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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Feb 24. 2024

다시 읽는 <금각사>

사랑받기 쉬운 모습을 한
죽은 사람만을
인간으로서 사랑할 수 있었다.



밤 11시부터 아침 10시경까지 

규칙적으로 안개

쉬지 않고 유동하였기에 

끊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잇달아 안개 속에서

나타나는 나무들의 모습은 

유령처럼 보였다.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다정한 느낌을

내 마음에 불러일으켰다.


무언가 이 시간

이 시간에 있어서의 세계를

잠시 비웠다는 생각

타인의 세계가 용해된다.


밤하늘의 달처럼

아름다운 금각은

잠자코 주위의

어둠을 참고 견디어


시간의 바다를 건너온

아름다운 배

금각은 수많은 밤을

노 저어 왔다.


무명無明의 긴 밤에 세운 금각인지

금각을 에워싼 허무의 밤인지

미美는 그 모두이리라.



네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면
어째서 그토록 아름다운가
어째서 아름다워야 하는가를 말해 다오...






눈앞에 금각이 드러났을 때 아무런 감동도 일지 않았다. 아름답기는커녕 부조화하고 불안정한 느낌마저 들었다.


미美라는 것은 이토록 아름답지 않은 것일까 

그는 배신당한 고통을 느낀다. 몽상하여 현실의 금각을 수정하였다. 전보다 훨씬 아름다운 금각이 되었다. 그러나 마음으로 그리는 금각보다도 실물이 훨씬 아름답게 보이길 바랐다.

더 이상 풍경이나 사물에서 금각의 환상을 쫓지 않았다. 실재하는 금각을 견고하고 선명하게 눈앞에 떠올렸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금각을 보러가지만 금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금각은 홀연히 사라져 없어졌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하루살이와 같은

단명의 생물처럼


금각의 정원에서

창녀를 밟은 이후로

쓰루카와가 급사한 이후로


자신의 뜨겁고

답답한 세계가 사라져갔다

강요당하여 맛본 

타인의 육체는 감미로웠다


조금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행위였으며

악의 광채였고

기억속에서 빛을 발하였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날그날을 보내며

참회가 필요가 없는 나날을

완전히 모방하면 그뿐이었다.


내부로 부터 무너뜨린

내적인 불구자는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확신에 사로잡힌다

정신적 불구는 불치가 된다.



'나'라는 존재는
이 아름다운 미美로 부터
소외된 것이다.






1944년 전쟁말기 시골 절간의 스님이었던 아버지의 유언대로 미조구치는 금각사의 도제가 되었다. 미국이 사이판에 상륙하였고 연합군이 노르망디의 벌판을 질주하고 있었다.

그의 말더듬 증세는 자신을 가로막는 문의 자물쇠며 순순히 열린 적이 없었다. 관여할 틈도 없이 현실은 이미 부여되어 있었고 무의미하고 큰 어두운 현실은 그에게 다가와 있었다.


어둠의 세계를 향하여 팔을 크게 벌린 채 기다리면 된다는 것 세상을 바닥으로부터 쥐어짜서 움켜쥐고 있다는 자각을 지녀야 한다는 것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무게로 긍지가 되기엔 너무도 무거웠다.8월 15일 패전 미조구치와 금각의 사이를 변화시켰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 유년시절



나는 잃어버린 낮 잃어버린 빛 잃어버린 여름 때문에 울었다.



전란과 불안...
수많은 시체와 엄청난 피가 금각의 미美를 풍족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하였다. 재로 변할 것이 확실시 될수록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더하여 갔다. 금각 또한 같은 생을 살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금각은 터무니없이 방대한 허무 공허한 형태를 쌓고 견고한 미美를 보여주었다. 최악의 감정도 최선의 감정도 차이가 없이 살의도 자비도 다를 바 없이 사진의 음화가 양화가 되기도 했다.




휩쓸리지 않고

함몰되지 않는

어두운 시간


무의미한 반복의

작은 연속에서 그려진

불길한 그림


망막한 물질세계

얼어붙은 세계

상대성 속에 내버려져

시간만이 움직이고 있다.


되돌릴수 없다면

내계의 악에 가능한한

깊숙히 가라앉으려 한다.


밤의 암흑과 동등하게

불빛들 감싸도록 악이 불어나

광채를 발하도록 할 것이다.



정신의 내부를 꽃잎처럼
유연하게 뒤집어 감아서
육체의 내부 밖으로
드러나도록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추함을
무無로 돌릴 생각을 한다.





슬픔이라는 것이 있다면

죽은 사람의 얼굴 존재의 표면으로부터 무한히 함몰되어 두 번 다시 끌어올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이다.


본다고 하는 것 

의식도 없이 있는 대로 본다는 것

살아 있는 자의 권리 

잔혹함의 표시

생을 확인하는 방법 

눈부신 모멸이다. 


우리들을 결코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우리들의 공범이 되며 증인이되는 타인의 세계  타인은 모두의 증인이다.

타인의 아픔은 우리들에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참회를 하지 않는다면 아주 조그만 악이라도 악은 이미 가능해진 것이다.











무력한 냄새로부터

멀어지고 싶다는 통렬한 느낌

오로지 갑작스레 사라지는

출발에 대하여만 생각했다.


모든 무력의 근원

금각에게 작별을 고하지 않았다

무의미함에

운명을 걸 생각으로 온 것이다.


이별과 출발의

통일적인 감정을 향하여

최대한으로 집결하여

미지의 세계로 간다.


돌아갈 곳이 없는

자신을 맞이 할 곳 없는

해방을 갈망한다.



광적인 기쁨을 부추긴 힘은 지나친 절망의 후유증이었다.
그 누적된 결과는 무위無爲 뿐이었다.






언젠가는 금각을 뒤흔들어 잠에서 깨어나게 하여 붕괴의 순간에 금각의 오만한 존재 의미를 뺏앗아 갈 것이다.

삶을 견디는 다른 방법은 광기나 죽음 뿐지금도 지상의 불안은 종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용서할 수 있게 된다. 금각을 불태운다는 결단은 자신의 자유의 근거였다. 금빛의 작은 방에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 그는 완전히 무효로 만드는 행위를 모방하려 한다

최후의 인식은 그 행위를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였을까.... 공통되는 위험 미美와 나를 연결시키는 매체. 내 육체의 속, 내 조직 속에 금각을 숨겨 갖고 도망칠 수도 있을 듯한.....

미움을 기대하며 쓸모없는 짓을 했고 금각에 대한 집착마저도 잊었다.마지막 이별을 고할 생각으로 금각을 바라보았고 금각이 보이지 않아서야 '살아야지' 생각했다.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음울한 청춘소설


젊음이 지닌 어두움과 초조함과

불안과 허무감이 온통 뒤덮여 있
소설 <금각사>는 실제의 사건을 취재하여

모방하여 쓴 시사소설이라 한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

병약한 몸으로 금각사를 쓸 때만 해도

우익적인 성향은 커녕

인간의 내면 자체에만 관심을 두었고

권력이나 집단은 인간의 섬세한 가치를

단순화, 사물화하여 훼손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美라는 것은 충치와 같다

피투성이의 자그마한 갈색의

더러운 이빨을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 놓고 본다.



'이건가? 고작 이런 거였나?
나에게 통증을 주고, 나를 끊임없이
그 존재 때문에 고민하게 만들며
또한 나의 내부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던 것이 지금은 죽어 버린 물질에 불과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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