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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26. 2015

마그누스 - 실비 제르맹'존재 증명'

 나의 이름Death mask





<마그누스>는 2005년 '프랑스 고등학생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15~18세 고교생으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단이 최고의 소설로 뽑은 책이다. 작가 실비 제르맹의 목소리는 잔잔한 울림이 있었다. 꼭 어린 시절에 내가 갖은 의문을 풀어가듯 아이의 시선으로 어른의 세계를 바라본다. 파스칼 키냐르가 과거는 자궁 속의 삶처럼 지나간다고 했다. 어둠 속의 삶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 같았다. 어린아이였을 때 몽상에 빠져있던 날들이 생각난다...

마그누스가 마그누스에게 말한다. 말도, 소리도, 의미도 없는 말....



마그누스는 보통 크기의 아기 곰인형이다. MAGNUS....MAGNUS.... 아이는 가소로운 헝겊 방패로 몸을 가리듯 마그누스를 품에 껴안는다. 울며 잠에서 깨어나 마그누스를 품에 안고 옹크린다. 아이는 숨을 죽이고 귀 기울인다. 어둠을 다스리는 주인의 목소리다. 이 목소리의 고치로 자신을 감싼다. 놀라움, 의심, 의문을 품은 채 잊었고 아름다운 풍경과 하늘, 사물과 짐승과 사람들을 오랫동안 유심히 살핀다.



프란츠게오르크 둥켈탈의 아버지 클레멘스 둥켈탈, 어머니 테아 둥켈탈... 아버지는 나치 친위대의 최고 중대 지휘관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사랑하며 무한히 존경한다. 아버지를 향한 연민의 감정이 그가 오만하고 당당하던 시절에 아들에게 불러일으켰던 두려움을 넘어선다. 아이는 아버지를 전보다 더 사랑한다. 고독을 알았고 진실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있다. 과거에 깃든 공백을 조심스레 살핀다. 혼자가 되어 자신의 세계에 깊이 틀어박힌다.



프란츠게오르크는 그저 프란츠 켈러라고 불렸고 또 아담 슈말커라고도 불렸다. 그는 가족사와 관련된 퍼즐의 일부를 맞추었다. 프란츠와 게오르크는 어머니의 쌍둥이 동생이다. 전쟁의 화염은 부모와 동생과 남편.. 그리고 자신마저 잃어버린다. 테아는 은밀히 수선한 마그누스와 아들을 자신의 오라버니 로타르에게 보낸다. 모든 존재는 사라지고 이름만이 덩그러니 유령같이 떠돈다. 아이는 자기 정체성의 두 번째 전복을 일종의 압박으로 여긴다.



아이는 아버지의 마지막 도달점과 그곳의 언어... '펠리페 고메스 에레라' 바뀐 마지막 이름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그의 범죄행위는 처벌받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며, 이 사실은 그의 내면에 여전히 혐오스러운 매력을 행사한다. 아이는 추한 마그누스를 헝겊으로 싸서 자신의 방 벽장 깊숙이 숨겨두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소년은 군중 속에서 혼자다.  악몽 속에서처럼 철저히 혼자다.  아이의 시선이 부서진다. 폐허 속에서 홀로 태어난 아이, 전쟁이 낳은 아이, 다시 태어난 이 아이는 아름다움과 공포를, 광기와 생명을, 우스꽝스러운 인형극과 죽음을 혼동한다.(p100-102)   


                                                                                                                                 

그는 색깔들의 생명을 지칠 줄 모르고 연구한다. 곰인형 목에 MAGNUS라고 수놓인 네모난 면 헝겊에서부터 풍경.. 그리고 프란츠게오르크 둥켈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전의 기억에서도 선명한 색깔들이 무언가를 암시한다. 지옥의 아가리.... 상실된 기억을 기억해낸다. 잃어버린 모국어... 곰인형을 꺼내 예전 모습을 되찾아준다. 마그누스. 알리아스 마그누스. 이 몽상적인 이름을 가지고 그는 마침내 성년의 문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끊임없이 동요하는 이 새로운 삶에 빠르게 적응한다.     

함부르크 공중전 (1943년 7월 24일 ~ 30일)은 연합군의 전략적 폭격(고모라 작전) 중 하나로 독일 민간인 4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마그누스를 통해서 역사의 잔해 속으로 잠시 들어간 듯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상실된 기억을 가진 채 살아남은 아이가 되었다. 전범들이 잡혀 사형을 당하고 베를린이 분단되고 악의 평범성이란 기사를 읽고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베트남전이 장기화되고 흑인 폭동 일어나고 마틴 루서 킹이 죽임을 당하는 역사의 레퍼토리.... 진짜가 아닌 감정을 진짜인 것처럼 느끼곤 한다. 어떠한 진실은 거짓말같이 데자뷰처럼 되돌아오곤 한다. 자신의 친어머니, 메이, 페기....

허공이 마그누스를 둘러싸고 아가리를 벌리고, 눈물이 날 만큼 반들거리는 푸르고 흰 하늘의 심연 속으로 현재가 빠져든다.(중략)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새. 그에게 지평을 열어 보이며 미래를 향해 다시 걷게 했던 여자가 사라져버린 참이다.(p143)



마그누스는 삶을 유괴당한듯했다. 누군가의 삶을 대신하는 것을 못 견뎌했다. 놀라움, 의심, 의문은 생을 따라다녔다. 존재의 부재로 스스로 정착하지 못 했다. 삶의 쓴맛을 보았고 시간은 고모라 작전이 펼쳐지던 시간, 그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시계 문자판에서 영원히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그 시간처럼 깊어져 갔다.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시간이 흐르도록 내버려 둘 수 있는 물시계 같은 장소를 찾는다. 들끓는 이미지들을 눈에서 떨쳐내기 위해 고독을 정착시킬 곳으로 들어선다.

마그누스는 이 낡고 바랜 곰인형을 트랭클랭의 물에, 수도원 발치에 흐르는 그 작은 급류 속에 던진다.(p292)                                                                                                       


벌통 속의 벌들이 붕붕대는 희미한 소음을 배경으로 주변 숲이 다양한 소리를 내며 술렁인다. 잎들이 떨리는 소리, 풀들이 바스락대는 소리, 가느다란 벌레 울음소리, 시냇물이 졸졸대는 소리, 마른 잔가지들이 부러지는 메마른 소리, 새들이 서로를 부르고 맑고 높은 소리와 작고 날카로운 울음소리, 바람이 속삭이거나 윙윙 몰아치는 소리. 그리고 간간이 들리는 개짖는 소리나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 가지에서 땅으로 막 떨어지려는 찰나의 이파리 한 개... " 들었나? " - 숲 속의 수도사 장  p281 -           



마그누스 곁엔 후견인이자 친구, 보호자가 있었다. 존재는 사라지고 없는 데스마스크-죽은 직후에 죽은 사람의 얼굴에서 직접 본을 떠서 만든 안면상-.... 이름으로 증명하려고 했던 것들이 무의미해졌다. 작가 실비 제르맹은 역사의 비극 한복판에 던져진 주인공의 정신세계를 어떤 사실주의적 묘사보다 더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제르맹에게 글은 언어를 통해 비로소 가능해지는 세계, 형상화되고 현실화되는 구원이다. 소설의 진행 방식이 독특했다. 단절된 기억의 파편들처럼 단장으로 연결되고 토막글이 끼어든다. 작가의 직접적인 묘사 대신 독자의 상상력을 통한 이미지 형성을 유도한다. 끊임없는 웅성임과 숨결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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