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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Apr 05. 2023

삼십세 - 잉게보르크 바흐만


침묵으로부터 생성되고 

침묵을 강요당하는 나

도저히 관통할 수 없는 나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에겐 세계라는 것이 취소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고 자기 자신까지 취소가 가능한 존재로 여겨졌다.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고 나머지 천은 놓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금에야 그는 자신도 함정에 빠져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한 줄기 섬광이 그가 지닌 모든 연관, 주변의 모든 형편을, 이별을 조명해 준다.  그는 자신이 기만당하고, 배반당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무시무시한 상심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해 줄 수 있는 것은 죽음뿐임에도,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에 대한 체험이었다. 




그의 현재를 내리누르는 대지와 바다와 태양을 사랑했다. 멜론이 익었고 그는 그것을 터뜨렸다. 갈증으로 숨이 끊어지는 듯했다.

<삼십세> 잉게보르크 바흐만 저 p20





그가 서른 살로 접어드는 겨울이 다가올 때, 머물면서 여행을 하면서 그는 도피한다. 그는 이제 어느 누구의 눈에 뜨이기도, 누군가 말을 걸어오기도 원치 않는 까닭이다. 



겪을 수 있는 모든 일을 겪고 나서, 스스로를 행복하고 안정되었다고 느끼게 된 지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에게  불가사의한 사랑이 찾아왔다. 날마다 다른 과정을 더듬는 제식 같은 고통과 죽음의 의식을 동반하고서.



그는 그녀의 이름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그녀에겐 애당초 이름이란 것이 없었다. 마치 분별없이 그를 무너뜨린 행복, 그것에 이름이 없듯이.



그는 사랑을 한 것이다. 그는 모든 것으로부터, 모든 특성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옳은 것도 그른 것도 구별이 없는 이 파국 속에서 일체의 사상이나 목적을 빼앗겼다.



사랑이 지상에서 견뎌야 하는 모든 것에 대한 보복으로 화하는 경지, 망아의 경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베풀지 않았다. 





그 당시 그의 머릿속에는 세계를 향해 찍을 수 있는 구두점만이 사방에서 뒤흔들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세계가 등장하는 최초의 문장이 수중에 들어오고 있다. 



그 당시에 그는 무엇이든 궁극에까지 생각할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도, 자기가 현실 속으로는 이제 겨우 최초의 몇 발자국을 들여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ㅡ 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잉게보르크 바흐만(독일어: Ingeborg Bachmann, 1926년 6월 25일 ~ 1973년 10월 17일)은 오스트리아의 시인이다.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에서 출생하였고 1956년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으로 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예된 시간>(1953)과 <대웅성좌(大熊星座)의 탄원>(1956)으로 현대 독일 시문단에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 방송극 <매미>(1954), <만하탄의 선신(善神)>(1958)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소설 <말리나(Malina)>(1971)와 <동시대(同時代)>(1972)를 발표했다. 1973년 9월 25일 자신이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치료를 받던 중 약물(바르비투르) 남용과 중증 화상으로 인해 10월 17일 사망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첫 산문집. 

현대의 대표적 여류 지성 바흐만

시인이자 철학가인 바흐만


전후 독일어권 문학의 황무지 위에 인생을 투시하는 철학적 사고와 새로운 언어로 활력을 불어넣었다.  사유의 힘과 탁월한 서정성이 녹아 있는 바흐만의 《삼십세》는  생의 절박한 위기감과 통절한 의식의 갈등, 그리고 진실에 대한 도전을 심도 있게 묘사한 이 책에는 일곱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모든 단편의 주인공들이 삼십 세와 깊은 관련이 있다. 삼십 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 삼십 세를 회고하는 나이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자신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준다. 독자들은 막연하고 두서없이 끓어오르던 회의와 불만의 거품이 두려울 만큼 명확하게 언어로 형상화된다. 





        삼십세저자잉게보르크 바하만출판문예출판사발매1995.05.01.





마무리.


삼십세를 읽고 나면 할 말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중이다. 번역가 차경아의 말을 옮기자면 이렇다. '서른 살이 되던 해 여름, 나는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바흐만의 산문집 『삼십세』를 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막연하고 두서없이 끓어오르던 회의와 불만의 거품이, 약오를 만큼 명확하게 언어로 형성화된 것을 발견한 감동에 며칠 밤을 들떠서 지새웠다. 그것은 단순한 공감이라기보다 차라리 치부를 들킨 것 같은 당혹이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서른 살의 병증을 미루거나 피함이 없이 같이 앓고 난 것 같은 후련함이었다. 따라서 성과는 치유의 편인 셈이다.'



리디 살베르 작가는 <일곱 명의 여자>에서 주나 반스, 실비아 플라스, 콜레트, 마리나 츠베타예바, 버지니아 울프, 잉에보르크 바흐만 7명의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7년 전 이 책 읽으면서 이 작가들을 만나보는 게 하나의 계획이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  『삼십세』 는 책장에 두고 읽지 못한지 오래되었다. 그런 책들 하나씩 꺼내 읽는 중이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산문집 <삼십세>를 읽고서 내 생각을 더 덧붙일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했고, 작가의 의도, 그가 하고자 한 말들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했다. 하루가 지나고 나는 문득 이 침울한 기분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나는 아직 떨치지도 못하고 울고 있었나' 싶었다. 그런 침울함이었던지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무튼 그녀가 말했듯이 '걸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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