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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희 Apr 13. 2022

미역국

엄마 생일 축하합니다!

2022년 엄마의 생신 전날을 산본 엄마 집에 머무르고 있다. 한살림에서 소고기를 사다가 미역국을 끓여볼 요량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건데 엄마 생일에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이는 것 같다. 엄마를 위해 몇 차례 반찬이나 요리를 한 적은 있지만, 생일에는 국을 끓이기로 선택하기보다는 외식을 해왔던 터였다. 좋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도 외식보다 맛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이유였다. 특별한 날 요리를 하는 것은 살짝 욕먹을 각오를 하고 해야 한다. 맛없는 요리에 용서가 없으신 우리 어머니의 까다로운 입맛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음식은 꽤나 큰 상징 혹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도, 추석에 송편을 빚는 것도 음식을 매개로 한 연상 효과가 크다. 미역국. 탄생, 출산을 연상케 하는 완벽한 매개체가 아닌가. 생각은 꼬리를 문다. 외할머니는 8번째 자녀인 엄마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을까? 엄마가 태어나고 이후에 외삼촌들이 줄줄이 태어나서 엄마는 아들에게 터팔았다는 이유로 상당한 이쁨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태어날 당시에는 어땠을까? 서울 독산동 방 안에서 나를 낳은 엄마는 누가 미역국을 끓여주었을까? 미역국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궁금해졌다.


네이버와 구글을 찾아보니 여러 유래가 나오는데 주로 조선시대부터 미역국이 출생 탄생과 연결 지어진 것 같고 시작은 고려시대부터 인 듯. 건강과 축복, 그리고 경의와 감사의 표현이 담긴 음식인데 금기와 연관된 의미도 흥미롭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  '미역국 먹다'(문화어: 락제국 먹다[2])는 말은 시험에서 떨어지다는 관용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흔히 미역의 촉감이 미끌거리고 길을 가다 미끄러져 낙상한다는 어상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미역국이 시험 낙방을 연상시킨다는 해석과,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사건의 해산(解散)이 주는 부정적 의미가 임산부가 아이를 낳는 해산(解産)을 떠올리게 하여, 해산 후에 미역국을 먹는 표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침으로써 지금과 같은 '미역국 먹다'라는 표현이 시작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자녀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해에는 미역국을 끓이지 않으며 수능 치는 날 미역국을 팔지 않는 식당도 존재한다. 이외에도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 역시 미역국이 고시 낙방을 떠올리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음식이 가지는 상징성이 세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의미가 옮겨 붙는 것이 흥미롭다. 나의 미역국 취향도 바지락에서 소고기로 옮겨간 것을 생각해보면 변화는 나쁜 것도 틀린 것도 아니다.


엄마는 요즘 사당동에 위치한 동신중학교에 다니고 계신다. 대부분 엄마 또래의 어르신들이 학생이라고 한다. 지난해 입학을 하면서 코로나로 인해 줌으로 온라인 수업도 능숙하게 하시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치르며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계신다. 올해는 전면 등교 수업으로 바뀌어서 거의 매일 학교에 가시는데 오후 3시 출발 전에 수영장 아쿠아로빅도 다니시고, 피부미용도 즐기시면서 행복한 2022년을 즐기고 계신다. 2019년 암 진단과 수술 후 2년 차 기간 동안 엄마가 만든 변화는 눈부시다. 마치 버킷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실현하는 느낌이랄까? 학업에 대한 열정, 구몬 영어 산본지역 최고령 학습자, 임대 사업의 확장. 성장, 공부에 대해 느끼는 호기심이 엄마를 질병이나 노화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듯하다.


음력 3월 13일, 올해는 양음력 1일이 맞춰져서 양음력이 한 달 차이로 날짜가 맞물려가고 있다. 덕분에 까먹지 않고 기억하기가 쉬웠다. 12일에 남이섬 답사 일정이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취소가 돼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화상으로 회의를 대체하고 늦은 오후 엄마의 생파를 준비했다. 첫 번째는 한살림에 가서 장을 보기, 제주 어간장과 한우 300G. 담백한 소고기 미역국에 어울리는 특별찬으로 해물 동그랑땡과 소라 젓갈무침을 구입했다. 엄마 집에는 완도산 돌각미역이 늘 대기하고 있으니 미역은 패스. 오후에 업무를 하는 틈틈이 미역국을 끓여두고, 엄마가 학교 갔다가 귀가하는 시간에 맞춰 늦지 않을 시간에 생일 케이크를 사러 다녀왔다. 너무 크면 부담스러우니 작은 사이즈로 과일이 풍성하게 얹어진 생크림 케이크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이번 국은 특별하게 잘 되지 않았지만 맛이 나쁘지 다. (1인분 살림에 익숙한 나는 조금만 음식 분량이 많아져도 맛이 불규칙하다.) 소소하게 준비하는 기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것으로 나는 엄마 생일 기념으로 선물을 받았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각, 4교시 수업을 마치고 조금 일찍 귀가한 엄마를 위해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여 깜짝 선물을 했다. 예상보다 훨씬 즐거워하는 엄마와 아버지의 얼굴에 너무 기뻤다. 마침 아버지께서 술 한잔 거하게 하고 오셔서 목청껏 신나게 생일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뭔지 모를 뿌듯함마저 느꼈달까. 노년의 부모님들이 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은 귀여움이라는 표현을 넘은 뭉클함이 있다. 작은 케이크와 미역국만으로도 이번 생일 파티는 대성공이었다. 이번 달 피부미용샵에 등록하고 싶으시다는 친구와 통화를 듣고 등록 비용을 생일 선물로 송금해드리고 나니 뭔가 올해 엄마 생일은 앞뒤로 완벽하다.

3월부터 L기업의 요청으로 50 플러스 세대를 위한 '웰에이징 캠프'를 기획 중이다. 아름답게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하여 책도 보고 정보를 많이 수집하고 있다. 덕분에 내 안의 고정된 정의와 주변 사람들의 변화를 살펴보게 되는 요즘이다. 기획과 운영은 별개여서 기획의 즐거움과 달리 운영 상의 어려움을 살짝 맛보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나의 급한 성정과 융통성 없는 모습을 느끼고 있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쓴 맛과 단 맛을 고루 느낀다는 것을 머리로 알면서도 막상 쓴 맛을 보면 즐기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때 엄마의 생일을 함께 보내면서 조금 물러서서 여유를 찾게 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웰에이징적인 관점에서 좋은 시간이었다. ㅎ 엄마의 생일 아침, 비가 내려 조금 춥다.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한산한 시청역 앞 던킨도너츠에 앉아 글도 마무리하고, 오후 회의도 준비하는 시간이 감사하다. 4월의 서울 3일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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