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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30. 2015

스토너 - 존 윌리엄스' 지금 이 시절이 지나고 나면'

세상의 일부 -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의 주인공 월리엄 스토너는 40년간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실제 작가 존 윌리엄스는 대학에서 30년 동안 문학과 문예창착을 가르쳤다. 실제와 뒤섞이는 이야기는 작가 스스로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지 않았음을 모든 것이 허구임을 재차 강조한다. 작가는 공군 소속으로 복무하기도 하였는데 내가 알고 있는 로맹 가리와 생텍쥐페리 또한 공군으로 복무하였다. 그들의 작품세계에서 느꼈던 공통된 소감은 동떨어진 곳에서 관망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그저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을 뿐이란 생각이 든다.

순간과 순간이 나란히 놓인 것 같으면서도 서로 소외되어 있어서, 그는 자신이 시간과 동떨어진 곳에서 고르지 못한 속도로 돌아가는 커다란 디오라마를 보듯이 시간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p24)



열아홉 살 스토너는 농부의 커다랗고 투박한 손을 가졌다. 대학 도서관의 서가들 속에서 돌아다니며 책 냄새를 들이마시고 손에 쥐고 느끼며 책장을 넘기다 서투르게 찢어버릴지 몰라 조심스레 움직였다. 그는 농과대 강의를 따르지 않고 철학과 고대 역사, 영문학 강의를 더 들었다. 자신의 의식이 따르는 곳으로 과감하게 한발 내딛는다. 자신이 대학에 온 이유는 부모님의 세계와 자신이 나아갈 세계를 극명하게 갈라놓고야 말았다. 자신이 받아들인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것이 더욱 뚜렷해졌을 뿐이다.



빛은 오직 하나였을 뿐 그 빛의 그림자는 불안, 침묵, 상실감, 슬픔이었다. 누구보다 절박해졌고 무지만이 의식됐다. 졸업 후 박사과정을 밟으며 일과 공부에서 오는 차이도 있었다. 자신이 깨닫는 것의 경이와 놀라움, 흥분과 설렘은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았다. 1915년 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전쟁 선포를 하게 된다. 그는 전쟁 또한 실감하지 못하고 자원입대를 거절한다. 징병 유예 신청을 하고 대학에 남는다.

목화밭의 바구미-곡식을 파먹는 해충-, 콩줄기 속의 벌레, 옥수수 속의 좀벌레. 자네는 그런 것들을 마주 보지도 못하고, 싸우지도 못해. 너무 약하면서 동시에 너무 강하니까. 이 세상에 자네가 갈 수 있는 자리는 없네.(p46)



그는 결혼 후 오랜 세월이 흐를 때까지 그 실패의 의미를 깨닫지 못 한다. 한눈에 반한 사랑은 빛이나 차가운 빛이었다. 한 방향으로 흐를 수 없는 빛이었다. 어긋남, 불운은 예견되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받아들인 삶의 방식은 그 흐릿한 실루엣조차도 놓치지 않았던 스토너인데 이디스에게만큼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도교수였던 아처 슬론 교수 모습은 곧 스토너이기도 했다. 계속 서서히 쇠락해가다 사라졌다. 부모님은 노동에 평생을 바쳤고 평생을 바친 땅 속에 누웠다. 그는 딸 사랑했고 연구와 책을 쓰는 일, 학생들을 가르치는 보람도 느꼈다. 직관적인 깨달음은 자신의 일부분이 되어간다.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자신이었던 것을 알아간다. 학자로서 학문에 마음을 열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냈다.



딸은 모습을 보는 건 유일한 위안이었고 아내는 그를 증오했다. 그의 불합격에도 불구하고 박사학위를 얻은 워커는 또 다른 재앙이었다. 채우려는 인간 대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모습은 서로 너무나 먼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 불편한 사실은 내가 이디스나 워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그들처럼 마음이 불구인 자가 된다면 재앙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너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다. 나란히 놓이면서도 소외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중년의 스토너는 어떤 것으로부터 강요당하고 대처할 수단이 없는 문제 때문에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는 집에서 대학에서 점점 외곽으로 밀려났다. 무심했고 그저 무기력해졌다. 단조로움은 열정을 고갈시켰다. 점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고 의지력을 잃어가게 됐고 자신의 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비정하게 되물을 뿐이었다. 슬프고 공허해졌고 자신이 분리된 느낌을 갖는다. 세월이 흐르는 것을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젊음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모두가 중간의 나이에 처해진다. 나도 간과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해있을 뿐이다.

그 하얗기만 한 풍경과 나무들과 높은 기둥들과 밤과 저 멀리의 별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작고 멀어 보였다. 마치 그것들이 무(無)를 향해 점차 졸아들고 있는 것 같았다.(p253)



대부분의 연애가 나쁘게 끝나고 불륜이라면 더욱 그렇다.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껴보지 못 했던 스토너는 자신의 세미나를 청강한 젊은 강사인 드리스콜에게 빠져든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두 사람의 사랑과 공부가 마치 하나의 과정인 것 같았다. 빛이 절반밖에 들지 않는 세상에 살면서 자신들의 좋은 점들을 드러냈다. 이론적으로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지만 그럴 수 없었다. 솔직히 그런 사랑이 평생 단 한 번도 없었다 해도 동정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헌신적인 교육자라고 스토너 자신은 생각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 깊은 곳, 기억 밑에 고생과 굶주림과 인내와 고통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양심적이게 가르쳤지만 무심했고 그가 바라던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은 꿈이었다. 자신의 살아온 세월을 의식하고 있었다. 모두들 비참하고 곤궁한 생활이 한눈에 보였다. 과거의 위기와 절망의 순간을 다시금 느낄 때면 대학 안에서 어떤 믿음을 되찾아갔다. 모든 것들을 초월하는 나이가 되어갔다. 안도감과 슬픔이 교차됐다. 쇠약해졌고 의식의 가장자리에 머물렀다 이내 침묵 속으로 사라졌다.

스토너의 강의목표...
강의의 목표는 대략 1200년대부터 1500년대 사이의 작품들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몇가지 사건들이 우리에게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철학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언어학적인 어려움, 종교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어려움, 실질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이론적인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받았던 교육이 모두 이런저런 방식으로 우리를 방해할 것입니다. 경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우리의 습관이 우리의 기대치를 결정한 것처럼, 중세 사람들의 기대치도 습관에 의해 결정되었으니까요. 먼저 기본적인 공부를 위해 중세 사람들의 삶과 생각과 글을 결정했던 마음의 습관들을 몇 가지 살펴봅시다...(p315)



우리는 모두 이른 상실감에 놓인 삶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서서히 조용하게 마모되어 가는 죽음과 전장에서 단발적 죽음 간에 지니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체득한다. 전쟁의 폐혜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뭔가가 죽어버리는 것임을 조금은 깨달았다. 학자에게 평생 구축하고자 했던 것을 파괴해서는 안됨을 스스로 고민했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평생 잊으면 안 되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자신에게 내놓을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 내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 또한 거의 없다는 생각도 한다.



스토너는 자신이 버린 세계를 잃어버리고 더욱 사랑했음을 느끼기도 한다. 그가 사랑했던 것들을 두고 나아가는 세계는 '다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굶주린 눈, 엄격한 표정은 그에게도 서려있는지 모른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나 죄책감, 가책 따윈 없었다. 세월이 더 지나서는 그것마저도 분명치 않아 크게 괴로워한다. 분명 그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의 선택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최선의 선택이 아닌 누군가의 희망적 선택에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후회가 많은 지도 모른다.

공부를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로 생각하는 모습. 스토너는 지금 이 시절이 지나고 나면 결코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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