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요,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다.”
영국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가 한 말이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운동선수였기에 집에 있는 시간보다는 기숙사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부모님보다는 코치 선생님과 친동생보다는 선․후배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에 그때 당시에는 가족의 소중함을 몰랐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정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가정이 있는 선수들을 지도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2009년 4월 고양에서 전국 휠체어농구대회가 열렸다. 우리 팀은 지난해 겨울 센터를 보강했기에 선수 전부 자신감에 차있었다. 그러나 시합 당일 팀 주축 멤버인 Y선수가 직장에서 급한 업무로 시합에 뛸 수가 없었다. 오늘 시합은 베스트 전략이 아니었기에 나는 솔직히 불안했다. 그렇다고 선수들 앞에서 표정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시합 10분 전 선수들을 소집해 미팅을 하였다.
나는 먼저 베스트 5를 불러졌다.
“K 선수, C선수, P선수, C선수, J선수가 먼저 뛸 겁니다. 오늘 Y선수는 직장 문제로 인해 시합을 뛸 수가 없습니다.”
선수들 모두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나는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기 위해 말했다.
“우리 강합니다. 지난겨울 빵모자를 뒤집어쓰고 훈련했던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한 사람이 없다고 우리 팀은 쉽게 무너지는 그저 그런 팀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믿어보세요. 그리고 추운 겨울날 함께 했던 동료들을 믿으세요. 우린 할 수 있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선수들 각자 한 마디씩 하더니 팀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다.
점프볼로 시합은 시작됐다. 먼저 C선수가 미들 슛으로 골대의 첫 포문을 열었다. 10초 뒤 상대 팀 또한 골을 넣었다. 시합은 박빙이었다. 2 쿼터 29-28 우리 팀이 1점 더 넣고 끝냈다. 하프타임에 나는 선수들끼리 이야기할 수 있게 자리를 피해 줬다.
삐-익 부저와 함께 3 쿼터가 시작을 했다. 우리 팀이 한골 넣으면 상대팀도 한골 넣고 경기는 손에 땀을 쥐게 했다. 3 쿼터 종료 43-43 동점으로 끝냈다. 나는 선수들에게 말했다.
“마지막 10분입니다. 이제부터 집중력 싸움입니다.”
4 쿼터가 시작됐다. 시작과 동시에 상대팀이 먼저 골을 넣었다. 분위기는 전반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4 쿼터 남은 시간 24초 점수는 57-57. 이때 심판의 콜 미스가 났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상대 팀으로 넘어갔다. 우리 팀은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가야 했기에 전방 압박 수비를 하였다. 수비를 정말 잘했다. 이제 2초만 버티면 됐다. 1초가 남았을 때 상대 팀 선수가 억지로 던진 슛이 링을 두 번 맞더니 그대로 골대 안으로 들어가면서 경기가 끝났다.
팀 분위는 땅에 떨어져 처참했다. 이번 전국 휠체어농구 경기는 우수 4팀 초청 경기라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했다. 나는 팀 분위기를 살리기 위래 나부터 표정을 밝게 하면서 선수들에게 말했다.
“오늘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일단 푹 주무세요. 그리고 아침밥 7시에 먹은 후 바로 미팅하고 시합장으로 가겠습니다.”
다음 경기는 우승 후보 D팀이다. 우리 팀 선수들은 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임했다. 경기는 전날 경기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4 쿼터 점수는 62-62. 남은 시간 3초. 이때 상대 팀 선수가 Y선수에게 반칙을 하여 Y선수는 자유투 2개를 얻었다. 자유투 1구. Y선수의 손에서 공이 떨어졌다. 체육관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숨죽여 지켜봤다. 공은 철썩 소리를 내며 링을 통과했다. Y선수는 물론 우리 팀 선수 모두는 표정이 밝아지면서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Y선수가 두 번째 공을 던질 때 나는 소리쳤다.
“넣지 말고 링만 맞춰.”
Y선수는 두 번째 자유투를 때 공을 링에 맞췄고, 양 팀은 공을 잡기 위해 리바운드 싸움을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경기는 끝났다.
우리 팀을 포함한 강팀 3팀은 1승 1패씩 하였다. 선수 모두는 밝은 표정으로 선수 대기 실로 이동해 휠체어를 옮겨 탔다. 이때 K 선수 휠체어를 옮겨 타면서 나한테 말했다.
“최 감독 아이들이 병원 진료 때문에 서울에 왔다는데 아이들 좀 데려다주고 올게.”
나는 속으로 ‘다음 날 중요한 시합인데…. K 선수가 빠지면 안 되는데….’라는 고민을 했지만 ‘가족보다 소중한 건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생각에 나는 K 선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네 다녀오세요. 여긴 걱정 마세요.”
K 선수에게 말한 후 선수 모두에게 저녁 식사시간을 알렸다.
“숙소에서 쉬다가 7시에 숙소 앞에 모여 식당으로 함께 이동하겠습니다.”
저녁 7시가 되어 숙소 앞으로 나갔다. 선수들이 보였다. 그중에 K 선수도 보였다. 나는 K 선수를 보며 말했다.
“아이들 데려다주려고 집에 가신 거 아니었어요?”
“집? 무슨 집? 아…. 최 감독이 잘못 들었구먼. 아이들을 병원에서 터미널까지 데려다준다고 말한 건데….”
K 선수가 집에 가지 않아 다음 날 경기를 무사히 이겨 결승전에 올라가 우승을 하였다.
나는 가족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선수이기 전에 한 가정의 아버지이고 자식이다. 경기는 그다음이라고 생각한다. 가정이 불안하면 밖에서 하는 그 어떤 일도 성공할 수 없다.
인도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가정에서 마음이 평화로우면 어느 마을에 가서도 축제처럼 즐거운 일들을 발견한다.’
가정이 평화로우면 모든 일들이 잘 풀리게 되어 있다. 이건 성공의 공식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참 많다.
얼마 전 SNS에서 가정에 소중함에 대한 잘기리스팀 감독과 기자의 인터뷰가 화제가 되어 본 적이 있다.
인터뷰 내용은 이렇다.
기자 : “감독님, 얼마 전 아구스트 선수가 준결승 시리즈 중에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그 이유가 아이의 출산에 참여하기 위해서라고 들었는대요.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감독 :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기자 : “네”
감독 : “제가 다녀오라고 했어요.”
기자 : “하지만…. 시리즈 중에 팀을 떠나는 게 정상적입니까?”
감독 : “기자분은 자식이 있나요?” “젊은 기자분도, 아이를 가진다면 이해할 겁니다. 자기 아이가 태어난다는 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입니다.”
감독 : “삶에서 농구가 가장 중요합니까?”
기자 : “아니요. 그러나 준결승전은 중요합니다.”
감독 : “누구에게 중요하죠?”
기자 : “팀이요”
감독 : “팀? 어느 팀에 중요한 거죠?”
기자 : “잘기리스팀이요”
감독 : “오늘 경기장에 사람들이 얼마나 왔습니까? 이런 문제가 중요합니까? 당신이 첫 아이를 갖는다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겁니다.”
농구에 미친 기자 손대범은 본인의 저서『I LOVE BASKETBALL』에 ‘가족에 소중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농구 선수들도 사람이다. 가족의 존재가 모두에게 중요하듯, 선수에게도 가족은 그들의 거의 모든 것이다.”
가정보다 소중 한건 이 세상에 없다. 진짜 명심해야 한다. 가정은 삶의 안식처이고, 나를 지탱해주는 나무의 뿌리다. 그 뿌리가 약하면 달콤한 열매는 절대 맺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