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사람들 5화 (※더러움 주의)
복도에서 만난 T는
적어도 25년 이상 나이 차가 나는 청소여사님과 스몰 토크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타인에게 알빠노와 TMI 사절을 추구하던 젊은 T였기에 나는 적잖이 놀라 T에게 물었다.
"뭐가 그리 친근해?"
"아, 똥 때문에요."
T는 웃음기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똥?"
"네. 세상에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니까요."
그렇게 T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여긴 화장실 입구에 별도의 문이 없어요. 복도를 돌아들어가면 바로 화장실이에요."
화장실 구조까지 알아야 하는 똥 이야기라니!
이것이야말로 평소 T가 질색하는
Too Much Information 아닌가?
나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T는 굳이 그 이야기를 계속했다.
일련의 사건은 어느 한가한 오후에 발생했다.
화장실에서 헐레벌떡 뛰쳐나온 이용자가 곧장 T에게 다가왔다.
"저기요! 와보세요. 화장실에..."
T는 사색이 된 이용자에게 떠밀리다시피
화장실로 다가갔다.
변기라도 막힌 것인가?
T는 평소 비위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더러운 게 싫었다.
어떤 사람이 그런 걸 좋아하려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지만,
밥벌이라면 뭐든 즐길 각오를 해야 했다.
T는 긴장한 얼굴로 화장실에 들어섰다.
T를 반긴 건
화장실 바닥에 한바탕 푸지게 싼 똥이었다.
똬리를 뜬 그 모양새가
현실감이라고는 1도 없이
그림에서나 볼 만한 완벽한 것이었다.
충격에 휩싸여 그걸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용자가 T의 팔을 잡고 흔들어댔다.
"저기요! 저걸 보세요. 벽에..."
벽에? 벽에 또 뭐가 있다는 건가?
T는 고개를 들었다.
아 저걸 뭐라고 하더라?
버퍼링이 심하게 걸린 것처럼
T의 뇌가 버벅거렸다.
8자를 옆으로 뉘어놓은 수학시간에 봤을
그 기호명이 뭐였더라?
∞ 무한대!
T는 이용자가 그랬던 것처럼 헐레벌떡 화장실을 달려 나가 급하게 청소여사님을 호출했다.
잠시 후, 문 없는 화장실에서 작업하던 청소여사님의 절규가 새어 나왔다.
"어떤 미친 XX가 벽에 똥칠을 해놓냐고!
이거 안 지워져! 안 지워져!!! 어떤 망할 X의 XX가 똥이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비벼놨어~~~"
사건의 전말을 듣고 똥 씹은 얼굴을 한 내게 T는 사건이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오늘이 벌써 세 번째예요. 여사님 얘기론 세면대가 깨끗한 걸 봐선 일회용 비닐장갑 같은 걸 챙겨 와서 벽에 똥칠을 하는 것 같다고 완전 미친 XX라고 하시네요."
"그게 네가 달라진 이유란 말이지?"
존경하게 됐어요.
"저 같으면 못해요. 더럽고, 짜증 나고, 아무리 밥벌이라지만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푸념이라도 풀어드려야죠. 그게 뭐 어렵다고요."
그때였다.
"이봐! 나 이것 좀 봐봐. 갑자기 핸드폰이 안 켜져. 이거 왜 이러지?"
T는 벌떡 일어나 흔쾌히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아, 이럴 때가 있어요. 어르신, 저기 앉으셔서 저랑 같이 해보실게요."
"아이고, 고마워. 우리 애들은 내가 핸드폰 좀 가르쳐달라고 해도 지들 바쁘다고 자꾸 피해."
"아유~ 그러셨어요..."
초면에 무턱대고 반말하는 어른도, 생판 모르는 남의 TMI도 질색팔색을 하던 T였다.
그런데 뭐가 그리 친근해진 걸까...
단순히 똥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드라마틱한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