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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바써니 Aug 19. 2021

아빠 여자친구 생겼다

아빠가 내게 ‘손주, 돈, 집안일’ 3단 콤보 공격을 보내올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차를 타고 나가는 길에 아빠가 말을 걸었다.     


“아빠, 여자친구 생겼다.”     


그 말에 나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뭐라고 대꾸하기가 어려웠다.

‘그럼 엄마는? 우리 엄마는?’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이제 막 18살이 되던 겨울밤, 아빠는 경찰을 불렀다. 평소처럼 조용하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왜 경찰을 불렀는지 어리둥절했다. 그때 나는 방안에 있었고, 경찰 두 명과 아빠가 현관문 앞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를 드문드문 들을 수 있었다.     


“저는 더 이상 저 사람을 책임질 이유가 없어요! 이미 이혼했어요!”

“그러면 그냥 정신병원에 보내세요!”


누구도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분명한 건 그 대화를 들은 다음 날, 하교를 했을 땐 엄마가 없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엄마가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해 엄마의 생신을 기념해 내가 선물로 드린 노란색 스트라이프 니트만 엄마의 옷장 서랍에 덩그러니 남겨진 채로, 아무리 뒤져도 엄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일에 대해서 아빠는 제대로 이야기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때때로 갑자기 모든 게 엄마 탓이라며 엄마를 심하게 비난했고, 나와 동생이 하는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지 엄마 닮아서 저러지!”라고 화를 냈다.     


그렇게 평온한 내 일상이 갑자기 무너진 후로 3년 정도 지난 후, 아빠는 내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했다.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역겨워서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적어도. 적어도 내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하려면 도대체 엄마와는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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