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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바써니 Aug 19. 2021

노브라를 위해 머리를 기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내게 흰옷을 못 입게 했다. 특히 흰색 바지를. 더러워지면 세탁이 힘들다는 이유로 얼룩이 져도 입기에 무리가 없는 옷들을 주로 입혔고, 나는 남들 다 입는 민소매티셔츠나 짧은 바지, 치마를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원피스를 입었던 사진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치마도 종종 입었던 것 같은데,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치마를 입어본 기억이 없다. 내가 조금씩 커갈수록 ‘단정함’이라는 엄격한 잣대가 나를 짓눌렀고, 그것은 집 안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한여름에도 나는 꼭 소매가 있는 옷을 입고 있어야 했다.     


엄마 없이 세 식구만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빠는 여름이면 트렁크 팬티만 입고 있었고, 아빠가 하면 남동생도 똑같이 행동했다. 우리 집은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에 여름이면 선풍기만으로 버티기가 굉장히 힘들었지만, 나는 팔꿈치보다 짧은 상의와 무릎보다 짧은 하의를 입을 수 없는 건 여전했다.     


찌는 더위에 가장 불편한 것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와이어 브라였다. 집에서만이라도 브라를 벗고 싶었던 나는 고민 끝에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했다. 잘 때면 방문을 잠그고 원하는 해방을 누렸고, 방 밖으로 나가 거실과 주방에서 생활할 때는 브라를 하지 않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으로 가슴을 가렸다.

긴 머리카락 때문에 더운 건 매한가지였지만, 적어도 내 몸을 조이는 고통을 피하는 쪽이 내게 더 중요했다.          


혼자 살고 있는 지금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된다. 집 안에서만큼은 브라를 해야 할 의무도 없고, 긴 머리카락으로 가리지 않아도 된다. 자유롭고 편한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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