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30/15

by 로사 권민희

8:27


여행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 빨래를 개고, 따뜻한 모과차를 마시고 걷기 시작했다. 유원하나아파트를 지나 옥천암을 바라보며 걷다가 홍지문을 가로질러 상명대를 지나 세검정을 지나쳐 육교가 보인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세검정초등학교 방향 골목에서 왼쪽으로 꺾어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할 흰색 건물이 보인다. 언덕을 쭉 걸어 오르니 숨이 가쁘다. 약 25분간의 걸음이 생기를 전해준다. 일요일 오후의 여행, 오늘은 40대의 엄마와 중학교 1학년 딸과 함께하는 프라이빗 레슨 북리딩. 서로의 관점을 공유하고 삶을 탐사하는 멋진 여정이다. 첫 만남이지만 아주 낯설지 않은 여행자들, 5시가 넘어서자그들과 헤어짐이 아쉽기까지 한다. 내면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시간은 강렬한 여행이다. 나는 오늘도 여행자로 하루를 보냈다.




지역


첫 여행지는 부산이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고등학교 동창들과 청량리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새벽 5시에 도착하는 부산. 들어본 지명이라고는 태종대, 해운대. 그 새벽에 내려 스산함을 뚫고 태종대 자갈 해변을 걸었다. 그저 머얼리 떠나고 싶었던 우리들. 마음의 힘듦을 다룰 방법이 없어 그저 멀리 떠나 정처 없이 걸었다. 자갈치 시장도 들렀고, 해운대도 갔다. 돈이 없어서 버스로 이동하면서 정말 피곤했고 그날 오후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여정을 정말 힘든 일이었다. 다녀온 후에 일주일을 아팠다. 하지만 그 후에도 정동진, 해남 등등 극점을 향한 한반도 여행은 계속되었다. 마음을 운영할 방법을 모르니 몸이 힘들었다.




해외

한반도의 극점을 찾아다니다 결국 2002년 월드컵 열기가 한창일 때 인도로 떠나기를 감행했던 나의 의식. 그때의 괴로움의 깊이는 인도양을 넘어섰다. 비행기에 타고 정신을 차리니 너무 무서워서 한참을 울었다. 그 당시는 스마트폰이 웬 말, 가이드북 한 권 쥐고 45리터 배낭을 메고 떠났던 첫 번째 해외여행지. 델리에 도착해서 인천에 돌아오기까지 약 40일을 어떻게 여행을 하고 돌아왔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게 기적이었다. 돌아보면 마흔이 된 지금까지 여행을 계속하며 살고 있는 것도 기적이다. 매해 2~3번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다닌지도 어느덧 6년째가 되었으니.


기간

짧게는 몇 시간, 며칠, 몇 달의 여정부터 꽤 장기간의 여행도 있었다. 10여 년은 매일 아침 108배와 명상, 초기경전을 읽으며 붓다를 여행을 했고, 어느 6년은 전국을 다니며 독일 선생님과 명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트레이닝하며 지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의 기간이나 규모로 볼 때 2010년부터 시작된 창업의 여정도 상당한 배움이 있었던 긴 여정이었다. 비용면에서도 비교 불가. 하지만 마음을 운영하는 방법들을 배우고 훈련하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몸의 괴로움이 훨씬 덜하다. 20대보다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어 다행이다.


무소유

2001년 집을 나와 1인 생활자가 되어 나름 살림살이가 많았다. 2005년 문경에서 100일간 행자 생활 여정을 하기 위해 살림의 많은 부분을 기증하거나 나누고 짐이 줄어들었다. 1차 무소유 달성. 할머니와 함께 귀촌 생활 시절 다시 살림이 불어났다. 나는 욕망이 많은 사람이었다. 도시로 돌아와 다시 살림이 늘었다. 여행만큼 이사도 많이 했다. 그 여정에서 이제 나는 정말 남길 것은 무엇이고 나에게 중요한 것이 뭔지 알게 되었다.


마흔

어느덧 꽉 찬 사십 해를 살았다. 그 기간 동안 만든 다양한 여행의 경험들이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할 것인지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나의 인생을 어떻게 여행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여행자들과 만남의 순간들이 환대하고 사랑하기 위해 나의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흥미롭게 탐사해보려고 한다. 본격적인 사십대라는 시간을 여행하기 위해 그동안 워밍업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시간이 설레고 좋다.


흥미라는 단어를 보면 '춤추듯'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나에게 춤은 자유라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춤의 세계를 여행하기도 했다. 댄스스포츠(룸바, 차차차, 왈츠 등) 탱고, 살사, 스윙 등의 소셜댄스, 임프로비제이션 같은 1인 즉흥, 신성무(명상), 아프리칸 댄스 그리고 나에겐 막춤이라는 그곳도 있다. 돌아보면 롤러스케이트장에서 학교 축제, 나이트클럽, 댄스 동호회, 다양한 바와 대극장 무대까지 다양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가장 오랜 여행지이기도 했다.


음악

춤과 뗄 수 없는 여행지는 음악이다. 말이 없고 친구가 적었던 나는 초등 저학년부터 라디오키즈였다. 흘러간 가요에서 팝송까지 내 가슴속에 많은 노래가 저장되었다. 중학교 때 들은 쳇 베이커는 재즈라는 거대한 장르 여행지의 문을 열어주었고 이십 대 중반 재즈음악동호회 카페 운영진의 자리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모든 만남은 내 삶에 어떻게 발현될지 혹은 그다음 생에 어떤 모습이 될지를 결정한다. 모든 만남이 귀한 까닭이다.


9:14 여행이라는 한 단어에 여러 시간을 오고 간다. 내게는 힘이 강한 단어이다. 숨을 잠시 내 쉰다. 오늘의 여행은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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