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타운센드, 네버무어
낙인과 선고를 동시에 끌어안고 살았어야 했던 모리건 양, 혹은 모그에게.
모리건의 이름을 부르면 어쩐지 브롤리 레인에 우산을 건 채 네버무어 상공을 휙 지나쳐 가고 있을 모습이 떠올라요. 까만 머리, 까만 원피스를 야무지게 여며 입은 모습도요. 요즘은 어때요, 여전히 즐겁게 지내고 있을까요?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매일을 이어나가고 있는 세계에서 소외당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종종 만나게 돼요. 모리건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죠. 음, 아니다. 모리건은 그중에서도 굉장히 혹독한 조건에 처한 편이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원한 적도 없는데 특정한 시간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저주받았다는 손가락질을 당하게 되고, 악운을 불러오는 주범으로 지목당하는 것도 모자라 그 시간대가 다시 찾아오는 순간 목숨을 다하게 된다는 운명이라니 너무 기구하잖아요. 고작 열한 살짜리에게. 픽션의 세계는 주인공들에게 왜 이리 야박할까요.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참 쉬운 일은 아니겠어요. 세상의 모든 불운을 기꺼이 떠안아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에요.
그래도 그저 쳐다봤다는 이유로 온갖 재수 없는 일을 불러온 악당 역을 맡는 건 정말이지 너무했어요. 모리건이 살고 있던 세계는 특이한 곳이죠.
하늘반 시계는 여느 시계와 달랐다. 시침도, 분침도, 시간을 알려 주는 눈금도 없었다. 둥근 유리반 안에 오로지 하늘만 들어 있었는데, 연대의 흐름과 함께 유리반 안의 하늘도 변했다. -56쪽
이런 시계가 하늘에 존재하는 세계에서 하나의 주기- 연대가 시작되는 날은 모닝타이드고, 갑작스레 찾아온 연대의 마지막 날은 이븐타이드죠. 그 마지막 날에 태어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저주받았다는 딱지를 달고 태어나는 데다 다음 연대의 이븐타이드 날에 목숨을 잃는 기막힌 팔자의 주인공들이고요.
달리 말해 모리건을 찾아온 기막힌 우연이 아니었다면 모리건 역시 이븐타이드 밤에 그 짧은 생을 마감했을 거라는 얘기잖아요. 잔인하게도.
비드데이- 그러니까 초등교육을 마친 아이들에게 특수교육기관에서 각 학생에게 입찰하는 날, 모리건은 뜻밖에도 여러 곳에서 입찰을 받고 잠시나마 들떴을 거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죽음이 목전에 닥쳐왔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도, 비드데이에 모리건에게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고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꼬드기는 목소리에 얼마나 혹했을지는 곁에서 보지 않았어도 알 수 있단 말이에요.
모리건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 상상은 수백 번도 더 했다. 두려워하는 존재가 아니라 모두가 좋아해 주는 존재가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방으로 걸어 들어갈 때마다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피하는 게 아니라 미소 지어 준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건 모리건이 가장 좋아하는 공상 가운데 하나였다. -71쪽
하지만 공상을 현실로 데려오려면 반드시 솔직해져야 하는 순간이 와요. 다른 사람에게가 아니라, 자신에게요. 그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는 몰라도 그때만큼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정직해져야만 하죠. 살면서 한 번쯤은, 누구나 자신의 진실한 마음에 솔직하게 답해야 하는 순간이 와요. 모리건에게는 유달리 혹독한 운명 탓인지 그 질문이 빨리 찾아온 것 같지만요.
"살고 싶지 않니?"
모리건은 놀라서 움찔했다. 도대체 무슨 질문이 저래? "내가 뭘 바라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하지." 주피터가 단호히 말했다. "정말로, 아주 대단히 중요해. 지금 중요한 건 그것밖에 없어." -96쪽
변화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진 이후부터 찾아오는 법이죠.
모리건은 비로소 납득이 됐다. 주피터는 왕처럼 자세를 잡았다. 마치 세상의 온갖 나쁜 것들로부터 평생 자신을 지켜 주는 보이지 않는 막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는 듯이. 이 세상, 그 어딘가에,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함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 주피터가 모리건에게 주려는 것이었다. 굶주린 가난뱅이 앞에 내민 뜨거운 고기 스튜 한 그릇처럼, -184쪽
무엇을 원하는지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변화하는 법이잖아요. 이미 겪어서 알고 있겠지만, 아마도 모리건의 세상은 훨씬 더 역동적인 것이 되었을 거예요. 사방에서 이런저런 가능성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한 것을 봤을 거고요.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똑바로 달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그걸 가져가도록 너그럽게 지켜봐 주지만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겠죠.
그거 아나요, 모리건?
사람들은 고난을 겪는 주인공을 응원하는 걸 좋아해요. 누구나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욕망,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든가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나를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든가 하는 그런 욕구 말예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누려야 할 것들을 갖지 못하고 비로소 나는 이러이러한 걸 원해, 하고 말할 수 있게 된 주인공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리기 시작하면 한마음으로 응원하죠.
그 주인공이 아이라면 어엿한 어른이 될 때까지 조바심을 안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모리건을 못 본 지 한참 됐어요. 얼른 다음 이야기를 들고 돌아와 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