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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숙이 Oct 13. 2021

자산화 없는 공유...'민들레홀씨' 전략

한국의 커먼즈<5-2>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

(앞 글에서 이어집니다.)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이하 노도네)와 이은수 대표는 도시농업과 함께 온실가스를 줄이는 생활법도 전파한다. 화장실 변기는 물을 한 번 내릴 때마다 12리터를 쓴다. 음용수로 쓸 수 있도록 1톤당 1257원을 들여 정수한 물을 소변, 대변 처리를 위해 버리는 것이다.


이 대표는 겨울엔 소변을 모아서 버리고 봄이 되면 채소를 가꿀 때 쓴다. 또, 음식물쓰레기 중 ‘생쓰레기’는 퇴비로 만들어 쓴다. 도시농부학교, 자원순환형 텃밭학교에서 이런 노하우들을 가르친다.    

 

“음식쓰레기만 줄여도, 식습관만 바꿔도”


‘생쓰레기’는 양파 껍질 등 유통, 조리 과정에서 나온다. 음식물 쓰레기 중 57%를 차지한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하루 1만5900톤(2017년 기준)이다. 처리 비용으로 한 해 8600억 원이 든다.


또, 처리과정에서 연간 885만 톤 CO2e(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한 값)의 온실가스가 나온다. 가정과 식당에서 생쓰레기만 줄여도 세금 4900억여 원, 온실가스 504만여 톤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놀라운 건, ‘음식물 쓰레기 절반 줄이기’가 우리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 높은 온실가스 감축법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기업가이자 환경운동가인 폴 호컨이 22개국의 세계적인 기후·환경 전문가 70명과 연구한 결과다. 그가 낸 <플랜 드로다운>  은 그 효과를 이렇게 전한다.     


 “식물성 위주의 식단 채택을 고려한 후 2050년까지 음식물 쓰레기의 50퍼센트를 줄인다면, 이산화탄소 26.2기가톤에 상당하는 배출을 피할 수 있다. 쓰레기를 줄이면 추가 농지를 위한 삼림 벌채도 피할 수 있어 44.4기가톤의 추가 배출을 막을 수 있다. 우리는 농장부터 가정까지 지역 단위의 쓰레기 배출량 추정치를 사용했다. 이 자료는 고소득 국가에서 최대 35퍼센트의 식량이 소비자에 의해 버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저소득 국가에서는 가구 수준에서 낭비되는 식량이 거의 없다.(<플랜 드로다운> 중)”

    

이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식단을 바꾸고 음식물 쓰레기 절반을 줄이면 30여 년간 70.6기가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한 해 2.35기가톤이다. 1기가톤이 올림픽 규격 수영장 40만 개에 물을 채우는 양이니, 이는 수영장 94만1300여 개 분량인 셈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 식단을 바꾸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일이 어려워서 그만한 분량의 온실가스가 매년 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식단 같은 생활을 바꾸려면 개인에게, 음식물 쓰레기 처리 시스템을 바꾸려면 아파트 등 공동체에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작게, 넓게 파고들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노도네는 ‘민들레 홀씨’ 전략을 쓴다. 이 대표는 시민활동가를 양성한 후 민들레 홀씨처럼 여러 곳으로 날려 다른 곳에서 싹을 틔우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 방법은 세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핵심 가치를 널리 공유할 수 있다.

둘째, 회원의 성장과 함께 네트워크가 성장할 수 있다.

셋째, 조직 운영 대신에 사람을 키우는 데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      


“전 도시농업활동가입니다. 그런데 식물 잘 못 키워요. 대신 사람을 잘 키웁니다. 제 목적은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을 많이 키우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조직은 특이하게 운영됩니다. 상근조직, 사무실을 안 만듭니다. 고정비에 돈을 안 씁니다. 월 회비도 안 받습니다. 회원 관리도 안 합니다. 대표도 월급을 안 받습니다. 전 강의로 소득을 올립니다. 그런데 조직이 성장하려면 회원을 성장시키면 돼요. 그리고 독립시키면 됩니다. 이게 민들레 홀씨 전략이예요. 회원들이 공동체를 만들든 독립하든 해야 조직을 슬림하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6년 동안 노도네의 도시농부학교를 수료한 사람은 약 1200명이다. 노원구청, 서울대 등 옥상텃밭이 생긴 곳은 10곳이다. 공릉동 신원아파트 등 4곳에 파이프팜이 놓였다. 노원초등학교 등 20곳에 녹색커튼을 쳤다. 한 호텔은 꽃을 죽이는 꽃꽂이 대신 넝쿨 식물을 키우겠다며 플로리스트들을 도시농부학교로 보내 교육을 받고 있다.    


자산은 공동으로 빌려쓰고 노하우는 공동으로 전파


텃밭 커먼즈로서 노도네는 독특한 사례다. 우선, 물적 자산을 공유하지 않는다. 빌려 쓴다. 천수텃밭의 땅주인은 노원도시농업협의회의 마명선 회장이다.


마 회장은 자주 수몰되고 일손을 구하기 어려워 놀렸던 텃밭을 살리려 노원구에 도시텃밭 활성화를 제안했다가 2013년 이 대표를 만났다. “오래 같이 하자”는 말을 듣고 마 회장은 이 대표와 노도네에 공동체 텃밭의 일부를 연간 400만 원에 빌려줬다. 또, 협의회를 통해 노도네와 협업하면서 노원구에서 함께 도시농업 기반을 만들고 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 봤을 때, 노도네의 의사결정구조는 ‘비상장 주식회사’에 더 가깝다. 주요 의사결정은 10인의 운영위원회가 하지만, 사실상 이은수 대표의 결단이 더 많이 작용한다. 회원들은 매년 2월에 열리는 ‘회원의 날’ 총회에 전년 활동 및 당해년 계획을 보고 받는다. 주식회사의 주총과 비슷한 문화다.      


커먼즈가 수익을 분배하는 데 비해, 노도네는 일감을 분배한다. 공모사업에 선정되면, 그것을 분야별로 나눠 담당을 정해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이 대표는 “회원들에게 노도네 말고 다른 단체들과 더 많이 활동하라고 장려한다”며 “노도네가 전파하고자 하는 가치를 더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도네가 전파하고 싶은 가치, 미래상은 무엇일까. 이 대표는 그림 한 장을 보여줬다. 빌딩 옥상마다 나무가 자라고, 창문마다 넝굴식물을 늘어뜨린 도시 풍경. 도시 전체가 꼭 밀림 같아 보였다.

2021년의 천수텃밭

“전 도시를 이렇게 만들고 싶어요. 도시에 생명을 심고 싶어요. 저 혼자서는 못할 일입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이게 우리 활동이고 커먼즈 아닐까 싶네요.”    

 

빌딩 숲 대신 진짜 숲을 도시에 들어서게 하는 미래는 이 대표의 말처럼 혼자 만들 수 없다. 도시는 사유지의 집합체도, 시유지나 국유지의 집합체도 아니다. 도시의 하늘과 물 역시 사유재도, 공공재도 아니다. 전 세계가 빠른 교통 수단으로 연결된 21세기에 점차 도시는 주민뿐 아니라 거주자, 여행자, 이해관계자들이 ‘공동으로 누리는 것’ 즉 공동재(Common Goods)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도시라는 커먼즈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진짜 주인일까. 도시에 필요한 커먼즈는 어떤 형태일까. 노도네와 천수텃밭의 현재에 도시 커먼즈의 미래가 엿보인다.  (끝)


#CC_BY  #이 저작물은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공동진행 연구결과입니다. 저작자명 및 출처, CCL 조건만 표시한다면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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