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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Jul 23. 2024

뜻밖의 일

5. 솔직해져도 괜찮아요(1)

“웬일이죠, 진우 씨가 수업엘 다 결석하고.”


최현욱이 사뭇 걱정스러운 투로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딱히 다른 말을 더하지 않았어도 다른 이들도 같은 마음으로 이진우가 늘 지켰던 자리를 허전하게 보고 있었다. 수줍음은 많아도 손재주만큼은 존재감이 유별났던 탓일까, 그의 빈자리는 유난히 컸다.


수업을 진행하던 최현욱의 눈도 번번이 비어있는 자리의 주인을 보는 것처럼 허공에 가서 멎곤 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이진우가 있었다면, 과연 어떤 작품을 만들어서 보여주었을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 또 어떤 잔잔한 웃음을 끌어냈을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아쉬움은 커졌다. 어쩌다 시작한 클래스가 그에게 뜻밖의 활력과 보람을 가져다준 덕분에 최현욱은 그렇잖아도 남은 수업 한 시간 한 시간이 아까운 지경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업실에 가져다주는 영감이, 분위기가, 생동감이 모두 다르고 귀중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던 차였는데. 매일 일하느라 바쁜 것 같았는데 연락을 해 보는 게 맞으려나. 한 주 조용히 기다려 볼까. 마음이 이리저리 갈라져 방황했다.   


***      


윤소은은 어질어질함을 견디며 응급실을 나섰다. 정기검진 외에는 병원 올 일이 없을 거라고, 없게 할 거라고 다짐하며 산 세월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출근길에 일어난 가벼운 접촉사고라고는 하지만 한 번 큰일을 헤쳐 나온 마음은 그 어떤 것도 가볍게 받아넘길 수가 없었다. 삶이라는 건 정말이지 예고라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특별한 전조 없이도 닥쳐오는 사건 사고는 불특정 다수에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구나, 새삼스러운 생각을 하며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던 차였다.


자동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다급히 베드를 밀며 앰부 배깅에 여념이 없는 의료진을 무심히 지나치려던 윤소은의 발걸음이 순간 우뚝 멈추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그들에게 따라붙던 얼굴이 너무나 익숙했다. 윤소은을 알아본 건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고통스럽게 번잡한 공간의 중앙에서 못 박인 듯 그대로 서서.


“진우 씨…!”

“교, 교수님…”

“무슨 일이에요?”


윤소은은 대답을 듣지 못했다. 날카로운 소리로 이진우를 호명하는 소리가 그들을 갈랐기 때문이었다.


“최정애 보호자님, 얼른 오세요!”


고개를 꾸벅 숙인 이진우는 금세 윤소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윤소은은 들고 있던 약봉투를 와락 구겨 잡았다. 지금, 뭘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거지? 그다지 관심 있게 듣지 않았던 이진우의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내려 맹렬하게 기억을 뒤졌다. 전, 어려서부터 할머니랑 살아서.


문득 수줍어하는 소년 같은 목소리가 되살아난 순간 윤소은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베드를 따라간 이진우의 눈에는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거나, 혹은 너무 여러 번 겪어서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를 했기에. 윤소은은 자신이 무얼 하는지 아무런 자각이 없는 채로 휴대폰을 꺼내어 연락처를 뒤져 찾아낸 전화번호를 선택해 문자메시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응급실 밖, 나란히 줄지어 있는 좌석에 앉아 윤소은은 천천히 숨을 가라앉혔다. 자신이 병원에 올 때 가졌던 온갖 추측에 근거하여 이진우와 그의 할머니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른 가족은 없는 것 같던데. 혼자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걸까. 저 연세에 할머니도 손자를 위해 계속 밥벌이를 해오신 걸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본인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자기나 챙기라고 타박할 법도 했으나 윤소은은 아침에 제게 일어났던 사고나 저도 모르게 떠올렸던 후유증이니 뭐니 하던 제 걱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힘든 일을 아주 겪어보지 못한 것이야 아니겠지만, 세상에 산적한 온갖 종류의 고통과 이별과 고난의 백분의 일도 겪어보지 않았을, 이제 갓 소년티를 벗은 어린 청년에게 마음이 다 가 있던 탓이었다.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도 해도 장소가 환기하는 분위기를 무시할 수는 없기에 윤소은의 걱정에서부터 출발한 상상은 점차 최악의 엔딩을 향해 치달았다.


“윤소은 수강…교수님!”


입에 익어버린 호칭을 부르다 서둘러 말을 고친 최현욱이 그녀를 발견하고 허둥지둥 달려왔다. 수업 시간과는 사뭇 다른 허술한 차림새를 보아하니 아마 아침 느지막이 일어났다가 윤소은의 문자를 보고 놀라 뛰쳐나온 모양이었다. 뒤늦게 한숨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죄송해요, 선생님. 그런데 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 그럼요. 당연하죠. 로미 씨도 같이 왔어요.”

“네?”

“출근길이었대요. 태워준다고. 지금 주차장에 있을 거예요.”

“세상에.”


윤소은은 조금 놀랐고, 깊이 감격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윤소은을 가만히 보고 있던 최현욱이 말했다.


“진우 씨는 보호자니까 환자가 괜찮다는 진단이 나올 때까지는 아마 안 나올 거예요. 저야 별일 없으니까 여기서 계속 기다려도 괜찮지만, 교수님은 수업 있지 않으세요?”

“아직…여유 조금 있어요. 기다릴 수 있을 때까지는 기다릴게요. ...많이 울고 있었어요.”


자동문이 지잉 열리는 소리가 나고 누군가 요란스럽게 들어오던 발걸음이 이내 가벼워졌다.


“선생님!”

“로미 씨도 왔네요. 고마워라.”

“아니에요, 당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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