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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Jun 19. 2024

어쨌거나 출사표는 비장하게 던지는 것이 제맛

시작 앞에 띄우는 글

서가 속 각자의 안락한 책 속에서 머물고 계실 수많은 이야기 속의 벗님들께. 


안녕들 하셨습니까, 나의 오래된 혹은 근래 새로 사귄 벗님들.

다들 각자의 세계 속에서 평안하시리라 믿습니다, 라고 쓴 뒤에야 그다지 행복하다 할 수 없는 엔딩 속에서 여전히 시름하고 있을지도 모를 몇몇 님들이 떠오릅니다. 무심한 이 사람을 부디 용서하시길. 저란 사람은 이처럼 경거망동하기 일쑤에 사려, 배려처럼 훌륭한 가치는 기억의 저편 너머로 떠나보낸 지 오래인 듯합니다.  


여하간 근자 들어 저는 제법 언짢은 일을 겪은 바 이것을 어디에 토로하면 좋을까를 몹시 고심하였습니다. 

자고로 근심을 이야기하며 흘려보내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바람직할 것이나 알다시피 저는 사적인 사정을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으며 우는 소리 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습니다(진짜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으나). 그러나 이것을 마음에 내도록 담아두자니 실로 울화가 치밀다 못해 속을 장독 삼아 먹을 수도 없는 뭔가가 발효되는 게 아닐까 저어 될 지경이 됩디다. 

갖은 방안을 떠올리다 문득 저는 신묘한 자가 치료법을 하나 고안하기에 이르렀지요. 그것이 바로 당분간(어쩌면 꽤 오래도록) 지속할, 수신인 없는 편지 띄우기입니다. 에헴. 이것이 신박한 까닭은… 들어나 보시지요. 

제가 그대들과 벗하여 지낸 지가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물론 인사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도 계시지만, 어쨌거나 말입니다.


예로부터 벗의 안부를 묻고 기별을 넣는 것은 전통적인 교유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돌아올 리 없는 답신을 상상하며 일방적인 편지글을 적는 것이 상당히 마음이 아프기는 합니다만 그나마 마음 풀어놓을 데라도 찾은 것이 어디랍니까. 사람은 많은 것을 탐하면 아니 되는 법입니다. 저는 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으십시오.


그러니 마음을 달랠 겸, 그대들을 다시금 눈앞에 앉혀두고 한담을 나누는 기분으로 한 분씩 이리 불러내어 글로나마 말을 걸고자 하니 한없는 그리움으로 다시 부르는 사람이 여기 있음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왜 아니 부르시오, 하시지는 마시고. 사람이 살다 보면 잊히는 인연도 있고 두고두고 다시 되새기고 싶은 인연도 있고, 그런 법 아니겠습니까. 가능하면 많이 기억하여 불러드릴 테니 너무 보채지들 말고 기다리시지요. 


이래저래 제게는 작년부터 쭈욱 편지의 해가 계속되는 듯합니다. 하면 어떻습니까, 이 또한 나름의 풍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말투가 왜 이 모양이냐, 물으신다면 그건 지금 막 1920년대의 경성에서 빠져나온 탓이 큽니다. 왜인지는 몰라도 경성을 배경으로 한 글들을 줄곧 읽었던 탓이겠지요. 제게 남의 말투를 쉬이 옮는 몹쓸 버릇이 있다 보니, 말투를 보면 요사이 어울리던 이가 누구인지 적나라하게 보인다는 말은 많이도 들었습니다.  


여하간 수신인과 독자가 명백히 다른 이 괴이한 글월을 끝까지 읽어주신 지우께는 충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댁내 두루 평안하시기를, 그리고 다음번 글월에서 작금의 문체가 물로 씻어낸 듯 싸악 사라져 있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시기를. 글에서라도 천변만화해보고 싶은 것이 소박한 소망이라 그렇습니다.  

모월 모일, 담화라는 필명 뒤에 숨은 자아가 백만 개쯤 되는 본업이 무엇인지도 모를 필부가 적습니다.  


추신. 


그 언짢은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함께 사는 이가 저더러 요새 글쓰기에 힘을 쏟느라 가정에 소홀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했습니다. 예, 그 아이들 중 맏이는 최근 주민등록증이라 하는 것을 받았는데... 스스로가 한심해지니 말을 아끼겠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밥 한 끼를 굶긴 일이 있나, 할 일을 안 한 것이 있나. 뭐 사상은 자유이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이란 자신이 옳다 믿는 것을 굳건히 고집하는 법이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면 끝까지 그리 고집하셔야지요. 제가 가져다 드리는 돈은 쾌히 반기지 않았겠습니까. 세상에 이토록 어여쁜 것이 있나 하는 얼굴로 기쁘게 두 손 벌려 받으시더란 말입니다. 사람이 그러면 아니 됩니다. 물건이 표리부동해도 상인이 욕을 들어먹습니다. 사람이 되어가지고, 인두겁을 쓰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돈을 존중하기 전에 일을 존중해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저대로 오냐, 두고 보자. 내가 일을 더 늘리면 늘렸지 네 비위는 아니 맞추겠노라, 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일을 또 만들었습니다.  


Yo man, you will pay for this. We call this R.E.V.E.N.G.E.  

그럼, 비장한 (지름작) 출사표는 이만 마치고 본편으로, to be continued... 


덧_ 

도대체 벌려놓은 일이 몇 갠데 또 뭘 새로 하냐, 기막히게 쳐다보는 익명의 시선이 느껴져서 구차한 변명을 해보자면 저는 이래 봬도 성인이 된 이후로 제 책임하로 떨어진 그 어떤 프로젝트도 단 한 번도 일을 깔끔히 매듭짓지 못하고 중간에서 나자빠진 적은 없답니다 (으쓱). 브런치가 최초의 실패가 되는 거 아니냐고 한다면 어, 글쎄요. 그건 그럴지도...? 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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