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무감각과 눈치의 경계

by 로사 권민희

눈치의 대척점에는 무감각이 있다. 눈치가 발달했을 경우 무감각에 대한 이해도 깊어져야 하는데 균형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어떤 주제는 눈치와 무감각을 지각하는 게 둘 다 발달해 있어서 가볍고 유쾌하다. 어떤 주제는 눈치와 무감각이 별도로 존재해서 뭔가 눈치를 보기는 하는데 어떤 면이 무감각해져서 무게가 느껴진다. '눈치 보는 사람' '눈치 주는 사람' 모두 저항감이 느껴진다. 그 저항의 방식이 무감각으로 드러난다.

어릴 때 눈치를 많이 봤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집에서 오빠의 눈치를 봐야했고, 집주인의 눈치를 봐야했다.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을 때는 할머니 눈치, 아버지가 술이 취한 날이면 새엄마와 주변 눈치를 봐야했다. 남의 마음을 그 상황에 미루어 알아야 했고, 누군가 나에게 보내는 눈치도 많이 받았다. 눈치를 주고 받는 게 싫어서 무감각을 선택한 것이 언제부터일까. 공감이 잘 안되었던 원인이 눈치를 살피고 주고 받는 습관 때문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알았다. 누구보다 책을 사랑했고, 예술을 즐기고, 춤을 추었는데, 이토록 공감이 안되었던 것은 바로 눈치 때문이었다.

습관처럼 주변 눈치를 보고, 조금이라도 눈치를 주면 취약해진다. 자기 공감을 가로막는 바리케이트처럼 눈치가 존재하고 있었다. 눈치가 눈치챘을까봐도 불안했다. 눈치와의 전쟁 수준이다. 의열단 김원봉 선생처럼 폭탄이라도 던져 폭발시키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다. 한겹한겹 잠자리 날개처럼 혹은 솜이불처럼 쌓여있는 그림자를 걷어나갈 수 밖에. 눈치로 먹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생존이 막막해진 느낌이었다. 다시 처음부터.

처음 만난 이에게 눈치를 보지 않은 빈도가 줄어들기 시작한 게 얼마 안되는 것 같다.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 감각을 느낄 수 있고 있는 그대로 그 존재와 연결되는 일이었다. 눈치를 보지 않는 게 시작되니까 여유가 생겼다. 그러면서 눈치를 주는 패턴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꼰대에 갑질하는 면이 있구나 싶었다. 꼰대 혹은 갑들은 무감각한 사람들이다.
감각이 살아난다는 것은 건강을 의미한다. 마흔의 첫 해가 저물어 가는 마당에 40대의 건강을 위해서 눈치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며 강연 때 살짝 이야기 나눠볼 수도 있겠구나. 우리 눈치랑 그만 헤어지자고.

2019년 목표는 '눈치로부터 자유' 이제 눈치 보기는 그만! 눈치 주지도 말고. 그저 사랑하고 행복하기로 결정하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