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화 Apr 09. 2024

어떻게 오셨을까요?

1.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8)

나예는 저녁 시간에도 줄기차게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더니 기어코 어딘가에서 이동장을 빌려오기까지 했다. 김은지는 딸의 행동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는 어쩜 그런 일에는 그렇게 빠릿빠릿하냐, 불퉁하게 한 마디 한 그녀에게 나예가 의기양양하게 대꾸했다.


"엄마는 참... 안 그래도 긴장한 고양한테나 동물 키워본적 없는 엄마한테나 피차 이동장이 서로 편할 텐데. 아니야?"


핵심을 찌르는 말에 김은지도 할 말이 없었다. 입을 다물어버린 엄마가 언짢아서 그런 줄로 오해한 듯, 나예가 슬쩍 눈치를 살피며 한마디를 더 보탰다.


“이동장 빌려준 친구가 그러는데 이 병원 선생님이 엄청 친절하시고 고양이를 좀 많이 좋아하신대. 그러니까 꼭 여기로 가 봐, 엄마.”


나예가 길찾기 앱에서 동물병원 상호를 찾아 추가해 둔 채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흘깃 곁눈질한 주소지의 병원은 뜻밖에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다.


“포피 동물병원?”


나예가 고개를 끄덕거리다 말고 큰 인심이라도 쓰듯 덧붙였다.


“여기 동물병원 앞 카페도 되게 유명해. 엄마 커피 좋아하니까 겸사겸사 들러봐도 되겠네.”

“고양이를 데리고 카페를 어떻게 가.”

“아... 그건 그렇네.”


딸에게 퉁박을 주긴 했어도 김은지는 눈으로 그 상호를 기억해 두었다. 포피, 그리고... 카페... E... 어쩌고 C. 상호는 자고로 짧고 기억하기 좋아야 한다는 김은지의 상식에 정확히 역행하는 이름이었다. 카페 이름이 뭐 이렇게 쓸데없이 기냐고 한소리를 더하고 싶었지만 그건 나예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러지 말고 엄마랑 같이 가줘. 내일 주말이잖아.”

“음... 그럴까?”


이튿날, 김은지는 계획은 계획으로만 끝난다는 게 무슨 말인지 뼈저리게 체감하게 되었다. 고양이 한 마리를 이동장에 집어넣는 일이 이렇게까지 진을 뺄 일인지. 나예가 우는 소리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자 소파에 기댄 김은지의 귀에까지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라 뭐라 떠들던 나예가 우거지상을 한 채 통화를 종료하고 휴대폰을 소파에 내던졌다. 옆에 툭 떨어진 휴대폰을 보며 김은지가 인상을 썼다.


"너, 짜증난다고 집어던지는데 쓰라고 그 비싼 폰 사준 거 아닌데?"

“아, 엄마... 지금은 좀 넘어가 줘... 그 냥이 자기가 빌려준 이동장엔 안 들어갈 거래.”

“아니, 왜?”


나예가 우는 소리를 했다.


“자기네 고양이 쓰는 거라서 낯선 냄새가 배어 있기 땜에 안 들어갈 것 같았는데, 버려진 애라길래 혹시나 해서 빌려줬던 건데 역시나였구나? 이러네. 걍 다른 가방에 넣어 가래... 옆으로 긴 장바구니 같은 거.”


한바탕 난리를 친 끝에 나예가 조심조심 고양이를 가방째로 안아 들고 김은지가 운전석에 앉으며 마침내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바다가 보이는 도로를 따라 15여분을 달리자 내비게이션에서 사무적으로 안내종료 멘트를 내보냈다.


“와아!”


고양이와 가방을 한꺼번에 품어 안은 나예가 탄성을 질렀다. 그들이 사는 동네와 같은 지역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나예만큼 극적으로 감탄하지는 않았으나 김은지 역시 내심 놀라워하고 있었다. 이곳에만 다른 공기가 흐르는 것처럼,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병원을 출입하기 위한 허가증이 고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녀가 함께 조심스레 고양이가 든 가방을 앞으로 보이게끔 안아 올린 채 들어가자 접수 데스크에 앉아있던 강경희가 일어서서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나예가 김은지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꾹 찔렀다.


“아, 저기... 제가 어제 이 애가 길에 버려져 있는 걸 발견했거든요. 누가 박스에 넣어뒀던데,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집에 데려갔는데... 딸애가 병원부터 와 봐야 한다고 해서요...”


김은지가 마치 자신이 죄 없는 동물을 유기한 당사자인 양 주눅이 들어 답했다. 에코백에서 고개를 내민 고양이를 보며 빙긋이 웃던 강경희가 김은지의 말에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셨구나. 외면하고 지나치지 않으시다니 대단하세요. 혹시 목욕은 시키셨어요?”

“아, 아뇨. 동물은 제가 어릴 때 집 마당에서 부모님들이 개를 키우셨던 게 전부인데... 고양이는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도 모르고요, 혹시 다치거나 그런 데가 있으면 상처에 물 들어가고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접수 데스크에서 고양이를 요모조모 살펴보던 강경희의 눈썹이 둥글게 호선을 그렸다. 그녀가 사뭇 다정한 어조로 김은지를 추어올렸다.


“세심하셔라. 얘, 너 좋은 분을 만났구나! 다행이다. 저희가 이 아이 좀 살펴볼게요. 음... 일단 보호자 분, 성함하고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저기, 전 얘 보호자는 아닌...”

“최나예요. 백암아파트 103동 1107 호구요, 전화번호는...”


김은지는 입을 벌린 채 속사포처럼 연락처를 대는 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전화번호까지 빠르게 읊은 나예가 그제야 엄마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아니, 엄마. 임보라도 연락처는 드려야지.”


모녀의 대화를 듣던 강경희가 고양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전 07화 내 자신이 먼저였던 적은 언제였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