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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희 May 27. 2022

우리 동네 책방 추앙기

2022  초여름의 이야기


마녀체력 이영미 작가와 함께한 북토크 오디오클립

http://naver.me/5Fl7eD1L



90년대 인덕원 사거리 신성중고 인근에 자리한 진명 서점은 유년의 잊지 못할 장소다. 매달 아빠의 심부름으로 신동아를 가져오는 일을 맡았었고, 종종 아빠와 함께 방문해 참고서를 사 오곤 했다. 다른 책도 사고 싶었지만 사달라는 말을 못 했다. 나는 말이 없는 아이였고 늘 속마음에서 책을 욕망했다. 그 욕구를 풀어낸 곳은 과천도서관이었는데, 학교를 파하고 어린이실에서 보낸 시간이 내게 얼마나 큰 안정과 평화를 선물해주었는지 모른다. 중학교 3년간 독서토론회 활동을 했다. 긴 커트 머리의 통통한 몸집의 사서 선생님의 은근한 열의가 만들어낸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읽었고 진로를 선택했다.


논산 어쩌다산책 책방에서 그 책을 다시 만났다. 돌아보니 나는 꽤나 그 책의 노란 애벌레처럼 살아왔구나 싶더라. 그곳에서 사십 대 중반의 삶을 잠시 회고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그곳을 내게 소개해준 분 역시 책방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뭔가 서울 책벌레들이 논산에 와서 마음을 연결한 만남이었달까. 책방 사장님도 서울에서 살다가 20여 년 전 논산으로 오셨다고 했다. 나의 유년이 기억이 가득한 과천에서 신혼을 보냈다는 말에 뭔지 모를 유대감을 느꼈다. 나이 차이는 제법 났지만 우리는 로사와 써니로 단짝이 되었다.


지난 2021년 가을, 논산에서 동네책방을 만들고 그곳에서 독서모임도 하고 북토크도 열고,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아봐타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싶다는 바람을 페이스북에 공유해서 큰 호응을 받았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코로나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 유동인구도 적은 곳에서 실험을 하기가 두려웠다. 실행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11월부터는 '오늘도공부'를 발행하는 꿈틀 팀에 합류하여 재택으로 일을 하는 바람에 점점 멀어지는 신기루가 되어 가고 있던 터였다.


4월 8일 책방에 들어선 첫 날을 기억한다. 소설, 그림책, 에세이, 인문서... 사장님의 취향이 가득한 서가. 나랑 비슷한 취향에 마음이 꽉 찼다. 2년여간 그 공간을 만들어온 정성과 사랑이 느껴졌다. 첫날부터 감사하고 들떠서 '제가 북큐레이터를 하겠다'라고 손을 들었다. 사장님도 기다렸다는 듯이 오케이를 해주셨고 매일 출근이 시작되었다. 서울에서 미팅이나 강연이 있는 날 외에는 거의 매일 사장님 내외와 커피를 마셨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객식구처럼 매일 얻어먹기 미안해 공주 공산성 밤 산책을 갔을 때는 나도 몰래 계산을 해보았다. 그렇게 60여 일의 시간 동안 우리는 아주 멋진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책방 이야기는 요기 https://brunch.co.kr/@minheegwon/483


1. 책으로 삶을 연결하는 시간 독서모임

사경센터 김 모 씨가 독서모임을 하고 싶다기에 '그건 내가 전문이지' 하면서 기획을 시작했다. 모두가 안전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매개로 삶을 연결하는 콘셉트를 잡았다. 가까이가기 질문상자를 활용해 약간의 퍼실리테이션도 가미했다. 독서치료사로서 가슴을 여는 일상의 오픈채팅방도 구성했다. 첫 모임을 책방을 오래 드나든 찐 독서마니아들과 함께 시작할 수 있도록 사장님이 흔쾌히 전화번호를 몇 개 주셨다. 삶도 잘 꾸려가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날 생각에 마음이 차올랐다. 첫 준비모임은 5월 12일 저녁 7시. 그날도 서울에서 꽉 찬 일정을 마치고 논산으로 내려와 저녁을 맞이했다. 그곳은 정확히 내가 있을 자리였다. 편하고 좋았다.

첫모임 후기는 요기 워ㅋ워ㅋ 독서모임 시작! (brunch.co.kr)



2. 북 토크를 만들어보자

SNS에 서점 이야기를 종종 올리니 작가며 출판사 지인들이 관심을 보였다. 오랜만에 연결된 사람부터 자주 연락하는 사람까지 동네 책방과 내가 너무 잘 어울린다고 했다. 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좋았다. 월급 받는 일도 아니지만 정성껏 서점에 나가서 노트북이며 스마트폰으로 내 일을 하면서 손님을 맞이했다. 방문자수는 매우 적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했다. 그 소중함을 모아 모아, 독서모임에서 결정된 책 <걷기의 말들> 저자 마녀체력 이영미 작가에서 쪽지를 남겼다. 2020년 한강변에서 달리기 모임에서 만난 인연의 끈이 이렇게 이어졌다. 논산에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으시다기에 같이 시민공원도 걷고 반야산도 가고 싶었다. 욕심이 컸다. 반짝반짝사진방 최영교 작가에게 영상도 부탁을 했다. 좋은 콘텐츠를 하나 만들어봐야지 싶었다. 날짜는 5월 25일로 정해졌다. 예산서도 짜보았다. 예상된 적자다. 아니 기쁜 투자로 개념을 바꿔보자. 이 투자로 나는 무엇을 거둘 것인가? 이 투자로 나는 관계 인구에 대한 콘텐츠를 더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관계 인구에 대한 설명은 요기 https://umum.co.kr/hstrend220520/  


3. 훈련소로 가는 길에서

북토크를 준비하던 월요일 오전에 어김없이 서점을 지키고 있었다. 오전 11시쯤 책방 문을 열고, 12시 넘어 슬슬 점심 먹으러 갈까 했는데 손님이 왔다. 입영하는 젊은 친구였다. 알다시피 논산에 최대 숙박교육시설 있지 않은가. 경제경영서를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책방에는 아쉽게도 그 분야 책이 별로 없다. 쥔장 취향이라. 공식 북큐레이터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책들을 골라주려고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경찰행정학과를 다니는 대학생인데 복무 후 경제나 경영 쪽으로 전과를 하고 싶다고 했다. 경제적 자유를 빠르게 만들고 싶단다. 그 친구에게 제가 골라준 책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정여울의 글쓰기 책,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 4주의 시간 동안 욕먹을 각오로 ㅎ 수명연장의 큐레이팅이다. 생전 처음 인문학 책을 읽어보는 청년에게 좀 과했다 싶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기준점을 찾아보면 돈에 대한 시각이 확장될 거라는 조언과 함께 건넸다. 급히 연무로 가느라 차도 대접 못했는데, 친구 얼굴이 환해져서 나도 좋았다. 책 세권 들고 입영하는 친구에게 건강하라고 파이팅 외쳐줬다. 아 뿌듯해. 책방 큐레이터로 명함도 못내밀뻔 했는데 임무 완수다!

책방 한 켠 북큐레이터의 자리였던 책상


4. 용산에서 논산까지

드디어 5월 25일 수요일 아침 7시에 산본에서 출발해서 강남, 종로를 부지런히 움직여 서울 일정을 마무리하고, 용산역에서 마녀체력 작가님을 만났다. KTX 기차 안에서 작가님 동네에서 사 온 샌드위치와 빵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대편집자로 업력에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까지 더해져 체구는 작지만 품이 넓은 인생 선배님의 공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서로를 편하게 만드는 사이, 느슨한 신뢰의 파장이 좋다. 2020년 초여름밤 내가 논산에 가는 것을 강력 추천해주신 것처럼 곧 이동할 변화에 대해서도 적극 응원해주는 마음을 선물 받았다.

추앙하는 두 대상(선배와 책방)을 동시에 만나는 저녁 시간을 향해 달려가는 길은 내게 그저 마법 같았다. 그날 저녁 북토 크는 내가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적당하고 느슨한 유대감으로 모인 10여 명의 참석자와 마이크도 없이 생목으로 진행되었지만 귀를 기울이는 모습들. 가볍지만 든든한 먹거리와 참여자들의 행복한 웃음. 책방을 가득 채운 좋은 에너지의 파장이 금요일 아침까지 전해진다. 아마 6월의 제주까지 이어지겠지. 아우 좋아라~


  Photo by 놀뫼신문 이진영 데스크



5. 6월에는 제주

북토크를 마치고 마지막 KTX로 서울로 이동하는 이영미 작가님과 최영교 작가님을 배웅해드리고 뒤풀이를 함께했다. 가슴이 열리고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참 편하다 감사함과 석별의 아쉬움 모두 아름다웠다. 이튿날 시민공원에서 만두님과 만나 산책을 하고 오전 10시 독서 모임을 진행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힘이 된다. 그들과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연결되었다. 새 독서모임 지기는 만두님이 맡아주기로 했고, 나는 랜선으로 로 함께할 것이다. 6월에 함께 읽을 책은 <최소한의 선의>로 선정되었다.


6월부터 제주에 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어서 당분간 책방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 잉꼬와 나눈 대화(이 서점에는 잉꼬가 한 마리 산다), 주인장들과 함께한 점심 백반 기행, 공산성 산책까지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기억들이 나를 이곳에 다시 데려다주겠지. 그리고 느슨한 연결로 이어진 독서모임 친구들까지. 얻는 게 많다. 오늘은 짐을 싸서 제주로 택배 부쳐야 하는데 짐싸기 보다  먼저 글을 쓰며 감정을 정돈한다.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정의한 추앙은 그저 믿고 응원해주는 것이라 했다. 나의 사랑스런 독서모임 친구들과 책방 지기, 그리고 논산에서의 2년의 시간에 제주 당근 주스로 추앙의 건배를~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추앙의 스토리를 기대하며~ 세이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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