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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Apr 04. 2023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오에 겐자부로

이 소설은 내게 있어 가장 행복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년 시절의 기억을 괴로운 것부터 감미로운 것까지 솔직한 형태로 이 소설의 이미지들 안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쾌락적이기도 했다. 이제 소설을 쓰면서 쾌락을 동반한 해방을 느끼는 일은 없다.

오에 겐자부로






미치광이 어른들이

광분하고 있던 그시대

살인의 시대



살인의 시대였다. 지루한 홍수처럼 전쟁이 집단적인 광기를 인간의 정념 구석구석에 , 몸의 빈틈없는 구석구석에, 숲이며 도로, 하늘에 범람시키고 있었다. (중략) 거리에서 미치광이 어른들이 광분하고 있던 그 시대에, 온몸의 피부가 매끌매끌하고 밤색으로 빛나는 솜털밖에 없는 이들, 대수롭잖은 악행을 저지른 이들, 그중에 비행소년이 될 경향을 지녔다고 판정되었을 뿐인 이들을 줄곧 감금하는 기묘한 정열이 있었다는 사실은 기록해둘 만하리라.



나를 고발한 아버지가 군화를 신고 징용 일꾼 모자를 쓰고 남동생을 데리고 나타났을때, 나는 환희에 휩싸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동생을 소개시키기 위한 지역을 찾다 못해 결국은 감화원의 집단 소개에 동생을 떠맡겨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나는 실망감에 풀이 죽었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돌아간 뒤에 나와 동생은 서로를 부퉁켜안았다.




너희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우리 마을 사람들도 생각하는 바가 있다. 성가시게 굴지 말 것, 규율을 어긴 자는 방장이 기억해 둘 것, 소개가 완료되었을 때 처벌하겠다. p31

너희가 할 일은 소나무 산을 개간하는 것이다. 게으름 피우지 마. 도둑질, 방화, 폭력을 휘두르는 녀석은 마을 사람들이 죽도록 패주겠다. 너희는 애물단지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런 줄 알고 먹여주는 것이다. 이 마을의 성가신 애물단지임을 항상 기억해라, 너희들 p39

곰을 쏘는 거야, 사람도 쓰러뜨리지. 소란 피우면 쏴 죽인다. 마을 사람들한테 너희를 죽이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냐. p54

너희들, 우리를 허투루 봤다간 가만 안 둬. 내가 말하는 대로 해. 그러지 않으면 맞아 죽어. 이봐, 너희를 꼼짝 못하게 할 주먹이라면 넘치도록 많아. 너희들 모르겠어?p222

어이, 너 , 아직도 고집을 부리나? 적당히 하는 게 어때? 보지 않았다, 버림받지 않았다고 말해?p225

어이, 까불지마. 이봐, 넌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나? 너 같은 놈은 진짜 인간이 아니야. 나쁜 유전자를 퍼뜨릴 뿐인 칠푼이야. 커봤자 아무짝에도 못써. (중략) 알아? 너 같은 놈은 어릴 때 비틀어 죽이는 편이 나아. 칠푼이는 어릴 때 해치워야 돼. 우린 농사꾼이야, 나쁜 싹은 애당초 뽑아버려.p228





애매한 슬픔

구석구석 채우고



여행 내내 줄곧 복통에 시달린 소년의 신음 소리가 좁은 실내를 구석구석 채우고 있었지만, 우리는 누구 한 사람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는 잠자코 어둠 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우리는 잠을 자야만 했다. 그리고 추웠다. 더구나 갈증이 우리를 막무가내로 옭아맸다. 우리는 갈증이 극심한 나머지 무감각해지기 시작한 목구멍에서 흐느낌이 치밀어 분출하는것을 간신히 억누르는 데만, 지칠 대로 지친 몸 구석구석의 힘을 죄다 쏟고 있었다.



밤새 우리를 겁먹게 한 산, 골짜기의 길이 가로지르는 얕은 숲과 그 옆으로 이어지면서 구불텅하니 마을을 에워싼 경사가 가파른 잡목림은 파릇파릇한 빛을 출렁이거나 엷은 갈색으로 반짝이고 , 그러한 모든 광경에서 어린 새 소리가 밀려들었다. 우리의 감정은 조금씩 고양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불현듯 부풀어 올라 우리는 거의 노래를 부르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남은 겨울과 그 후 이어지는 몇 계절을 보낼 마음에 도착해 일을 할 참이었다. 일한다는 건 좋은 거였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에게 제공된 일은 으레 장남감 하청 일, 못 쓰는 땅에 헛되이 감자 심기, 그리고 기껏해야 판자 밑창을 댄 슬리퍼 만들기였다. 우리는 서로 질세라 괭이를 집어들고 어깨에 들쳐 맸다. 도구를 제공받는 것, 게다가 단단하고 남자답고, 더없이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농기구를 제공받는 것, 그것은 우리를 자긍심으로 채우고 북돋았다.




한밤중에 오래도록 고통을 겪어온 동료가 죽었다. 그때 우리는 불현듯 눈을 떴다. 그것은 격렬한 소리나 갑작스런 존재감에 자극받았다기보다 이와 완전히 반대되는 원인에 의한 것이었다. 우리들 옅은 잠의 무리 중에서 희미한 소리 하나가 사라지고 존재 하나를 잃었다. p63

우리는 우리가 왜 소리를 지르고 판자문을 두드렸는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중략) "친구였는데, 아아, 친구였는데" 동생은 흐느끼며 되풀이했다. 나는 동생의 어깨 너머로 긴 여행을 함께해온 동료의 똑바로 누운 채 굳은 작은 새 같은 얼굴, 거기에 분명히 크게 부릅뜬 어둡고 차가운 눈을 보았다. 눈물이 내 뺨을 따라 흘러 동생의 어깨로 떨어졌다. p67-68

저 놈들은 서로를 죽여. 우린 숨겨주었는데 똑같은 일본 사람끼리 서로를 죽여. 산으로 도망친 녀석을, 헌병과 순경이, 죽창을 가진 농민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막다른 곳으로 내몰아 찔러 죽여. 저놈들이 하는 짓거리는 도통 알 수가 없어.p213



어른들의 부끄러운 타화상

야만의 시대

아이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태평양전쟁 말기, 감화원 소년들은 가족에게까지 외면당하고 산골짜기 벽촌에 맡겨진다. 어른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아이들을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감화원 소년들에게 전염병으로 죽은 사체들을 매장하게 하고, 전염병의 징후가 감돌자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환자와 소년들을 버리고 피난을 간다. 버려두고 떠났을 뿐만 아니라 소년들을 통해 전염병이 번질까 봐 마을을 폐쇄해버린다.



감화원에서, 또 어디를 가든 사회의 감시 속에서 살던 소년들이지만, 이제 갓 십대가 되었거나, 십대 중반에 들어선 어린 소년 15명은 자신들을 억압하던 어른들이 없는 마을에서 해방감보다 불안감과 공포를 먼저 느낀다. 정작 버림받은 그들과 함께 남겨진 피난민 여자아이, 조선인 부락의 소년 그리고 살인이 싫어 탈영한 군인은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인간애로 음식을 나눠 먹고, 병이 났을 때 간호하고, 우정과 의리로 서로를 돌본다.



세상과 사회, 이웃으로부터 철저히 내쳐지고 부정된 존재들은 굶주림, 절망, 공포 속에서도 함께 그들만의 세계를 꾸려간다. 그러나 순수한 인간애와 의리로 만들어가는 소소한 행복은 결국 시한부일 수밖에 없는데 소년들이 애써 일궈낸 그들만의 왕국에 마을 사람들이 다시 복귀하면서 자유로운 축제의 나날은 곧 파국을 맞이한다.



오에 겐자부로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문학의 거장이자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칭송받으며, 여든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작품을 발표하고, 탈핵 운동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반대 운동 등 꾸준히 사회 참여를 하고 있는 오에 겐자부로.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는 이 세계문학의 거장이 23세 때 발표한 첫 장편 소설이다.

아마도 일본 현대 작가 가운데 오에만큼 화려하게 성공적으로 문단에 데뷔한 작가도 찾기 힘들 것이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학평론가들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으며 「사육(飼育)」으로 권위 있는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을 때 작가는 대학 재학 중이었고 이는 역대 최연소(23세) 수상으로 기록된다. 신예작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 1958년 무렵, 오에는 본격적인 창작의 길로 접어들면서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첫 장편소설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芽むしり仔?ち)』를 비롯해 두 권의 단편집 『죽은 자의 사치(死者の奢り)』 『보기 전에 뛰어라(見るまえに跳べ)』 등,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잇달아 분출하듯 발표했다.

일련의 초기 작품들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불안과 실존의 문제를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일본 전후 문학의 계승자로서의 출발점을 확인시켜 준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작가 오에는 스스로를 ‘전후 민주주의자’로 칭한 바 있으며 전후파 작가답게 전쟁 체험과 그 후유증을 소재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응시하는 사회 비판적인 작품을 많이 썼다. 특히 이 작품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는 지금까지도 상당한 애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초기 걸작으로서 저항의식과 인류애를 품은 작가의 본령이 드러나는 작품이며, 작가 자신도 여전히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작품으로 오에의 문학에 다가가는 첫 관문으로서 가장 적합한 작품일 것이다.






마무리.


주인공인 '나'에 작가 오에가 있지 않을까. 그 어둡고 외로운 시절에 몸소 뛰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에서만 해도 작가는 연출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개별적으로 느꼈지만, 여기서는 왠지 작가 오에가 개입된 느낌이 물씬 들었다. 스스로 체험하러 뛰어든 느낌. 그 절망적 상황에서 부단히 냉철하게 현명해 지려고 애쓰는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고, 동생이 꼭 아들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 이후에 4년 뒤 첫아들이 태어나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으로 전개되고 말았다. 어쩌면 형제의 죽음을 겪었던 오에의 자신의 경험치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제6장 사랑.. 이라는 제목에서 당황스러웠다. 내용이 암울하기도 했지만 어째서 여기에 사랑이 나올 수가 있나 라고 되물었다. 어린 주인공 '나'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온 몸을 찧누른다. 그의 마지막 안간힘은 어디에서 올까. 저항이 샘솟는 그 벼랑끝에서 자유를 진정으로 얻길 바라며 이야기는 마친다.



오에의 첫 소설이 참 마음에 들었다. 어느정도 오에의 소설이니깐 이렇지 않을까 나름대로 상상했던터라 생각보다 나았다. 마냥 어둡기만한 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 '나'의 시선으로 이 상황을 어찌 극복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 마음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오에는 작품을 남겼지 않았을까도 생각했다.



이 소설은 내게 있어 가장 행복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년 시절의 기억을 괴로운 것부터 감미로운 것까지 솔직한 형태로 이 소설의 이미지들 안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쾌락적이기도 했다. 이제 소설을 쓰면서 쾌락을 동반한 해방을 느끼는 일은 없다.

- 오에 겐자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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