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뚜루마뚜루 물김치
조금만 더 상큼 모드를 이어가 볼까, 스무 살 열여덟 살 열네 살.
엄마는 있지, 예전에는 몰랐어. 요리의 세계는 보기엔 굉장히 거창해 보이는데 만들기엔 세상 쉬운 음식과 겉으로 보기에는 별 볼품도 없는 것이 손만 많이 가는 음식으로 나뉜다는 것을. 물론 보기에도 좋고 손도 많이 가는 음식도 있고, 보기에도 별로고 손도 안 가는 것도 없진 않지만 그냥 대충 거칠게 나눠서 그렇다는 말이야.
같은 김치류로 분류되곤 하지만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물김치와 배추김치가 아닐까 싶어.
엄마는 여전히 김장이 제일 귀찮아. 무채를 써는 것도 귀찮고(200그램 정도를 채 써는 것과 x포기 분량의 김치 속을 만들기 위해 무채를 써는 것은 애초에 성질이 다른 노동량이라고. 그렇지 않니?) 물론 물김치도 어마어마하게 손이 많이 가는 것은 제외하고 휘뚜루마뚜루 담가버릴 수 있는 초간단 물김치 말야.
휘뚜루마뚜루, 정말이지 엄마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부사야. 원래 엄마는 까탈스럽게 구는 거 되게 싫어하거든. 당연히 직업적으로 일할 때는 잠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지만 일상에선 가까이 지내기엔 참 좋은 친구지. 대체로 부사란 애들이 성품이 좋긴 한데(다른 애들을 추어올려 주는 애가 성격이 나쁘기도 힘들지 않을까) 휘뚜루마뚜루는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 아무튼 그 얘긴 이제 됐고,
그러니까 손은 그다지 많이 안 가는데 맛은 좋은 물김치를 담자. 마트에 가면 얼갈이를 한 단씩 묶어서 팔잖아? 그걸 하나 집어 와. 열무처럼 까탈스러운 애는 아니니까 잘 씻어서 소금에 절이자. 부재료를 뭘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절이는 소금 양은 달라지는데 일단 1/2~1/3컵에서 시작하는 걸 추천해.
엄마는 무도 나박나박 썰어 넣고 양파도 조금 갈아 넣고, 그래서 약간 넉넉하게 절이긴 하지만. 켜켜이 소금을 뿌린다는 거, 무슨 말인지 알지? 소금을 그렇게 잘 먹여두었으면 딱히 뒤집어주지 않아도 애들이 폭삭 알아서 기가 죽어. 잘 절여졌는지는 부피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지. 그럼 체에 건져 놓는데, 이때 주의점. 물로 헹구지 마세요. 꼭이야?
색이 도는 게 좋으면 양파 갈 때 홍고추도 조금 넣어서 같이 갈면 김치국물 색이 나는 물김치가 될 거야. 아님 엄마처럼 그냥 풀물만 넣어도 되긴 하는데, 아참, 풀물을 미리 끓였다가 식혀놓아야 돼. 설마 하니 뜨겁게 끓인 풀물을 냅다 절여놓은 얼갈이 위에 들이붓진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밑줄 쫙, 알았지?
풀물은 물 1리터에 찹쌀가루나 밀가루를 섞어서 끓이는데, 엄마는 되직한 걸 좋아해서(물김치는 국물을 묽게 하는 게 일반적이야, 왜냐면 너무 진해지면 특유의 시원한 맛이 확 줄어들거든. 엄마 입맛이 특이한 거라는 거 기억하고) 항상 좀 많이 넣지만 2스푼 정도만 넣어도 괜찮아. 주의사항은 이거. 가스불에 올리기 전에 반드시 거품기나 주걱으로 잘 저어 놓기. 끓인 물에 가루를 부었다가는… 별로 원치 않는 덩어리를 만나게 될 테니까.
홍고추를 어슷 썰어 놓은 걸 섞어 담으면 색도 예쁘고 맛도 좋아. 그런데 파프리카로 바꿔 넣어도 대세에는 지장 없으니까 참고하길. 이렇게 실온에서 익혀서 냉장고에 넣는데, 실온에서 하루 이틀(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여름은 하루면 족하고, 겨울엔 상태를 봐 가며 하루이틀 정도 익혔다가 넣으면 돼. 표면을 보면 자잘한 기포가 보글보글하게 올라와있거든. 이때 냉장고에 넣는 거야.
이젠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면 되는 거지! 그럼 또 한 일주일은 넉넉히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잠깐의 수고로 며칠 두고 먹을 수 있는 반찬으로는 참 김치만 한 게 없는 것 같아… 옛날에 엄마가 대학생이었을 때, 지금은 작고하신 이어령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 교수님께서 그러셨거든. 한국인은 무엇이든 나물로 무쳐먹을 수 있다고.
그때는 몰랐지만, 10년쯤 지나서 엄마가 뭘 좀 알게 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더랬어. 교수님, 나물만이 아니더라고요. 한국 사람은 뭐든 김치로 담가먹을 수도 있더라고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