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

2009년 5월 19일

by 로사 권민희

# 1 오체투지

‘생명과 평화의 길’을 추구하며 지난 3월 순례길에 오른 ‘오체투지(五體投地) 순례단’이 16일 서울에 입성하여 17일 아침, 사당동에서 순례를 시작했다. 오체투지 순례는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의 신체 다섯 부위를 차례로 땅에 대고 절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순례 방식이다. 참가자들은 경찰의 통제 속에 1개 차로에서 5~6보 전진한 뒤 절을 반복했고 ‘10분 전진, 3분 휴식’의 원칙 속에 순례를 진행했다. 이날 서울정토회 저녁법회국와 청년직능국에서 12명의 인원이 함께 동참했다.

일요일, 기도를 하기 위해 일어났을 무렵에도 빗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절을 하는 내내 '괜히 추운데 움직이면 감기 걸리지 않을까?' '좀 더 쉬고 싶다.' 등등 여러 생각이 일어났다. 결국 6시쯤 기도를 마치고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8시, 겁나고 두려운 감정을 지켜보면서 ‘그래 일단 해보는 거야’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일부러 버릴만한 옷과 신발을 입고 나섰다.

오체투지를 하면서 모든 걱정과 두려움의 99%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땅위에서 보낸 3시간은 그 어떤 일요일보다 아름다운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비가 지나간 아스팔트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편안했다. 촉촉한 대지의 기운은 온몸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일전에 수경 스님께서 ‘자벌레처럼 기어 왔다’는 표현을 하신 것을 보았는데, 나는 마치 지렁이가 된 기분이었다. 몸을 낮추자 무심코 지나치던 자동차 경적소리도 커다랗게 들려 움찔했다. 내가 지구에선 아주 작은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그리고 작은 생명들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걷는 동안, 침묵하는 시간은 온전히 내면과 만나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에 꽉 차 있던 생각들, 오랫동안 묵은 화, 불안함 여러 감정들을 땅위에 내려놓아졌다. 마음도 몸도 점점 가벼워졌다.

걸어서 20분쯤 걸리는 거리를 3시간에 걸쳐 온 몸으로 걸어보는 것은 성격 급하고 생각 많은 나에게 여유로움을 가르쳐주었다. 덕분에 월요일, 바쁜 하루가 평화롭게 지나갔다. 도반들과 함께한 오체투지 순례의 시간은 내게 큰 선물로 기억될 것 같다.




# 2 모닝콜을 다시 시작하며

요즘 저녁법회국 서원행자 포살법회 업무를 맡아 진행하는데, 잘 하고 싶은가 보다.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백일 해보니 알게 되는 사실이다. '이제 그만 할까?' 이런 생각이 또 찾아왔다. 난 깨장에서도 제일 먼저 나서기로 결정하고 장을 마치는 순간까지 생각이 왔다 갔다 했더랬다.

얼마 전부터 청년 친구들과 다시 모닝콜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 하자는 말에 가볍게 yes라고 해놓고, 조금씩 '할까 말까' 이런 생각들이 올라오는 것을 본다. 하면 좋은 것을 알면서도 이 습관은 쉽게 벗어나 지지 않는다. 그래서 스승님께서는 생각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그냥 해본다'라고 말씀하셨나 보다.

직장생활도 그렇다. 직장생활이 주는 장점들을 느끼면서도 자꾸만 '그만둘까' 이런다. 연애도 그랬다. 만나면 좋은 점들을 알지만 마음은 계속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간 본다. 자주 현재에 있지 못하고 내속에 갇혀지내며 외롭다고 느낀다.

일요일, 오체투지를 하면서도 그랬다. 저녁법회국 소속으로 참가했으면서 청년 쪽으로 마음이 더 간다. 청년 소속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는 저녁법회국 사람들 눈치를 보고, 저녁법회국 사람들과 어울려 점심 무렵 일정을 마무리할 땐 마음이 엄청 아쉬워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렇게 쓰면 '날 어떻게 볼까' '쓸까 말까' 끊임없이 마음이 시끄럽다.

왜 이 글을 쓰는 걸까?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 S의 글 읽고 마음이 좀 동했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내 마음을 내어 놓아보고 싶었다고 할까? 글을 쓰면서 '된장, 거의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같군' 뭐 이런 생각도 든다.

어릴 적에 어버이날에는 엄마한테 고마워해야 할지 아빠한테 고마워해야 할지 늘 고민이었다. 아빠 앞에서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게 조심스러웠고, 엄마한테는 아빠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하면 죄인 같았다. 눈치 보는 습관은 그분들이 만들어주신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터득한 '사는 법'이었던 거다. 영화 <똥파리> 주인공의 폭력을 그러했듯. 그 습관처럼 살다 보니 어렵고 힘들어서, 사는 법을 바꾸어가고 있는 중이다.나에겐 수행이 그랬다. 살아가는 방법을 새롭게 배우는 시간.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때 묻지 않는 연꽃같이,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오늘 아침 경전은 참 익숙한 문구였다. 아름답고 따뜻한 느낌들 하지만 단단한 느낌.

내어 놓고 나니 마음속이 좀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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