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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는 참 예쁘구나 Jul 08. 2016

나쁜 기지배

사랑, 그 위대함에 대하여

그 남자,

"난 더 이상 네가 설레지 않아."

그녀가 저에게 한 말이에요.

제 앞에서 하품이 나와도, 쌩얼을 보여도

심지어 속옷 바람이어도 

더 이상 아무렇지 않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그게 저한테는 '네가 정말 좋아'로 들려왔어요.

'나의 모든 걸 보고 사랑해줄 이는 너밖에 없어.'라고 생각됐어요.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그 여자,

10년. 참 길죠. 그 시간.

저의 이십 대를 전부 알고 있는 유일한 남자기도 하고.

그래서 더 지겨웠어요.

싫증 나기도 했고.


서른 살이 되어서 알아 버렸죠.

아 내 청춘. 내 인생. 이렇게 한 남자에게 올인해버렸구나.

앞으로 또한 몇십 년을 이 남자와 함께 지내겠지.

심심하다 정말.


그 남자,

그녀는 자꾸 새로운 설렘을 찾아요.

저보고 너 또한 새로운 사랑이 필요하지 않겠냐 말해요.

그 상황을 가만히 듣고 있는 데

대꾸도 나오질 않더라고요.

어이가 없어서.


과거에도 그녀였고

현재에도 그녀가 당연했고

앞으로도 그녀와 함께 할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사랑이 없다니요.

설렘이 그립다니요.

이걸 진짜 정신 차리라고 한 대 때릴 수 도 없고.


그 여자,

그 사람 또한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작디작은 설렘의 조각 티끌조차도 남아있지 않은 우리가

서로 연결된 거라고는 의리와 정뿐인데

이것만으로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고

그 설렘 오래 가직할 사람과 미래를 기약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러니 지금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헤어지는 거 아닐까.


그래서 결국 헤어지자 라고 말을 하고 나왔어요.

알겠다고. 알았다고. 근데 지금 너 나가면 뒤도 안 돌아보고 

널 붙잡지 않겠다고.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에게 잘 지내라고 말하고 

당당히 나왔어요.


드디어 저만의 자유를 얻은 거죠.


그 남자,

잘 지내라고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더군요.

나쁜 기지배.

눈물이 핑 돌았어요.

이렇게 하고 정말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그런 걱정도 많이 했더랬죠.

자꾸 불안하고 속상하고 아프고 그랬는데

진짜 나쁜 기지배.

곧 다시 연락이 왔어요. 

그것도 3개월 만에,

잘 지내냐며.


싸대기라도 한대 때려주고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 그러고 오려고 했는 데

그게 안됐어요.

여전히 그녀가 좋았거든요.

찌질하게도.


그 여자,

신명나게 놀았어요.

연하도 만나보고, 연상도 만나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부터 설레기 그지없었어요.

근데..

그 마음 아주 잠깐 지나가더라고요.

지루하고 싫증 나는 건 매번 같았어요.

심지어 그들은 저의 모든 걸 이해해 주질 못했죠.


나중에야 깨달은 건데

의리와 정. 그리고 십 년.

그걸 무시 못하겠더라고요.

저의 전부를 온전히 봐줄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도 새삼 알아버렸죠.


그래서 다시 연락을 했어요.

조심스럽게,

그가 그 마음 변하지 않았길 바라면서.


근데 지금 제 앞에 앉아있던 그가 

저 말고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말을 해요.

그리고는 어리고 예쁜 여자애가 그의 옆으로 앉아요.

참 작아져요.

괜히 왔구나. 그는 나를 잊고 잘 살고 있었구나.

아쉬운 건, 후회가 되는 건 나뿐이구나.

제가 제일 미웠어요, 정말.


그 남자,

가만히 만나서는 안되었죠.

저도 사람인지라 

보기만 해도 미워 죽겠는데

어떻게 돌아와서 다행이야, 여전히 널 좋아해 라는 말부터 꺼내요.

괘씸해서라도 그렇게는 할 수 없었죠.

그래서 홧김에 아는 동생을 불렀어요. 

딱 그 근처에 살고 있더라고요.

상황 설명하고

잠시만 여자친구인 척해달라 부탁해서

그 아이를 불러 옆에 앉혔죠.

소개도 시켜주고.


살짝 당황하더라고요. 아니 많이 당황해 보였죠.

내가 걔를 십 년 알았는 데,

웃고 있으면서도 눈은 웃지 못하고

혼자 막 하하호호 축하해 별 말을 다하다가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고요.

그러더니 다음 약속 시간이 다 되었다면서 

그러면서 먼저 나갔어요. 


동생에게는 고맙다고 말하고

이래저래 상황을 설명해줘야 했고,

그리고는 어찌 되었던 저는 다시 그녀를 붙잡으러 가야 했어요.

그녀의 집, 그 앞으로요.


그 여자,

길을 무작정 걷기 시작했는데

서럽더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맘이 변했는지

십 년을 알고 지냈던 사이가 3개월 만에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돼버린 건지.

그가 밉다가도 그를 탓할 수는 없었어요.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것도,

그를 놓아버린 것도,

상처를 준 것도,

모두 다 저였으니까.


무진장 후회가 되었더랬죠.


그 남자,

그녀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녁 즈음 나타나더라고요.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서는 정신없이 흘리다가

저를 보고서 놀라가지고 뒤돌아 눈물을 닦고는 저에게로 왔어요.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냐고 묻는 데.

그 상황에서 사실 그냥 껴안고 여전히 널 사랑한다 그렇게 쿨하게 말하고 안아주려고 했거든요?

근데 그게 안되더라고요.

왜 그랬냐며 묻고 따지면서

그동안의 울분이 다 터져나와 버렸죠. 그냥.

그녀가 그 말을 들으면서 펑펑 우는 데,

저도 막 눈물이 났어요.

나쁜 기지배, 나쁜 기지배..

그저 그 말을 얼마나 중얼거렸는지...


먼저 다가와서 저를 껴안아 주는 데

그게 다 용서가 되었어요.

그녀를 심심하게 지루하게 만들었던 과거의 저도 후회가 되었었거든요.

다시 돌아와서 그저,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어요.


그 여자,

후회된다 뭐다 다 필요 없고 사랑한다라는 말 한마디면 되었는 데

그걸 죽어도 말 하지 않은 제 잘못이 커요.


후회된다고 다시 돌아와 놓고

또 한 번 진심을 숨기려 했던 저 자신이 참 어리석었죠.


그가 먼저 찾아와 주고,

속마음 보여주고,

그래서 그 덕분에 한 번 더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절대 놓지 않을 그 손을 다시 한 번 꼭 잡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싶네요.


어리석은 저를 받아 준 그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죠, 뭐.


잘.. 해야죠. 더 많이. 잘 할 거예요. 진심으로.

 




히죽히죽 G

경험이 중요한 건가? 역시?


온전히 사랑하십시오.

온 맘 다해, 간절하게 :)


사진출처: 히죽히죽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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