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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회 Aug 16. 2024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유리천장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별다른 차별을 느끼지 않고 스스로 당당한 커리어우먼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가진 재산을 다 털어 4개월 간 세계여행도 다녀왔다. 대학교 때는 2년 동안 해외봉사를 다녀왔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주말 봉사를 했다.


난 내가 특별하다고 착각할 만한 커리어를 가꾸었다. 중소기업에서 일을 배워 대기업으로 조금씩 성장했다.


그러면서 결혼과 육아에 대해서는 점점 비관적이 되어갔다. 여성은 결혼과 육아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나는 절대 그런 결혼과 육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결혼도 내가 원하는 대로, 살림과 육아는 반반으로 나눠서 하겠다는 남자를 만나서 진취적으로 살아갈 거라고 말했다.


세상 신여성인 척하면서 해보지도 않은 결혼 생활에는 신물을 내면서 결혼식 자체에 대한 환상은 가득했다.


 스몰웨딩을 꿈꾸었고, 영화 트와일라잇에 벨라와 에드워드의 반짝이는 숲 속 웨딩을 같은 결혼식을 올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신혼여행에는 더 대단한 로망이 있었다. 남편이 될 사람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몽골을 거쳐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들어가, 아프리카 대륙으로 이동하는 세계여행을 꿈꾸었다.


오프로드를 지프차로 남편과 번갈아 운전하며 세상에 다시없을 신혼여행을 만들고 싶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실제로 이룬, 멋있는 분도 어딘가에 계시겠지만, 알고 보니 생각보다 많이 평범한 한국 여성이었던 나는 할 수 없었다.


남편과 부모님이 편을 먹은 싸움에서 나는 졌다. 결혼 전부터 시부모님에게 세 보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내 전의를 많이 깎아먹었다.


그리고 코로나도 한 몫했다. 코로나 상황에 결혼을 할 수 있는 것 자체도 다행이었다.


외부 활동을 많이 하는 아빠도 하객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결혼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스드메 패키지로 묶어 주말이면 홀마다 각자의 결혼식으로 북적이는 웨딩홀에서, 마치 대한민국 모든 예비부부의 표본처럼 평범한 결혼식을 올렸다.


서로 다른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이 어우러져서 뷔페 식사를 했고, 절대 하지 않겠다던 폐백까지 꼼꼼하게 마친 나는 하객들을 찾아다니면서 감사 인사를 드렸다.


식권을 몇 장으로 나누어서 내가 돈을 얼마를 더 내야 하는지 계산하는 남편에게 결혼식 당일에 신물을 느끼고, 결혼과 동시에 결혼을 후회하는 결혼을 했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내가 별거 없다고 느껴버린 거 같았다. 비정상적으로 비대했던 자아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결혼식장에서 가족들이 다 뒤풀이장으로 이동하고, 남편과 싸운 나는 엉엉 목놓아 울었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새신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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