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빠르게 변화고 있다. 빠른 변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소모적인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고 만남도 잘 갖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 홀로 족’이 늘어 혼술, 혼밥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혼술, 혼밥 문화가 점차 확산되면서 1인 가구 맞춤형 상품들이 나오고 사회 분위기는 ‘나 홀로 족’으로 맞춰져 가는 추세다. 그런 추세다 보니 사랑 또한 진정한 사랑이 아닌 그저 일상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사랑을 하는 것 같다.
26살 때 연극 극단에 들어가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연극 제목은 ‘옛날이야기’로 창작극이다. 1막은 심청전(부모에 대한 효), 2막은 춘향전(진실한 사랑), 3막은 흥부전(형제간의 우애), 4막은 심청이네 가족, 춘향이네 가족, 놀부 흥부 형제가 한 마을에 살며 있었던 일들을 다 같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내용으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어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연극이다.
1, 2, 3, 4막 중의 2막은 진정한 사랑에 대한 내용으로 줄거리는 이러하다. 늦은 밤 춘향이와 월매가 호롱불 앞에서 바느질을 하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월매는 춘향이에게 숙청을 들지 않으면 감옥에 갇힌다고 이제 그만 변 사또에게 숙청을 들라고 말한다. 하지만 춘향이는 난 이미 이몽룡 도련님과 혼인한 사이며 오직 도련님만 기다릴 거라며 숙청을 들지 않겠다고 월매에게 말한다. 그런 월매는 춘향이를 바라보며 한 없이 울기만 한다.
춘향이는 무서웠을 거다. 숙청을 들지 않으면 감옥에 갇혀 매를 맞고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데도 춘향이는 숙청을 들지 않았다. 오직 이몽룡만 바라봤고, 이몽룡이 장원급제해서 데리고 가겠다는 말을 믿었다. 그런데 이몽룡은 장원급제는커녕 거지가 되어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춘향이는 본인이 죽어 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보다 ‘도련님을 누가 챙겨줄지, 밥은 먹고살 수 있을지….’라는 생각으로 본인보다 더 가슴 아프게 이몽룡을 걱정하였다. 이런 게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장원급제를 못하고 거지꼴로 돌아와도 변함없이 내가 사랑하던 이몽룡으로 대하고 또 본인보다 더 이몽룡을 아끼고 아파했으니 말이다.
우리 팀에도 춘향이처럼 진정한 사랑을 넘어 결혼까지 골인한 C선수가 있다. 그 선수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려고 한다.
C선수는 지금 결혼하신 분과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 살아 자연스레 알게 되면서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다른 연인들처럼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1992년 C선수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 불법 좌회전 차량에 치였다. 처음에는 피 흘리는 곳도 없어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일어섰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때부터 몸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고 주위에 있던 택시기사 도움으로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 도착해 정밀 검사를 통해서 척수에 손상을 입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로 수술을 하였다. 수술을 한 의사는 C선수에게 “앞으로 절대 걸을 수 없으니 팔 힘을 길러라”라는 말뿐이었다. C선수는 평생 걸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 그 자리에서 바로 창문으로 기어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하지마비라 상체만 7층 창밖으로 내밀었고 하체는 창틀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큰형이 C선수를 부랴부랴 병실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큰형의 훈계로 극단적인 선택은 포기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C선수는 병실에 누워만 있었다. 누워만 있는 C선수는 여자 친구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걸을 수 없는 자기 자신을 보니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여자 친구에게 전화할 용기는 더욱더 사라져만 갔다. 그러다 퇴원하는 날 용기를 내서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설명하였다. 그렇게 다시 옛날처럼 돌아갔다. 여자 친구와 만남을 거듭하면 할수록 이상한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애가 나를 동정심으로 만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만 들다 보니 괜한 자존심에 여자 친구한테 못되게 굴고 헤어지자는 말을 수도 없이 하였다. 여자 친구를 보지 않기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분당으로 취직도 하였다. 하지만 여자 친구는 매일 찾아왔다. 매일 찾아오다 이제는 본인이 좋아하는 미용도 포기하고 C선수와 언제나 함께 있고 싶다며 C선수가 다니는 회사에 취직을 하였다. 그 보습을 본 C선수가 여자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걸을 수도 없어 휠체어만 타고 다니는 이런 날 왜 좋아하니?”
“사람이 다쳤다고 해서 사람이 바뀌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어떻게 사랑이 변화니!!”
그 말을 들은 C선수는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어 청혼을 하였다. 그리고 결혼을 하여 슬하에 아름다운 공주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하였다.
“진실한 사람들의 결혼에 장애를 용납하지 않으리라. 변화가 생길 때 변화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로다.”
맞는 말이다. 사람이 신체적으로 변했다고 해서 사랑이 변화면 안 된다. 사랑이 쉽게 변화는 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은커녕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해 빨리 사귀고 빨리 헤어진다. 그런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못해봤을 거다. 그래서 참 불쌍하다.
와이프와 연애 때 있었던 일이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매일 회사에 출근한다. 그날도 자전거로 출근하다 횡단보도에서 마주 오던 자동차에 치였다. 외상으로 문제는 없었지만 혹시 몰라 회사에다 말하고 그날 하루 연가를 냈다. 병원에서 검사를 기다리며 여자 친구에게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왔고 외상으로 상처 난 곳은 없으나 혹시 몰라 검사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문자를 했다. 문자를 하자마자 여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고 지금 내가 있는 병원으로 가겠다면 말했다. 난 괜찮으니 안 와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여자 친구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나에게 왔다. 여자 친구가 와서 내 마음이 안정은 됐지만 여자 친구에게 많이 미안했다. 그때 여자 친구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전수자로 공연을 앞두고 서울에서 한창 공연 준비로 여념이 없을 때었다. 그런데 본인 일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주었고 하루 종일 나를 간호해 주었다. 그래서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진정한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서로를 배려해 주고 아껴줄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서로 배려해 주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마더 테레사는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는 빵 한 조각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작은 사랑도 받지 못해서 죽어가는 사람은 더 많다.”
사랑은 그만큼 어렵다. 특히 진정한 사랑은 더 어렵다. 오직 사람 자체만을 바라보고 사랑한다는 게 쉽지 않다. 진정한 사랑이란 게 그런 거다. 주위 환경 신경 쓰지 않고 그 사람만 신경 써서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거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바위틈에서 핀 아름다운 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