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하루 5분 너그러움 키우기 18

by 로사 권민희
일요일 아침의 대조시장. 생물들이 주는 즐거움

<BC603>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샀던 카세트 테이프. 길보드 차트라고 불리던 최신가요 테이프, 즉 불법 녹음한 테이프를 파는 리어카는 놀이터 한 쪽에 있었다. 거기서 퍼져나오는 음악 소리는 라디오키즈였던 나에게 얼마나 매력적이었던지. 하지만 용돈이 없었던 나에게 그 테이프 하나를 손에 넣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언제나 오빠 친구들이 구입한 테이프를 빌려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새로운 것을 다시 입혀 듣곤 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어디서 돈이 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곳에서 처음으로 이승환의 1집 카세트 테이프를 샀던 기억이 있다. 서태지가 나타나기 전까지 나의 꿈은 이승환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중학생이었던 친구들끼리 별명으로 불렀던 것이 승환 댁, 상원처(여명의 눈동자 박상원), 동건 부인 등이었는데 서로 좋아하는 연예인의 여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당차게 드러냈다. 심지어 그 호칭을 사수하고자 싸움이 나기도 했다.
테이프가 늘어지기 직전까지 듣고 또 듣던 나는 중학교 2학년 경주 수학여행 때 '좋은 날'이라는 곡으로 춤 공연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2학기가 되면서 나의 키가 이승환보다 커지고 서태지가 나타나면서 그 테이프의 중요도는 뚝 떨어졌지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첫 번째로 좋아했던 최신가요 군에 속했던 대중가요 가수였던 이승환에 대한 애정은 아주 오래 계속되었지만 나의 관심은 서태지, 듀스, 박진영 등의 가수들로 옮겨갔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의 키는 170 센티를 넘었고, 교실 맨 뒤쪽에서 말이 별로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였다. 올해 초 고 2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김윤리(윤리과목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내가 기억했던 나와 전혀 다른 나를 만나게 되었다. "권반장은 나도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며 진지함이 좀 과했다고 한다. 나는 그저 나를 '조용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키도 크고 표정도 좀 덤덤하고, 한마디로 셌던 거 같다.
돌이켜보니 떠오른 기억 하나. 고등학교 때는 내가 뭔가 말을 하면 아이들이 다 내 말을 듣는 편이었다. 그래서 원래 대화란 그런 것인가 보다 했다. 좀 놀았던 어떤 친구들이 와서 약간 시비를 걸 때도 있었는데 나는 나의 싸움에 대한 소신을 얘기했다. "난 절대 안 때린다." 말하고 조금 바라봤다. 그때 그냥 대화를 몇 마디 나눴다고 생각했고, 나는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다.라고 나를 기억했다.
살면서 누구를 크게 때린 적도 없고 싸울 일도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우물이었다. 난 이미 표정으로 기운으로 여럿 때리기도 했음을 이제는 안다. ㅠㅠ 물리적 충돌만 없었을 뿐. 꽤 오랜 시간 방어기제로 써왔던 '살벌한 평화'로 인해 크리스마스엔 여러 남성들이 내적 부상을 입기도 했다. 10년간 매일 아침 108배와 명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참회할 거리들도 많아서였 나보다.
돌이켜보면 웃기도고 슬픈 과거사. 예수가 이 세상에 나투신 본래의 의미를 생각하며 전생의 나를 위해 기도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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