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쑥범벅은 봄을 온전히 품고 있다. 긴 겨울을 지나고 두 번 다시 생명 움트지 않을 것 같은데 3월이 되면 어김없이 쑥은 나오고 끈질긴 생명 향을 품고 있다.
들판의 3월 초는 아직 바람이 차갑기만 하다. 차가운 바람 밑에서도 쑥은 때가 되면 자라기 시작한다. 쑥을 캐러 가려면 아직도 남은 늦추위에 단단히 무장을 해야 한다. 온갖 옷을 다 입고도 어른들 털 스웨터까지 축 늘어지게 걸치고 어그 정한 걸음으로 할머니를 따라서 들판으로 나선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만능인 시커먼 부엌칼 한 자루와 소쿠리 들고 나는 할머니 옷자락 붙잡고 나선다. 양지바른 언덕이나 둔턱에 무리 지어서 하얗게 무리 지어 피어나는 어린 쑥을 보면 "쑥이 야리다. 이렇게 야린 쑥이 좋데이 " 할머니는 시커먼 부엌칼을 들고 일본 사무라이처럼 현란하게 놀리며 적군처럼 해치우고 있었다. 할머니의 칼솜씨에 대책 없는 쑥은 쓰러져 갔고 대나무 소쿠리에는 그 하야스럼 한 쑥의 사체가 쌓여 갔다. "쑥은 참으로 질기데 다른 풀이 다 죽어 있는데도 쑥만 이렇게 살아 있제"
아버지는 6.25 전쟁 때 다리를 다친 상이용사이다. 아버지는 전쟁 때 국군 포병이었다. 당시 한국군의 포병은 제대로 된 포나 무기가 없었고 미군이 주고 간 박격포 정도였다. 박격포는 이동시마다 사람이 들고 이동을 해야 한다.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아 부대 안에서 나이가 어린 순이나 계급이 낮은 순으로 배치가 되어 2~3명이 박격포 포병이 된다. 아버지는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포병이 되었고 전쟁 기간 중 그 무거운 박격포를 들고 다니며 씨름을 해야만 했다.
휴전이 되기 몇 달 전이다. 철원부근의 금화 전투는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고지를 우리 국군이 점령하면 밤이 되어 다시 중공군에게 빼앗기는 지루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낮에서 밤이 되고 또 밤에서 낮이 되고 시간이 바뀔 때마다 고지의 주인은 바뀌고 또 아버지의 전우들은 몇 명씩, 몇십 명씩 사라졌고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아버지는 포병이라서 후방에서 진격하는 국군을 지원하기에 다소 위험을 피하고 있었다. 이 지루한 전투는 몇 달 동안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사라지는 전우는 더더욱 늘어만 갔다.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전쟁을 중지하라는 말대신에 전투인원이 부족하여 포병도 소총을 들고 진지를 공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아버지는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하고 가슴에 한처럼 가지고 살았다. 그날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맑았다. 총소리 포소리가 울리지만 소리가 없는 무음의 세상 속이라면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평화롭기만 하는 하늘이다. 바람이 살랑거릴 때마다 고향집 대문 앞 코스모스의 하늘거리는 모습이 생각나는 날이었다. 소총 한 자루만 들고서 적 진지를 향해 가파른 훍무덕이 언덕을 넘어서 앞으로 내달렸다. 정신없이 앞 만보고 달렸다. 한 오십 보정도 뛰었을까 그때였다. 정확하게 그 순간이었다. 아버지 인생의 변곡점이 되는 순간이다. 순간은 그렇게 짧게 이루어졌다. 갑자기 발을 헛짚듯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다시 일어나려고 해도 발이 헛돌았고 왼다리가 힘 없이 축 늘어졌다. 다시 온 힘을 다해서 움직이려고 해도 몸은 점점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마음만 허우적거릴 뿐 몸은 가늘고 길게 늘어져 가기만 했다. 그리고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정신을 잃었다.
소쿠리에 한 움큼 캐놓은 쑥을 맑은 우물물을 한 바가지 길어서 세숫대에 붓고 함께 담가둔다. 찬물 속에서 활짝 피기도 하지만 또 쑥향을 더 강해지기 위함도 있다. 쑥이 파랗게 살아나는 한 식경을 지나 찬물에 담긴 쑥을 손으로 휘 휘 저어 한 움큼씩 건져 다시 소쿠리에 물기가 빠지게 받쳐둔다. 물기를 머금은 쑥은 맑은 봄향기와 푸른색이 더욱 짙어진다. 대부분의 쑥은 된장을 풀어서 국을 끓이지만 조금 시간이 있고 또 다른 간식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땐 할머니는 늘 밀가루 쑥범벅을 만들었다. 쑥범벅이 쑥국에 비해 손길이 더 가고 노력이 더 필요하지만 당시 아이들을 위한 간식거리가 늘 부족한 시절이라 쑥범벅은 요긴한 간식이다. 쌀가루와 쑥을 버무려야 하나 당시 쌀은 귀한 대접을 받는 시절이고 우리 집은 쌀보다 밀가루가 많아서 할머니는 밀가루로 쑥 범벅을 만드셨다.
밀가루포대에서 곱고 하얀 밀가루 한 바가지를 퍼와서 소금을 한 숟갈 넣고 잘 섞는다. 밀가루 위에 물기가 덜 빠진 어린 쑥을 놓고 세월이 지나간 할머니 손으로 살짝살짝 흔들어 쑥잎에 밀가루가 묻을 수 있게 저어준다. " 쑥에 밀가루가 많이 묻으면 않덴데이 개떡이 된다" 할머니는 쪽진 흰머리를 올리고 웃으면서 "개떡은 개나 주는 거데이"
아버지는 죽고 싶었다. 이제 스무 살도 되지 않았는데 다리 하나를 잘라야 한다고 한다. 아버지의 푸르디푸른 청춘에 비하면 죽음에서 살아온 대가는 너무 혹독하고 허망하기만 했다. 어쩌면 죽은 자가 더 부럽기까지 했다. 차라리 죽자. 다리 없이 불구로 사는 세상 죽자고 결심을 했다. 너무 아파서 잠을 잘 수 없다고 군의관에게 떼를 써서 밤마다 수면제를 몇 알씩 받았다. 아버지는 수면제를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받은 수면제에서 반은 따로 모았다. 침대 매트리스 밑에 누런 약봉지에 넣어 남들 몰래 모았다. 한 번에 한입에 넣고 푸른 청춘을 끝내려고 천천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나 만의 비밀로 해도 비밀은 없는 법이다. 아버지의 비장한 거사는 실행도 못하고 주위에 알려져 수면제를 모두 뺏기고 수면제 처방마저도 불가 처분을 받게 되었다. 그 후 군의관이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재차 독촉이 왔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병원 5층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죽겠다고 몇 번이나 소리를 질렀다. 그 고집이 통했는지 군의관도 항복하고 다리를 살리는 쪽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다리는 살아났으나 제 역할은 못하고 붙어있는 모양의 역할만 하였다. 왼다리는 무릎관절이 없어져 굽히지 못할 뿐 아니라 관절이 없는 만큼이나 다리가 짧아져 걸을 때마다 절룩거렸다. 그 절룩거림으로 인해 아버지의 인생도 평생 불구처럼 살게 되었다.
밀가루가 묻혀 있는 쑥을 밥 할 때 밥 위에 살짝 올려둔다.
아궁이에 솔잎을 모아서 밑불을 만든다. 솔잎이 타고 밑불이 커져서 솔향을 품은 연기가 부엌 안에 피어날 때 잔가지와 장작을 넣어서 큰 불을 지펴 가마솥에 밥을 한다. 장작불에서 "탁 탁" 소리가 나고 밥물이 끓어 고소한 밥향이 솥에서 새어 나오면 가마솥 겉 표면으로 밥물이 넘쳐흘러 나온다. 뜸이 들기 전 밥 위에 밀가루에 버무린 쑥을 할머니는 가만히 조심스럽게 올려놓는다. 밥 위에 그냥 놓는 게 대부분이지만 손님이라도 오시는 날에는 하얀 삼베 천을 깔고 밀가루 쑥'을 놓기도 한다. 나는 밥알이 묻어있는 쑥범벅을 좋아했다. 밥알과 쑥범벅을 함께 먹는 묘한 맛보다 느낌을 좋아했다. 할머니는 솥에서 밥을 푸기 전 개떡 같은 밀가루 쑥범벅을 꺼내면서 뽀얗게 솟는 밥김을 손으로 "휘 휘" 저으며 "얘야 어른부터 드려야지 어른이 먼저데이" 하면서도 개떡 같은 쑥범벅을 한쪽을 "뚝" 떼어서 부뚜막에 앉아서 코를 빠트리고 있는 나에게 늘 먼저 주셨다.
아버지는 세상이 개떡 같다고 했다. 전쟁이 끝난 세상은 나라도 망했고 사람들도 모두 망해 있었다. 휴전은 되었지만 살아있는 자들은 삶과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망한 세상은 전쟁에서 다리를 절룩거리며 돌아온 용사에게 신경을 써줄 여유가 없었다. 또 절룩거리는 한쪽다리를 끌고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전쟁용사고 상이용사라 해도 누구도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다들 자기도 살기가 힘든 세상이 되어 누구의 처지를 생각할 여력이 없었고 돌아보고 살펴 줄 누구도 없었다. 아버지는 스무 살이 되기 전 군 병원에서 느꼈던 절망을 또다시 느꼈으나 식솔이 딸려 그때처럼 삶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 절망의 파도는 그때보다 더 높고 깊이 다가왔다.
아버지는 "세상이 개떡 같다" 말할 때마다 담배를 품에서 꺼내 피운다. 한숨을 깊게 마시고 길게 숨을 내쉴 때마다 방안 백열등 불빛 밑으로 담배연기가 뽀얗게 피워 오르고 담배향이 방안에 서서히 퍼져 나간다. 아버지의 답답한 현실만큼 뽀얀 연기가 방안에 가득 차고 전등 빛이 희미해진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들어마시고 뿜기를 반복하여 꽁초가 된 담배를 재떨이에 버리고는 텁텁한 입을 달래기 위해서 인지 개떡 같은 쑥범벅을 입에 넣었다. 어쩔 수가 없는 개떡 같은 세상과 개떡 같은 쑥범벅을 함께 입안에 넣고 힘주어 "꾹꾹" 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