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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Aug 16. 2022

강아지들의 집은

공간 일기 2

막 태어난 강아지들은 내 손만 한 몸을 포개고 잘 만큼의 공간을 잘 벗어나지 않았다. 가끔 자다 깨서 삐약거리고 눈을 꼭 감고 다시 자거나 엄마 강아지의

젖을 먹거나 다시 잤다. 우리는 내 옷을 개어 놓았던 서랍 하나를 꺼내서 흡수가 잘되는 패드와 수건을 깔고 강아지들의 첫 번째 집을 만들어줬다. 아직 눈을 뜨지 않아서 햇빛처럼 밝은 빛은 눈을 떴을 때 눈을 멀게 할 수 있다고 해서 노랑 파랑 꽃이 그려진 담요도 우리 위에 덮어놓았다. 그러니까 그들의 첫 번째 집은 집안의 집안의 집이었다. 하얀색 내 종아리 반만 한 높이의 게이트 안에 내 옷을 넣었던 서랍과 노랑 파랑 꽃이 그려진 지붕 아래서 여섯 마리는 꼬물거렸다.


2주가 지나고 한 마리씩 눈을 뜨면서 다리에 힘도 붙기 시작했다. 사람의 아기가 기어 다니듯 꾸물 꾸물 힘겹게 몸을 움직이던 강아지들은 그 조그만 몸의

온 힘을 다리를 움직이는데 쏟아부었다. 가끔은 한 걸음 내딛고 풀썩 다시 잠에 드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세 마리쯤 그렇게 돌아다닐 무렵 내 옷 서랍 집은 치우고 강아지들의 집은 하얀 게이트가 되었다. 내가 두 번 뒹굴면 거의 알맞은 게이트 안에서 강아지들은 여전히 한 곳에 몸을 포개고 따뜻한 잠을 많이 잤다. 강아지들이 모두 네 발을 움직여서 앞으로 뒤로 나가는 법을 알게 되자 우리는 엄마 강아지가 쓰던 작고 동그랗고 하얀색의 푹신한 쿠션을 넣어줬다. 강아지들도 사람도 보드랍고 푹신한 걸 좋아하게 태어났는지 이제 여섯 마리가 꼭 끼어서 쿠션 위에서 자기 시작했다. 쿠션이 살짝 높이가 있어서 다리가 짧은 강아지들은 폴짝 뛰어야 푹신함을 얻을 수 있었다. 하얀 집 안에 처음으로 침대라는 가구가 생겼다. 하루 이틀 지나 아가들은 그 집 안에 화장실도 생기고 화장실 대각선 방향에 물통이랑 밥그릇이 있는 조그만 식당도 생겼다.


아가들이 다 뒤뚱뒤뚱 뛰어다니고 열정적으로 삐약대며 엄마를 찾아다닐 무렵 어디선가 미끄럼틀 같은 장난감이 아가들의 발달에 좋다는 걸 봤다. 한참을 고민하다 사람 나이 2살에 타는 빨갛고 주황 초록 알록달록한 미끄럼틀을 주문했다. 가격이 싸지 않았는데 강아지들이 오르락 내리락 부산스런 모습이 상상 만해도 귀여웠다. 드라이버로 징징 몇 분 조립하고 집 안에 넣어줬다. 아가들의 집에 이제 침대도 있고 미끄럼틀도 있다. 아가들은 열심히 궁금한 까만 눈으로 미끄럼틀을 보다가 네 발로 툭툭 쳐보기도 하고 한 마리씩 거꾸로 올라가 보기도 하다가 금세 계단을 올라가 쑥 내려온다는 걸 익혔다. 많은 날에 한 두 마리씩 미끄럼틀 위에서 하얀 집 밖에 우리 집을 물끄러미 구경하고 엄마를 찾았다. 올라가면 더 많은 게 보인다는 걸 스스로 깨닫고 미끄럼틀에서 내려오지 않을 때도 많았다.


아가들이 강아지의 짖는 소리를 엉성하게 따라 하게 됐을 무렵 미끄럼틀 없이도 두 발로 게이트를 딛고 집 밖 우리 집 마루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새벽 여섯 시가 되기도 전에 눈 뜬 강아지들은 시끄럽게 우리를 찾았다. 그 맘 때 남편은 강아지들을 마루에서 잠깐 뛰어놀게 해 줬다. 우리 집 마루는 강아지들의 운동장이 되었다. 두 발로 서서 밖을 볼 수 있어도 점프해서 나오기에는 다리가 짧았던 강아지들은 마루에서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어느 때보다 우리는 마루를 쓸고 닦고 전선을 치우고 밥 먹다 흘린 걸 치우고 또 치웠다. 바닥은 깨끗하지만 소파와 테이블은 바닥에 있던 짐들이 올라와 어질어질했다. 아가들이 활동 영역을 늘려가면서 이제 각자의 집을 찾아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처음으로 네 마리를 한 번에 보내던 날 눈물이 펑펑 날 줄 알았는데 속이 시원했다. 남은 두 마리는 네 마리의 기에 눌려 종종 미끄럼틀 아래로 숨었었는데 네 마리가 사라지자 쿠션에 대자로 누워 잤다. 이제 좀 조용하게 지낼까 싶었는데 두 마리도 다음 날 아침부터 삑삑 귀를 긁어대는 소리로 우리를 찾았다. 마루를 신나게 뛰어다니다가 유난히 동그랗고 까만 눈의 한 마리가 가고 할아버지 얼굴을 한 수염 같은 털을 사진 갈색 강아지만 남았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새로운 집으로 갔는데 강아지들은 서로가 보고 싶을지 슬플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갈색 강아지가 이제 좀 더 편하게 하얀 집에서 돌아다녔다.

하루가 지나고 강아지는 집 안에 넣어 놓기만 하면 울었다. 하얀 집은 이제 침대와 화장실과 미끄럼틀이 있는 안락한 공간이 아니라 자신을 가둬놓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강아지는 마루와 계단을 올라 이층 우리가 엄마 강아지와 자고 일어나는 침실까지 오고 싶어 했다. 우리는 게이트를 치우고 마루를 다시 한번 깨끗이 정리했다. 강아지는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지내게 되었다. 우리는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소파에서 뒹굴기도 하고 공을 던져주며 놀다가 밤이 되면 이층으로 올라가서 잠에 들었다.


세상에 보이고 부딪치는 모든 것들이 신기한 아기강아지는 엄마 강아지만큼 무서운 것도 없고 해맑았다. 문 밖으로 자꾸 따라 나오려다 어느 날은 발이 조금 찡겼는데 잠깐 울다가 금방 마루에 공을 따라다녔다. 무서워하기보다 궁금해하며 한번씩 코를 들이밀고 발로 툭툭 치고 굴리고 뭐든 자꾸 입에 넣었다. 자다 깨서 눈앞에 우리가 보이면 꼬리가 안 보일 만큼 흔들며 반가워했다. 내 팔만한 크기의 강아지를 품에 안으면 고만큼보다 따뜻한 게 신기했다. 강아지는 다른 도시로 입양을 가야 해서 비행기를 태워 보냈다. 앞에 먼저 자기 집을 찾아간 다섯 마리 강아지보다 우리랑 같이 마루에서 놀고 같이 침대에서 텔레비전 보다 잠든 강아지는 자꾸 보고 싶다. 집에서 뒹굴대다가 이 구석 저 자리에서 생각이 나곤 한다. 우리 모두 건강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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