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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희 Sep 09. 2020

논산 마음튼튼 훈련소

화양연화, 오래된 집이 가르쳐주는 이야기    

 

지난 8월 충남 논산으로 이사했습니다. 이도향촌移都鄕村, 큰 도시를 떠나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보려는 도전입니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이제 온라인으로 많은 것이 가능해지고, 필요한 물건들도 택배로 쉽게 받을 수 있기에 삶의 공간이 바뀌는 것이 크게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마음적으로 낯선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예측하지 못한 일들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들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그리움과 익숙함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문밖을 나서면 만날 친구와 장소가 꽤나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은 예상보다 큰 감정적 어려움이었습니다. 소중함과 귀함을 간절하게 느끼는 시간이 저에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사에 앞서 두 차례 KTX를 타고 논산에 와서 집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우연히 들어간 부동산에서 대뜸 15평형 아파트 6,500만 원 매매 물건을 안내해주셨어요. 서울 전세가도 안 되는데 매매가 가능하다는 게 놀라웠어요. 1인 가구가 살기 편한 풀옵션 원룸과 아파트 등을 돌아다녔는데, 매매가가 서울에 비해 무척 낮은 반면 전세 매물이 드물었어요. 월세는 서울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 때 당일에 나온 전세 매물이 있어 보러 갔습니다. 전세 4500만 원 24평형 연립. 낡고 오래된 기운이 가득했지만 가능성 한 가지가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친구들이 와서 추억을 남기고 편안하게 쉬고 갈 수 있는 공간이 될 것 같았어요. 그 집을 전세로 계약하고 2년간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서울에서 논산으로 이동하는 결정은 가벼웠지만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적 어려움과 절차들은 상당했어요. 아빠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서울 홍제동 집. 늘 품어주었던 이웃들을 떠나는 게 슬펐습니다. 이사 당일 폭우가 쏟아져 어려움도 있었죠. 기록적인 비가 내린 이번 여름을 기억하게 만든 이벤트였어요. 간신히 짐을 부리고 출발하니 광화문에는 집회가 한창이었고, 고속도로는 연휴를 맞은 휴가 차량으로 도로 정체를 겪었어요. 5시간 20분 만에 논산에 도착했습니다. 서울로 다시 가야 하는 이사 업체는 서둘러 짐을 부려놓고 떠났습니다.      


논산에서의 첫날밤은 왠지 울컥했습니다. 1985년에 지어져 그 당시에 지역에서 최고급 주택이었던 3층 연립은 이제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하는 집입니다.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니 처음부터 최근까지 살던 주인이 근래 집을 경매로 넘기게 된 사연이 담겨있더군요. 최근 새 주인을 찾은 집은 오래되고 손길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많이 불편했어요. 풀옵션 원룸처럼 에어컨도 없고, 오래돼서 묵은 냄새가 잘 빠지지 않아요. 이 집의 묵은 냄새와 흔적들을 하나하나 느끼고 가꾸면서 이 공간과 익숙해지겠지요. 매일 닦고 사랑을 주며 집과 관계 맺고 있어요.      


택시 기사님에 따르면 이 집은 1985년 논산에서는 최첨단 주택이었다고 합니다. 공무원이나 선생님들이 주로 살았다고 해요. 1985년도는 제가 국민학교에 입학했던 해에요. 그 당시 살았던 과천의 주공아파트가 떠올랐어요. 그런 집에 살고 싶었던 마음이 저를 이곳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용히 집에 있으면 화양연화를 겪은 노인의 품에 있는 기분이랄까요. 편안하게 지내기 위해 매일 아침밥을 짓고 청소를 합니다. 이전보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삶의 공간을 가꾸는 시간들을 만들어 보기로 합니다.      


새로운 일터에 출근도 시작했어요. 쓰던 탁상달력을 사무실에 가져왔을 뿐인데 낯섦이 조금 가십니다. 다른 관점에서는 익숙한 그림인데 새 공간에 오니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 또한 이 공간에서 다른 이들에게 그와 같은 역할을 하겠지요. 새로운 사람들, 공간, 분위기, 문화, 억양, 삶의 방식들... 매일 배워갑니다. 코로나를 겪으며 많은 것이 변화하는 요즘, 의도적으로 변화를 만들어 새로운 삶의 모양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다소 낯설고 어려움도 있지만 도전을 하는 설렘과 즐거움에 더 많은 관심을 둡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을 ‘논산 마음 튼튼 훈련소’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 24평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궁금해집니다. 여름에 시작된 집과의 만남이 가을, 겨울, 봄, 다시 여름을 맞이할 때까지 흥미롭게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제 인생의 시나리오 작가니까요.                                                                                                                                                                 



큰고모의 보살핌


이사 2주 차 토요일, 문자 알람이 왔습니다.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친절하게 사진과 함께 도착한 택배 알림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서둘러 귀가하고 싶은 설렘이 듭니다. 내가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받는 택배와는 조금 다른 기분을 느낍니다. 큰고모가 보내주는 택배는 부피와 상관없이 마음의 무게가 상당해요. 큰 고모의 삶과 사랑이 함께 도착하는 까닭이지요. 현관 앞에 자리한 택배 박스를 들고 집에 들어오니 재활용한 아이스박스에 밑반찬과 각종 떡, 요리 재료들이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저의 작은 냉장고는 그날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이스박스를 열어 식탁 위에 죽 펼쳐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종합 선물세트처럼 다양한 품목을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시루떡, 인절미, 찰떡, 약식 혼자 살림에 족히 몇 달은 먹을 수 있는 떡 살림입니다. 고모에게 떡은 축하의 의미이자 즐거움을 선물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얼마 전 이사와 이직을 한 제게 보내는 떡은 누군가와 나누어 먹으라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다듬은 국물용 멸치, 완두콩, 마늘 등 큰고모의 요리가 맛있는 이유는 좋은 밑재료 덕분이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몇 가지 품목만 받았을 뿐인데 그걸로 무엇을 만들어 먹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함께 온 밑반찬 멸치볶음과 황태 볶음. 밥만 지으면 한 끼 뚝딱해결하게 해주는 귀한 선물입니다.      


그 아이스박스에 담긴 것 중 저에게 가장 즐거움을 주었던 것은 박스 맨 위에 얌전히 포장된 ‘그것’이었습니다. 새마을금고 달력으로 겉을 싸고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몇 장의 종이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늘도 공부>를 받아보시던 큰 고모의 색칠하기 종이들이었습니다. 8장에는 알록달록 고모님만의 감각이 담긴 색칠이 곱게 담겨 있었습니다. 뒷면에 가로세로 낱말풀이가 덤으로 보였는데 글씨도 정겹습니다. 색칠하기는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뇌가 휴식하게 돕는다는데요. 고모님께 그런 선물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다양한 색깔로 색칠한 것들을 감상하니 저 또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고모께 전화를 걸었더니 “여우를 색칠하면서 많이 즐거웠다”라고 하시며 주변 친구들이 잘한다고 격려도 받으셨다고 합니다. <오늘도 공부>를 처음 받아보실 때는 “뭘 이런 걸 보내냐.” 하셨던 분인데 말이죠. 글도 꼼꼼히 읽으시고 제 글도 칭찬해주셨습니다. 기쁨의 순간을 서로 주고받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입니다. 고모께 안부 전화를 드리면 몸이 아프다는 말씀을 자주 들었는데 이제는 서로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큰 변화입니다.    

  

택배박스를 정리하다 보니 인천 신흥동 ‘으뜸 슈퍼’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큰고모의 가게입니다. 이곳은 동네 사람들이 택배를 찾아가기도 하고, 간단한 식료품들이 꽤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는 나들가게입니다. 몇 번 가본 일은 없지만 그곳의 풍경이 눈앞에 선합니다.

올해 82세인 큰고모가 이곳에서 일하시고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생동감이 함께 배달되었습니다. 고모부의 병환으로 일찍이 생업전선에 나서셨던 큰고모는 4남매를 훌륭하게 교육시키고, 나라에서 효부상도 받으셨습니다. 6남매의 큰 누나로 집안 경조사를 챙기는 것이며 형제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는 여성리더로서 존경하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싶네요.      

제가 기억하는 큰고모는 어린 시절에 재봉틀로 옷을 만들어 보내주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뜨개질 솜씨도 좋아서 고모가 만든 것들은 색깔이나 디자인 내구성이 모두 좋았어요. 일찍 패션업계로 가셨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듭니다. 음식 솜씨도 남다르셨죠. 무슨 재료든 맛깔나게 변신시키는 신기한 재주가 있으셨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별미는 콩나물 잡채입니다.

식초가 들어가 상큼한 양념에 꽃 모양으로 배와 당근을 썰어 넣어 모양을 내고, 아삭한 콩나물과 건강한 고사리가 들어간 명절 음식이죠. 맛을 본다는 것은 새로운 유전자가 생성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결코 그 맛을 물려줄 수 없을 테니까요. 고모의 삶을 통해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낀 것들이 지금 저의 삶의 어느 순간을 맛있고 예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만약 80대가 되면 큰고모처럼 즐겁게 색칠하고 일상을 가꾸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빙긋 웃음이 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보다는 좋은 선배가 되어주는 큰고모와의 연결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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