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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Kyoo Lee Apr 01. 2021

그대의 선물

by  김언니




동네 산책길에 만난 이름 모름 꽃봉오리들이 버드나무마냥 늘어져 있네요




지난번 글을 더듬어 찾아보니 시애틀에 이제 막 가을이 왔다는 소식을 알리며 글을 마쳤었는데, 한 없이 부지런한 김언니는 두 계절을 뛰어넘어 여러분께 봄이, 네~ 진정 봄이 왔음을 알려드립니다 하하하;; 이쯤 되면, 분기별로 소식을 전하는 계절학기 김언니, 우린 다 잊었는데 불쑥 등장한 김언니, 여러분이 안 궁금하다 필요읍다! 해도 또 찾아오는 김언니,  뭐 요런 이름들로 바꾸어야 할 듯합니다 (여러분, 참 많이 머쓱해서 손가락이 오그라 듭니다 하하;).  눼.... 제가 그 유명한, 글 써보라고 멍석 깔아주면 아잉~부끄러워 멍석을 똘똘 감고 드러눕는 김언니입니다. 사실, 그 간 써두긴 했었는데 발행을 할까 말까 쓰잘데기 없는 소심함에 서랍에 넣어두고만 글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언젠가 혹 궁금하다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용기를 내어, 시기적절하게 그 글들이 여러분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멍석 똘똘 말고 아직도 겨울잠을 잘 것 같은 김언니가 그렇다면 갑자기, 이렇게 느닷없이 왜 돌아왔는가! (아직도 민망, 계속 민망.... 흡흡 ㅋ). 동면을 끝냈고요....는 아니고요. 오늘, 클라이언트분께서 남편에게 남기고 간 선물 하나에 마음에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아서, 그 바람에 이렇게 글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음료 기억하시나요? 바로 쌕쌕입니다 꺄아~!


저는 몸으로(?) 이 음료를 기억하는데요. 어릴 때 엄마랑 목욕탕에 가는 날이면 목욕 후 얻어 마실 수 있는 이 쌕쌕 한 캔을 위해, 용광로 같이 펄펄 끓던 온탕 입수도 참고, 벗겨내다 벗겨내다 피부를 다 벗겨낼 것 같았던 엄마의 공포의 때밀이도 이를 악물며 참아냈던! 참으로 용감하고 인내심 많은 김언니의 어린 시절이 바로 떠오릅니다 캬~! 사실 제가 지난 수년간 한국에 가 있었던 시간이 사정상 채 몇 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이 쌕쌕을 판매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적어도 지난 십여 년간 제 기억과 현재 제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이 추억의 음료를 남편이 책가방에서 꺼내 드는 순간, 저도 모르게 박스 앞뒤를 요리조리 돌려보며 한참을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세상에, 이 미국 땅에서 쌕쌕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으아~이렇게 귀여운 선물이라니요!


남편의 클라이언트가 고마운 마음을 담아 남편에게 두고 간 선물이었는데요, 아직 학생인 어린 친구가 수임료도 내고, 거기에 이런 선물까지 주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인 마트에서 언제부터 팔고 있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 정성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이 쌕쌕 한 박스를 사들고 오면서, 남편이 좀 더 본인 케이스에 마음을 쏟아부어주기를 에둘러 부탁하는 그 친구의 마음이 느껴져서, 남편에게 정말 열심히 일해주라고 신신당부를 하였지요. 네, 이런 귀엽고 달달한 뇌물(?)의 힘은 정말 어마 무시합니다. 이런 추억의 한국 과일음료를 좋아하는 아니 사랑하는 남편의 취향을 어찌 알았는지, 참 마음 따뜻하고 행복한 선물이었습니다. 사실 이 쌕쌕 한 상자가 유년의 추억을 불러일으킨 것뿐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제 마음속 한편에 자리한 가족과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허기짐을 가만히 어루만져 준 것 같아서...그래서 오늘 제 마음에 울렁울렁 봄바람이 불었지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쌕쌕 한 박스를 받아 들고는 참 달달한 시간을 보내다... 문득 쥐구멍은 제 체구에 너무 작으니까 어디 개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저의 "선물 흑역사"가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바야흐로~제가 시애틀에 온 지 1년이 채 안되었던 2011년이었습니다. 막 한인교회에 참석할 때였는데,  우연히 알게 된 제 부모님 연배의 분들께 식사 초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만날 때마다 따뜻하게 대해 주시고 이미 수십 년 이민생활을 하신 분들로, 이민생활의 녹록지 않음을 공감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던 너무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됐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너무도 뻔한 학생이었기에 저렴하고도 정성이 든 선물이 무엇이 좋을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우연히 한국 블로그에 올라온 단호박 찰떡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함께 사신다는 어르신들 입맛에 미국에서 맛보기 어려운 한국 떡을 선물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호박을 찌고 으깬 후, 찜솥에 찐 찹쌀가루와 섞어 치댄 단호박 떡. 레시피 대로만 하면 근사한 떡을 선물로 드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대로 밥도 못했던 1년 차 주부 김언니는 무슨 배짱으로 어르신들께 떡을 선물한다 했을까, 지난 10여 년을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역사에 길이 남을 아리송한 결정입니다.  

그때까지도 차가 없어서 한인 마트를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던 저는,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는 찾아간 일본 마켓에서 일본식 건식 찹쌀가루와 단호박 비슷한 호박을 사서 책가방에 넣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대망의 점심 식사 초대가 있던 날, 이른 아침부터 레시피를 따라 떡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네.... 역시나... 믿고 싶지 않았지만 호박은 설익어 설컹설컹, 찹쌀가루는 죽이 되어 찜기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포기하면 콜라 한 병을 선물로 사가야 할 판이라, 초인적 힘을 발휘해 어찌어찌 간신히 떡의 모양새를 갖추었습니다 (라고 하고 싶지만 이마저도 너무 질어서 진짜 자유분방, 추상화 떡이라 불러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떡의 개수를 세어보니... 네, 그분 댁 식구가 모두 6명인데, 한입 사이즈 떡이 8개가 나왔습니다. 제가 먹는 평소 공깃밥 양만 따랐었더라도, 족히 30개는 나왔을 터인데... 양 조절 마저 완전 실패였습니다. 정말 손바닥만 한 반찬통에 딱 들어가는 8개, 한 개씩 먹고 4명은 눈치껏 빠져주어야 하는 8개의 떡. 무슨 아이돌 그룹 멤버 숫자도 아니고 노래 제목도 아닌데 결코 잊지 못할 "8개의 떡". 그래도 미국 땅에서 이런 한국 떡이 있다는 게 어디냐, 부족하지만 내 정성을 받아주시겠지 하고는 눈 딱 감고는 그 8개의 찰떡을 통에 담아 그분 댁에 찾아갔습니다. 모기만 한 목소리로 미국에서는 떡을 드시기 어려우니까 부족하지만 떡을 만들어보았다고 수줍게 드렸습니다. 아내 되시는 분께서 흠칫 놀라시며 귀한 떡이라고, 온 가족이 맛있게 먹겠다고 감사한 마음을 몇 번이고 표현해 주셨습니다. 이 미국 땅에서 떡 선물이라니, 드문 선물에 내심 놀라신 눈치였습니다.







저의 어린날, 초보 주부의 정성과 배짱으로 만들어낸 8개의 떡은 정말 성공적인 선물이었습니다!

라고... 그렇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하지만 결코 삶이 녹록지 않다고, 너의 정성이 모든 걸 덮고 갈 수는 없다고(?), 세상은 넓고 떡은 많다고, 깨닫게 되는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렇쉽니다 여러분. 저희가 시애틀 생활 2년 만에 차를 장만해, 고속도로를 달려 한인들이 많이 간다는 제일 큰 한인마트를 방문한 날, 그 8개의 떡을 화려하게 선보인 날로부터 약 1년이나 지난 후, 깨달았습니다. 여기에 한국 떡집이 3-4개나 있고, 한인 마트에만 가도 한국 못지않은 예쁘고 맛난 다양한 종류의 갓 만들어낸 떡이 한쪽 코너에 쭈~욱 진열이 되어 있었습니다. 순간, 그 교회분 외에는 아무도 제8개의 호박떡을 본 적이 없을 텐데... 왜 저는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마트 바닥의 타일 개수를 열심히 세고 있었을까요?.....


그러고 나니 제가 쪼매난 반찬통에 가져갔던 다 뭉그러진 떡을 시부모님께서 맛있게 드셨다면서 너무 고맙고, 기특하다며 몇 번이고 저를 칭찬해주시고 볼 때마다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그 아내분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민망하고도, 부끄럽고도.... 그렇지만 마음 깊이 감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때 그 아내분의 놀람이 제가 생각했던 감동에서 오는 놀람이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 손이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는 배려의 마음으로, 아직 현지 물정 모르는 어린 유학생의 부족한 선물을 모르는 척 칭찬해 주시고 따뜻하게 바라봐주셨던 그분들의 마음이 두고두고 감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분들을 가끔 마트에서 뵈는데... 다음에 용기 내어 그 부끄러운 선물 스토리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이 받아 온 쌕쌕 선물 하나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더니, 오래전 제 부끄러운 선물 이야기까지 떠오른 하루였습니다. 선물이라는 게 참 쉽고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패션센스나 미적 감각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도 찾기 어려운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특히나 센스 넘치는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어야 할 때면 종종 숙제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제 짝꿍 진순 씨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머리를 맞대어 봤자 나오는 것은, 그래! 먹는 걸로 밀어붙이는 게 최고지! 입니다. 어디 이 가련한 두 인생을 구해주실 선물 전문가 안 계시나요? ㅎㅎ


그런데 오늘  쌕쌕  상자를 받아 들고는 실성한 여인네마냥 한참을 허허실실 웃었던  마음을 들여다보며, 잊지 못할 용감한 8개의 떡을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셨던 교회 집사님 부부의 마음을 떠올리며..... 어쩌면 선물 한다는 행위는 주는 사람의 손에서 떠나는 게 전부가 아니라, 받아주는 사람의 마음에서 새로운 포장을 입고 다시 선물을  사람에게 격려로, 따뜻함으로, 웃음으로, 좋은 추억으로 되돌아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됐습니다.



어떤 선물을 받고 싶으세요?

받았던 선물을 어떤 마음의 포장지로 곱게 싸 돌려보내 보셨나요?

어떤 선물을 주고 싶으세요?



즐거운 고민을 함께 나누며 이렇게 또 선물 같은 시애틀의 하루를 써 내려갑니다.




P.S  혹시 글을 읽는 중에 쌕쌕 짝꿍, 봉봉의 거취를 궁금해하셨던 분이 시다면 찌찌뽕!  

      그대는 나으~ 제너레이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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