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바다

by 로사 권민희

우연의 백사장 이야기를 들으니 지구 반대편 플로리다 데이터나 비치가 떠오른다. 차가 다니는 해변가, 모래의 입자가 손가락 사이로 떨어뜨리면 날아다닐 정도로 가늘고 하얗고 빛나던.

2014년 2월 처음 만난 대서양의 바닷가는 우리나라의 동해, 남해, 서해에서 볼 수 없는 아주 묘한 평화로움을 안겨주었다. 거대한 수평선과 파도의 규모가 낯설고도 다른 행성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백사장과 낯선 리듬의 파도와 수평선. 기억을 더듬어보면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바다에 간 것이었다.


리조트앤스파 호텔의 베란다에서는 매일 아침 일출을 볼 수 있었고 엄마와 나는 그곳에서 14박을 함께하며 처음으로 서로의 삶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보냈다. 전세계에서 모여든 5천여명 사이에서 엄마와 나는 아주 낯설기도 하고 아주 친근하기도 했다.


그곳에 처음 도착한 날 엄마는 아빠도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다른 이를 통해 듣고는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고, 나는 조용히 얘기했다. 여권은 내게 있으니 돌아가려면 알아서 가시라고. 엄마와 나는 이제 더이상 원망의 세계에서 살 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책임감으로 나는 최선을 다해 서있었지만 사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일주일간 몹시 불편한 동거를 했다. 엄마와 나의 관계로 말하자면 5살 무렵 헤어져서 스물셋쯤 다시 만난 사이로 서로에 대한 애증으로 편치 않은 관계 속에서 변화를 만들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소비한 터였다. 헤어져 산 시간의 간극이 서로가 만난 시간을 그림자처럼 뒤덮어 유쾌한 순간들을 많이 만들지 못했다.


슬픈 10여년이 내가 요가, 명상, 수행을 공부하게 한 시간이었다. 고행의 시간을 지나 밝음의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2013년도부터. 우리에게 드리워진 어둠의 장막을 하나하나 걷어내는 조금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시간을 만들기로 용기 내었다. 2013년도 8월에서 2014년도 2월 사이 우리 모녀는 그렇게 그 바다를 향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처음 일주일은 쉽지 않았다.


8일째 되던 날, 엄마가 나를 불렀다. "민희야 얘기 좀 하자." 함께 바닷가에 나간 우리. 모래사장에 앉아 엄마는 한참을 울었다.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울었다. 그 눈물에 엄마의 지난 세월이, 나의 지난 세월이 흘러나왔다.


"엄마 무슨 일 있었어?" "내가 화장실에 가다가 그 인간을 봤다." "응?" "니 아버지""......" " 왠 할아버지가 내 눈 앞에 있더라." 다시 눈물...삼십대 후반 서로 맞지 않은 결혼 생활을 접고 엄마는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그 기억 속에 박제되어 원망과 고통 속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엄마는 현재로 돌아왔다. 마치 저주의 마법이 풀린 사람처럼. 나 역시 엄마와 함께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유로움.


엄마와 아빠는 나의 바람대로 데이토나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에 참석을 했지만 서로가 참석한다는 사실은 안내 받지 못했다. 30여년만의 짧은 만남의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바로 각자의 미움과 원망, 회한 사로잡힌 두 남녀가 현재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각자 다른 호텔에서 숙박을 핶고,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이들과 연습을 했다. 13일간의 코스 기간동안 말도 섞지 않고 각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우리는 각자의 삶의 공간에서 삶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중간에서 둘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10년간 매일 아침 108배를 하며 기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이 생에서 이루고 싶었던 목표가 '괴로움이 없는이 자유로운 이가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쓰인다'는 주제였는데, 미움이 괴로움이었고 슬픔이 괴로움이었다. 나는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의 노예가 되어 자유롭지 못했다. 10년 기도의 응답은 그렇게 찾아왔다.


그후 5번을 그 바다에 매년 찾아갔다. 그리고 사랑과 감사에 대하여 배워가고 있다. 참고로 난 종교인은 아니다. 천주교 집안에서 교회를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20대에는 불교를 공부했을 뿐이다. 아무튼 마음공부 인생에 결국 직업도 마음피트니스라는 프로그램과 강연을 하고 있으니 신께서 나를 잘 도와주고 계신가보다 할 뿐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일요일 저녁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해요?' '일요일 연속극보지' '제목이 뭔데' '하나뿐인 당신' '어 그럼 엄마한테는 나랑 남편이겠네' '나한테는 니가 1번이야' '엄마 그럼 나 기호 1번 밀어주는 겁니까?' '그럼 끝까지 밀어주지.' '나한테 이런 내편이 있어서 참 좋다. 엄마 오래 오래 건강하게 잘 살아봅시다.' 칠순 엄마랑 나누는 사십대 딸의 흔한 대화. 삼십년 차이 나는 우리들의 스토리는 그렇게 쓰여져 가고 있다. 사랑과 유머를 가득 싣고.


https://youtu.be/A22oy8dFjq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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