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

청춘, 삶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던 시간

by 로사 권민희


추석연휴 전날 명상방에서 열린 추석파티의 흔적. 꽃, 초, 송편



실패했지만 기뻤던 어떤 면접장



직업들은 삶에서 나를 표현하는 옷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패션피플은 아니지만 직업을 통해 문화적 표현을 해왔던 것 같다.

4대 보험 가입자로 출판사에서 마지막으로 근무하던 2010년 봄, 아이보리색 정장을 입고 안국역 인근의 대기업 홍보팀 면접을 보러가던 날 오후가 생각난다. 명상을 오랜 시간 공부하면서도 연봉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고, 사람들의 시선이 내가 느끼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던 나. 면접장에서 “권민희씨는 주말에 무얼 하세요?”라는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실제 삶이 많이 다르구나 느끼는 순간이었다. 2003년 겨울 이후 거의 모든 주말과 퇴근 후, 여가 시간은 명상과 수행, 봉사라는 시간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토록 ‘잘 쓰이는 삶’을 열망했지만 마음 깊은 곳의 열등감은 현실에서 다른 모습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저는 여행을 합니다.”라고 대답을 했고, “누구랑 하나요?” 질문이 돌아왔다. “혼자 갔어요. 저처럼 혼자인 여럿이 함께 했죠. 저는 주변 풍광을 보는 여행이 아니라 내면을 보는 여행을 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안동에서 열린 명상 워크숍에 다녀왔어요.”라고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 뒤로 내게는 질문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면접장 바깥으로 나오는데 마음이 하나로 모아짐을 느꼈다. 이 일을 해야겠구나. 이 길이구나. 20대 초반부터 시작된 사회생활과 나를 찾는 인생 공부가 통합되는 순간이었다. 회사로 돌아와 사장님께 퇴사를 이야기 했고, 그간 배웠던 것들을 사람들과 어떻게 공유할까 설레였다.

삶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던 시간

2010년 봄부터 이태원, 홍대, 충무로, 여의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힐링 클래스라는 이름으로 명상 수업을 열었고, 페이스북을 통해 매일 짧은 일상을 공유했다. 개인 레슨을 하기도 했고, 그간 배웠던 많은 것들을 어떻게 쏟아낼지 고민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배운 것 보다는 본인들에게 필요한 것에 관심이 있었다.

2012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얼까로 방향이 바뀐 것이 바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하지만 중력의 방향처럼 나의 틀을 깨기가 어려웠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죽 만나갔다. 새터민, 학교밖 청소년,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족,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다고 알고 있던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배워나갔다. 그들의 삶을 그대로 존중하는 법을.

그리고 직장에서 성실히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의미 있는 딴 짓’을 할 수 있는 워크숍을 만들어냈다. 바로 놀이처럼 쉽고 재미있게 명상을 경험하는 워크숍 ‘공감놀이터’이다.

우연히도 깨달음의 면접을 보았던 대기업의 지원금을 받아 ‘마음피트니스’라는 콘텐츠도 만들었다. 그리고 기업과 단체에서 지금까지 진행해오고 있다.

나는 행복한 사람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하루하루의 마음이 더해지고 작은 행동이 모이고 쌓이며 일어나는 일임을 그 힘이 모여 어느 순간 큰 변화를 만드는 것임을 믿는다.

만남을 통해 변화를 시작하고, 마음속에 무거운 것들을 비우고, 서로 연결되어 나누는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는 지금의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남들이 걷지 않는 길을 만들어 걸었던 이 시간을 있게 한 반짝이는 순간들을 엮어보려고 한다. 이글의 묶음에 이어서 ‘대추씨’의 시간들을 또 한 번 엮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스친다.


이 글들을 스물아홉 빛이 되어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 나의 오빠 권정민에게 바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청년들의 반짝이는 순간들과 연결되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 내 삶에 ‘왜’라는 질문이 들 때면 조금의 위안과 방향성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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