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훌리아 Sep 30. 2015

퀴즈쇼 - 김영하 '주인공 민수는 청년백수'

이십대라는 존재

고단했던 나의 20대를 돌아보게 했던 소설이었다. 나의 치부는 내가 간직하고 가야할 것들이다. 나는 그 치부로 인해 조금은 변했고 더이상 반복되지 않으며, 또 나아지고 있고 앞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해설 추방된 젊음, 디오게네스의 윤리 4. 퀴즈의 아이러니 부분 중에서 빌려온 말-



김영하 작가의 작품 중 성장소설인<퀴즈쇼>를 먼저 읽게 돼 다행이다. 이번이 아니면 읽기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엔 무슨 소설일까?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읽는 의미'를 잊었다. 나를 돌아본다는 것은 책을 읽는 첫번째 이유인데 그것을 잊었다... 나의 20대는 잘 버텨왔고 지금도 그것에 연장선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잔혹동화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다 공감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에게 남은 뿌리깊은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김영하 작가는 이십대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은 외롭지 않다'고 전하고픈 그 마음이 오래도록 느껴졌다.



주인공 민수는 청년백수다. 배울만큼 배웠지만 취업을 못했다. 그러던중 자신을 키워준 최여사가 죽고 그녀가 진 빚을 청산하며 집에서 쫓겨난다. 그러면서 겪게되는 아주 현실적이고 비관적인 일들이 이어진다. 순진한건지 바보인건지 민수의 속내가 내심 답답하기 그지 없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게 딱 내 20대의 모습이었다. 나도 참 그때는 그랬다.



나는 앞으로 걸어나가려 했을뿐인데 한사람씩 툭툭 부딪힌다. 내 어깨를 부딪히고 밀치고 돌아세우고 멈추게한다. 나는 그냥 한발자국 앞으로 걸어나가려 했을 뿐인데... 내가 한 선택은 십중팔구 실패로 돌아갔다. 실패로 돌아간것을 만회하는 나머지 구차한 인생이 돼있다. 이렇게 얘기하니 너무 비관적이기만하다. 그냥 나의 20대를 돌아보면 떠오르는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나보다 힘든 삶도 많은데 내가 조금 힘든 것을 너무 감정을 담아 부풀려 얘기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개개인의 십자가의 무게가 다 똑같다고 하든가? 나는 예전에 그렇게도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 힘들고 더 아픈 사람이 있다. 그들의 고통의 무게는 나와같지 않다. 그것은 분명하다.



<퀴즈쇼>의 후반의 이야기는 내가 왜 제목이 퀴즈쇼인지 궁금했던 점이 해소가 된다. 우연찮게 출연한 TV퀴즈쇼는 맛보기 였고 이후 실전의 퀴즈쇼에 출전하게 돼 겪게되는 비현실적이고 유희적인 일들이 이어진다. <회사>-퀴즈쇼 참가하는 사람들의 합숙단체-의 소속팀인 '유리(남자, 닉네임)'가 이 <회사>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헤르만헤세의 유리알 유희가 떠올랐다. 그래서 이름도 유리인가? 그'회사'라는 곳에 몸이 뉘어있고 정신만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고 숙련된 고도의 정신만을 업로드 시켜 전송시키고 있다는 아주 우스운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여기도 그저 하나같이 똑같은 곳이라는게 함정이지만.... 민수는 그곳을 탈출할 수 밖에 없었다.



김영하 작가의 글을 메모하다 보니 그의 의도가 한눈에 보였다. 무엇을 알려주고 싶었나. 어떻게 위로하고 싶었던 걸까.하는 그런 의문이 하나씩 풀려 위로 아닌 위로가 되어줬다. 나의 이십대에 못다한 위로... 그때 했던 무수히 많은 고민은 나만했던게 아니라고...




                                                                                                                      

[질문하고 답하라, 그대이름은 청춘....... ]


#1. 편의점 알바 민수, 영혼의 파수꾼이 출동하는 순간 점주에게

"반말하지 마세요. 저, 이제 여기 알바 아니예요."

만약 당신이 한 인간을 서서히 파멸시키고 싶다면 그런 눈빛을 배워야한다.

그것은 상대가 자기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눈빛이며, 앞으로 그가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 눈빛이며, 혹시 그런 존재가 되더라도 적어도 자신만큼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맹세하는 눈빛이다.

만약 그런 눈빛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있다면 그 삶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런 눈빛을 가진 교사 밑에서 배우는 아이라면 자신감이라는 감정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것은 경멸과는 또다른 것이다.

그것은 경멸에 들어가는 에너지조차 아까워하는, 얕은 수준의 감정이었다.

그것은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고,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고, 필요하면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을 때나 생겨나는 종류의 감정일 것이다.(p109)



#2. 신입사원 면접생 민수, 순순히 물러서지 않고 면접관에게

"저, 그부분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바로 그거예요.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요. 그런데 그게 언제나 가장 중요하단 말이에요. 집에 가서 내 말을 잘 생각해 봐요 사회는 그런 거예요. 여자라서 밀리고 나이가 많아서 잘리고 가난해서 대학을 못 가고 한국인이라서 차별받고, 그런 거예요. 그걸 인정해야. 그래야 길이 보일 거예요. 배경도 재능의 일부예요.

(내 인생에는 어떤 우회로가 있을 것 같았다. 신이 나만을 위해 예비해 놓은 길, 부모의 신용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삶.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에 좌우되지 않는 삶. 그런 길이 무엇일지를 나는 지금껏 찾고 있었던 것이다.) (p191)



#3. 벽속의 요정, 지원에게

부자에게도 부자의 고통이 있을 것이고, 가진 자라고 덜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진 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마치 고통이라고는 없는 퇴폐와 환멸, 끽해야 허무 속에서 허우적 대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고통에 공감하려고 해도 그 공감이 받아들여질지를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들이 정색을 하고 "네가 어떻게 그 고통을 알아? 그걸 가져본 적도 없으면서" 라고 물을 까봐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런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 조차도 모를 것이다. 가진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는 애초부터 넘을 수 없는 정서적 갭이 있다.(p207)



#4.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데?

 "잘 모르겠어."

어려서부터 너무 많은 기대를 받아왔잖아. 부모, 선생, 광고, 정치인 심지어 서태지까지 우리한테 '네 멋대로 하라'고, 원하는 걸 가지라고, 그렇게 부추겼잖아. 피아노 조금만 잘 치면 음악 하라고 하고, 글 좀 잘 쓰면 작가 되라고 하고, 영어 좀 잘하면 외교관 되라고 하고........ 언제나 온 세상이 회전목마처럼 돌아가면서 끊임없이 물었던 것 같아. 네가 원하는 게 뭐냐고. 뭐든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그런데 그 '하나'를 잘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야? 결국 사람들을 자꾸 실망시키고, 그러다보니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돼버린 것 같아.


 .(p254)

#5. 내가 정말 사랑했던 것들...

실용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지식이 담긴 책더미 속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는 것. 문득 생각해보니 어렸을 적 나의 꿈은 도서관의 사서였다. 어둑신한 도서관의 한쪽 구석에서 새로 들어온 책을 분류하고 태그를 붙이고 사람들에게 멋진 책을 권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나만의 책을 아껴 읽는 삶. (p357)



#6. 배운것 하나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는 거. 인간은 변하지 않고 문제는 반복되고 세상은 똑같다는 거야. 거긴 정말 이상한 곳이었는데, 처음에만 그랬을 뿐, 적응하고 나니 하나도 다른 게 없었어.



끝으로.. 작가의 말 한줄.. p463

청춘의 찬란한 빛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하기를....



이전 03화 마그누스 - 실비 제르맹'존재 증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