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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윤 Mar 19. 2020

선수의 눈높이로 훈련을 지도해야 한다.

출처-https://www.google.co.kr/search?sxsrf

학생이 나의 말을 알아듣게 가르치기에 앞서

내가 학생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노력한다-안드리아 자피라쿠


 

출처-https://www.google.co.kr/search?q=%EC%84%9C%EC%9E%A5%ED%9B%88+%EC%9D%B4%EC%83%81%EC%9C%A4+%EB%AC%

 텔레비전에서 ‘진짜 농구, 핸섬 타이거즈’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 있다. 이 날 ‘핸섬 타이거즈’는 대회를 앞두고 전술 점검차 마지막 평가전을 치렀다.

 ‘핸섬 타이거즈’는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서장훈 감독은 경기 중 작전타임을 요청해 공격 전술 과정에서 스크린(벽)을 제대로 걸지 못한 이상윤을 질책했다.


 “상윤아, 스크린을 위에서 걸고 빨리 내려가 줘야지 자꾸 왜 똑같은 거를…. 너네 여러 번 하는데 계속 까먹어.”

 “까먹는 건 아닌데 계속 사람이 잡혀서 그래요.”

 “스크린 걸어서 제대로 가면 아까 찬스 나서 득점했어? 안 했어?”

 “진짜 안 하려는 게 아니라 하려고 하는데 안 되는 거예요. 감독님…. 진짜로 안 되는 거예요.”


 주장 이상윤 선수는 잘 풀리지 않는 경기에 서장훈 감독의 압박까지 더해지자 눌러왔던 감정을 터트렸다. 앞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서장훈 감독은 말없이 뒤돌아섰다.


 스포츠 세계에서는 ‘슈퍼스타급 선수는 지도자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선수 시절 뛰어난 실력으로 최고의 위치에 올랐던 감독은 선수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수가 못하면 “왜 이렇게 쉬운 걸 못해?”, “이것도 몰라?”, “이건 기본이잖아!”라는 눈빛을 보내곤 한다.

 팀 리더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선수를 지도하면 안 된다. 항상 선수를 지도할 때는 선수의 눈높이로 선수들을 지도해야 한다.


 나는 초창기 때 감독의 눈높이로 휠체어농구 선수들을 바라보면서 지도했다. 그래서 큰 실패를 맛본 경험이 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선수 모두는 훈련에 집중하였고, 온몸은 비에 젖은 것처럼 땀으로 흠뻑 젖었다. 훈련 분위기가 무르익을 즘 H 선수가 스크린을 받고 하이 포스트에서 볼을 잡았다. 스크린을 해준 선수에게 패스만 해주면 노마크 찬스라 골을 쉽게 넣을 수 상황이었다. 그러나 H 선수는 쭈뼛쭈뼛하다 45도에 서있는 선수에게 패스를 했다. 나는 호루라기를 “삑~”하고 불렀다.


 “스크린 하고 골대로 컷 하는 선수에게 왜 볼을 안 줬어?”

 “안보였습니다.”

 “아니 안보였다고? 이게 안 보여? 스크린하고 빠지는 사람에게 볼 주는 게 당연하잖아? 어떻게 이게 안보일 수가 있어? 나 참….”

 “진짜 안 보였는데….”


 그때 당시 나는 선수 시선이 아닌 감독의 시선으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내가 휠체어를 직접 타보면서 감독 시선으로 선수를 지도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선수가 코트 안에서 농구 골대를 바라보는 시선, 감독이 코트 밖에서 농구 골대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팬들이 2층 관람석에서 농구 골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천지차이다.


 사람은 본인이 본 것 그대로 상대방에게 이야기한다.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 오해와 감정들이 생기는 것이다. 감독과 선수 사이에 오해와 감정이 생기지 않으려면 감독은 선수 눈높이로 시선을 바라보고 지도를 해야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하오런의 그의 저서『성공하려면 하버드처럼』에서 타인을 바라보는 눈높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말고, 타인의 눈높이에서 문제를 바라보려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불필요한 충돌을 피할 수 있고,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많은 이가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고 타인의 입장은 간과한다. 상대방의 눈높이로 문제를 본다는 것은 한마디로 공감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기존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타인의 내면세계를 탐구해야 한다.”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좋은 관계를 만들려면 감독은 절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반듯이 선수의 표정을 살피고 선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논어(論語) 자한 편(子罕編)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공자가 하지 않은 일이 네 가지 있었다. 무슨 일이든 확실하지 않는데도 지제 짐작으로 단정을 내리는 의(意), 자기 언행에 있어 반드시 틀림없다고 단정 내리는 필(必), 자기의 의견만 옳다고 고집하는 고(固), 매사를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아(我)이다.”


 공자는 네 가지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 네 가지는 ‘무의, 무필, 무고, 무아’이다. 즉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으셨고, 틀림없이 그렇다고 단언하지 않으셨고, 그리고 고집하지 않으셨으며, 또한 아집을 부리는 일이 없으셨다.

 감독뿐 아니라 모든 사람은 자절사(子絶四)가 꼭 필요하다. 절사(子絶四)는 잠겨 있던 인간관계를 풀 수 있는 만능열쇠와 같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말하기 전 ‘무의, 무필, 무고, 무아’를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한다면 고집스럽고 완고한 사람조차도 당신을 바라볼 때는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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