속 있겠다는 말도 믿었을 테다.
할머니는 본인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기 때문에 엄마가 절대 혼자 하지 말라고 한 일들을 하려고 한다.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으려고 한다거나, 옷을 스스로 갈아입으려고 하거나, 화장실을 우리가 없을 때 가려고 한다거나, 워커 없이 걷지 못하고 팔다리에 힘이 없는 할머니가 하기에 위험한 일이다. 할머니는 본인이 할 수 있다고 왜 다 못하게 하냐며 성을 낸다.
할머니는 아침에 꼭 자전거를 탄다. 움직이는 자전거 말고 그 헬스장에서 타는 자전거 말이다. 가장 가벼운 단계로 30분을 꾸준히 탄다. 우리 집에 할머니만큼 아침 점심 루틴이 제대로 세워져 있는 사람은 없다. 일어나 아침을 먹기 전에 3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한 움큼의 약과 엄마와 꼭 같은 영양제들을 차례로 챙겨 먹는다. 그러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이를 닦고 잠시 거실 벽 의자에 앉아있으면 점심 먹을 시간이 된다.
할머니는 항상 밥을 먹고 이를 꼭 닦고 아침저녁으로 스킨로션을 챙겨 바른다. 얼굴, 목 팔과 움직이고 못 움직이는 손가락 구석구석 바른다. 잘 안 움직이는 한쪽 손으로 스킨을 손바닥에 따르기 어렵다며 화장솜을 사달라고 하셨다. 내 남자 친구는 할머니의 환심을 단번에 샀다. 겨우 30분 뵈었는데 할머니 팔과 손을 만지면서 "할머니 피부가 너무 뽀송하고 부드럽고 고우시네요"라고 했단다. 단번에 친구에서 박서방이 되었다.
나는 사주에도 역마살이 있다고 나오며 집에 가만히 못 있는 편이다. 5분이라도 나가 햇빛을 쬐거나 내 두 다리로 움직여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팔다리를 못 움직여 친구도 보러 가지 못하고 활동반경이 집에서 침대와 자전거 식탁이 되어버린 할머니를 보면 내가 그래서 자꾸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할머니처럼 의연하게 (그 사이 굉장한 좌절과 엄마의 고생과 나는 상상 못 할 여러 가지 감정이 있었을 테다) 아침에 일어나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집에 누가 잘 오지도 않는데 머리를 잘 감고 이를 닦고 스킨로션을 바르면서 스스로에게 정성을 다 할 수 있을까. 할머니 백 년 만 년 오래 살라고 팔다리가 더 나아지지 않더라도 옆에서 살아있어 달라고 손녀는 오늘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