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내게 있어 가장 행복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년 시절의 기억을 괴로운 것부터 감미로운 것까지 솔직한 형태로 이 소설의 이미지들 안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쾌락적이기도 했다. 이제 소설을 쓰면서 쾌락을 동반한 해방을 느끼는 일은 없다.
오에 겐자부로
너희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우리 마을 사람들도 생각하는 바가 있다. 성가시게 굴지 말 것, 규율을 어긴 자는 방장이 기억해 둘 것, 소개가 완료되었을 때 처벌하겠다. p31
너희가 할 일은 소나무 산을 개간하는 것이다. 게으름 피우지 마. 도둑질, 방화, 폭력을 휘두르는 녀석은 마을 사람들이 죽도록 패주겠다. 너희는 애물단지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런 줄 알고 먹여주는 것이다. 이 마을의 성가신 애물단지임을 항상 기억해라, 너희들 p39
곰을 쏘는 거야, 사람도 쓰러뜨리지. 소란 피우면 쏴 죽인다. 마을 사람들한테 너희를 죽이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냐. p54
너희들, 우리를 허투루 봤다간 가만 안 둬. 내가 말하는 대로 해. 그러지 않으면 맞아 죽어. 이봐, 너희를 꼼짝 못하게 할 주먹이라면 넘치도록 많아. 너희들 모르겠어?p222
어이, 너 , 아직도 고집을 부리나? 적당히 하는 게 어때? 보지 않았다, 버림받지 않았다고 말해?p225
어이, 까불지마. 이봐, 넌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나? 너 같은 놈은 진짜 인간이 아니야. 나쁜 유전자를 퍼뜨릴 뿐인 칠푼이야. 커봤자 아무짝에도 못써. (중략) 알아? 너 같은 놈은 어릴 때 비틀어 죽이는 편이 나아. 칠푼이는 어릴 때 해치워야 돼. 우린 농사꾼이야, 나쁜 싹은 애당초 뽑아버려.p228
한밤중에 오래도록 고통을 겪어온 동료가 죽었다. 그때 우리는 불현듯 눈을 떴다. 그것은 격렬한 소리나 갑작스런 존재감에 자극받았다기보다 이와 완전히 반대되는 원인에 의한 것이었다. 우리들 옅은 잠의 무리 중에서 희미한 소리 하나가 사라지고 존재 하나를 잃었다. p63
우리는 우리가 왜 소리를 지르고 판자문을 두드렸는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중략) "친구였는데, 아아, 친구였는데" 동생은 흐느끼며 되풀이했다. 나는 동생의 어깨 너머로 긴 여행을 함께해온 동료의 똑바로 누운 채 굳은 작은 새 같은 얼굴, 거기에 분명히 크게 부릅뜬 어둡고 차가운 눈을 보았다. 눈물이 내 뺨을 따라 흘러 동생의 어깨로 떨어졌다. p67-68
저 놈들은 서로를 죽여. 우린 숨겨주었는데 똑같은 일본 사람끼리 서로를 죽여. 산으로 도망친 녀석을, 헌병과 순경이, 죽창을 가진 농민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막다른 곳으로 내몰아 찔러 죽여. 저놈들이 하는 짓거리는 도통 알 수가 없어.p213
오에 겐자부로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문학의 거장이자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칭송받으며, 여든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작품을 발표하고, 탈핵 운동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반대 운동 등 꾸준히 사회 참여를 하고 있는 오에 겐자부로.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는 이 세계문학의 거장이 23세 때 발표한 첫 장편 소설이다.
아마도 일본 현대 작가 가운데 오에만큼 화려하게 성공적으로 문단에 데뷔한 작가도 찾기 힘들 것이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학평론가들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으며 「사육(飼育)」으로 권위 있는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을 때 작가는 대학 재학 중이었고 이는 역대 최연소(23세) 수상으로 기록된다. 신예작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 1958년 무렵, 오에는 본격적인 창작의 길로 접어들면서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첫 장편소설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芽むしり仔?ち)』를 비롯해 두 권의 단편집 『죽은 자의 사치(死者の奢り)』 『보기 전에 뛰어라(見るまえに跳べ)』 등,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잇달아 분출하듯 발표했다.
일련의 초기 작품들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불안과 실존의 문제를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일본 전후 문학의 계승자로서의 출발점을 확인시켜 준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작가 오에는 스스로를 ‘전후 민주주의자’로 칭한 바 있으며 전후파 작가답게 전쟁 체험과 그 후유증을 소재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응시하는 사회 비판적인 작품을 많이 썼다. 특히 이 작품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는 지금까지도 상당한 애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초기 걸작으로서 저항의식과 인류애를 품은 작가의 본령이 드러나는 작품이며, 작가 자신도 여전히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작품으로 오에의 문학에 다가가는 첫 관문으로서 가장 적합한 작품일 것이다.
이 소설은 내게 있어 가장 행복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년 시절의 기억을 괴로운 것부터 감미로운 것까지 솔직한 형태로 이 소설의 이미지들 안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쾌락적이기도 했다. 이제 소설을 쓰면서 쾌락을 동반한 해방을 느끼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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