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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희 Jun 19. 2022

제주 입도 21일째

제주에서 일하기를 시작해봤습니다.

일요일은 여러 감정이 찾아옵니다. 내일 출근에 대한 압박감, 지난 한 주에 대한 피로, 미래에 대한 불안함까지... 그럴 때는 아침에 몸을 움직여 음식을 만듭니다. 한 잎 , 한 입 여린 잎들과 교감을 나누면 마음이 정리가 돼요. 색깔도 모양도 질감도 맛도 향도 제각각인 잎채소들은 자라온 속도도 사정도 모두 다릅니다. 다가올 시간도 그러하겠지요. 남은 일요일도 건강하게 편안하게 시간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감사함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e58wuxhNONY?feature=share


이틀 전 금요일에는 그간 제주의 시간을 잘 견딘 보상이라도 하듯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종일 제주의 로컬 식문화 브랜드 #제주민속오일장 #할망장터 #제주한살림 #베지근연구소 #입말음식 #제주밥상살레 #쿡플러 등을 연이어 만났고 식문화 고수인 제주사람들을 느끼고 경험했습니다. 돌고 돌아 만난 소울 프렌즈들의 대거 등장에 한껏 신이 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새로운 식문화 커뮤니티의 탄생이 기대되는 연결에 심장두근두근 하더라고요.


제주패스에서 주최한 오일장쿠킹클래스
베지근연구소 소장님의 로컬투어 안내는 정말이지 쌍따봉~~~
금요일 밤까지 진행된 입말음식 북토크 밋업

토요일에는 입말 음식 밋업에서 만난 3명과 급 만남을 가졌죠. 산천단을 거닐었고, 중산간 메밀밭의 고요함 속에서 새소리도 들었습니다. 로컬푸드로 합이 맞는 셋은 제주한살림 담을 매장 주말 농부 장터에 가서 신나게 장바구니를 채우고 헤어졌어요. 저를 뺀 나머지 세명은 저녁까지 자리물회를 먹었다고 합니다^^. 서로가 앞다퉈 좋은 정보를 나누고 의논해서 만든 주말여행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멋진 제주의 두 번째 주말이었어요.

일요일 오전은 제주한살림 담을매장 주말장터에서 사 온 우영팟 채소들과 아침부터 대화를 나눴습니다. 사 올 때는 한 줌이었는데 간밤에 물에 넣어두니 생기를 찾았죠. 잎의 질감도 냄새도 맛도 각각 너무나 개성이 넘쳐 아침부터 즐거움이 빚어졌어요. 선흘리에서 사 온 비자 기름과 한살림 볶은 소금, 고수 씨앗 약간을 넣어 드레싱을 해서 먹었습니다. 이것이 살 맛이 아닌가 싶네요.

잎채소 다루는 법은 정읍 할머니에게 배웠어요. 여름에는 잎채소를 거두면 금방 숨이 죽어 버릴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럴 때 자기 전에 물에 잎을 넣어두고 자면, 아침이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여름엔 채소를 거두면 금세 숨이 죽으니 물 묻히지 말고 신문지에 싸 두었다가 먹을 만큼 간밤에 물에 담가 두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샐러드 만들 때 천으로 물기를 닦아주고 손으로 뜯으면 식감이 더 좋다는 것은 요리책을 만들던 에디터 시절에 머릿속에 저장해둔 내용이죠. 살아온 시간들이 음식에 깃듭니다.


6월부터 제주에서 일하기로 마음먹고 5월에 이력서를 보내고 채용 과정을 지나 6월 2일 자 입사를 하기로 하고 5월 30일에 논산에서 출발, 군산공항을 통해 제주로 입도했습니다. 첫주말은 선흘 고양이 집사하러 다녀왔어요. 그다음 주말은 서울에서 이전부터 예정된 강의를 위해 2박 여정으로 서울을 다녀왔고요. 나머지 시간은 제주에서 일하고, 사람을 만나며 지냈어요. 뜻깊은 삼칠일을 맞이하며 산천단에 가서 인사도 올리고, 귀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고, 친구들과 나눴습니다.  '여름 제주'에서 만들 프로젝트들을 종종 소개할게요. 기대해주세요^^


제주에서의 삼칠일을 축하하 마음으로 글을 적어봅니다. 앞으로의 시간들도 축복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기 추앙의 다짐도 느껴봅니다. 읽어주신 분들께도 축하와 축복의 에너지를 가득 연결해볼게요!





메밀밭 위치를 알려준 친구가 제주대학교 자연문화유산교육학과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보내준 내용이에요.

유홍준 작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_제주 편>에서 발췌한 내용 공유해봅니다. (스압 주의)

요약하면 #한라산신제 #청백리목사_이약동  #천연기념물160호_곰솔8그루 입니다.


한라산 산천단

우리 답사의 첫 유적지는 한라산 산천단(山川壇)이었다. 한라산 산신께 제사드리는 산천단에 가서 답사의 안전을 빌고 가는 것이 순서에도 맞고, 또 제주도에 온 예의라는 마음도 든다. 산천단은 제주시 아라동 제주대학교 뒤편 소산봉(소오름) 기슭에 있다.

여기는 제주시에서 한라산 동쪽 자락을 타고 서귀포로 넘어가는 1131번 도로, 속칭 5·16도로 초입으로 건너편엔 산악 통제를 위한 검문소가 있다. 이 길을 계속 따라가면 성판악 너머 돈내코로 이어지니 한라산 들머리에 산신제를 올리던 제단을 마련한 것이다.

본래 제주인들은 탐라국 시절부터 해마다 정월이면 백록담까지 올라가 산신제를 올렸다. 고려 고종 40년(1253)에는 아예 나라가 주관하는 제례(祭禮)로 발전했고 이후 조선왕조에 들어서도 제주 목사는 이 제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겨울에 백록담까지 올라가자면 날이 춥고 길이 험해 그때마다 제물을 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얼어 죽거나 부상당하곤 했다.

조선 성종 1년(1470)에 부임한 제주목사 이약동(1416~93)은 이런 사실을 알고 지금의 위치에 제단을 만들고 여기서 산신제를 지내게 했다. 제의를 형식이 아니라 정성으로 바꾼 대단히 혁신적인 조치였던 것이다. 이것이 산천단의 유래다.


『증보탐라지 (增補耽羅誌)』를 보면 산천단에는 한라산 신묘라는 사당과 가뭄 등 재해를 막기 위해 제를 올리는 포신묘(神廟)라는 사당이 따로 있었고 주변엔 소림사(少林寺)라는 절과 소림과원(果園)이라는 과수원이 있어 제법 장한 규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 모두 사라지고 제주도 현무암을 짜 맞춘 아주 소박한 제단과 이약동 목사가 건립한 작은 비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산천단 주위에는 제단을 처음 만들 당시에 심었을 수령 500년이 넘는 곰솔 여덟 그루가 이 산천단의 역사와 함께 엄숙하고도 성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소나무의 사촌쯤 되는 곰솔은 주로 바닷가에 자라기 때문에 해송(海松)으로도 불리고, 줄기 껍질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이라고 한다. 곰솔은 생명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제단을 만들 당시 사람들은 모진 비바람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제주인의 기상을 나타낼 수 있는 곰솔을 조경목으로 심었을 터인데 오늘날에 와서는 아예 산천단의 상징목이 되어 이렇게 빈 제단을 지키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160호로 지정된 여덟 그루 곰솔의 평균 높이는 30미터, 평균 둘레는 4.5미터다. 맨 안쪽에 있는 곰솔은 가슴높이 둘레가 6.9미터로 가장 굵으며, 바로 옆의 곰솔은 높이 37미터로 우리나라 소나무 종류 중에서 가장 키가 크다고 한다. 나이를 먹은 다른 곳의 곰솔은 대체로 많은 가지를 내어 원뿔 모양으로 자라는 데 비해 이곳 곰솔은 가지를 별로 달지 않고 늘씬하게 쭉쭉 뻗은 것이 처음 심을 때 촘촘히 심어 자람 경쟁을 시킨 탓이라고 한다. 입구의 곰솔은 하늘로 솟아오르기가 힘에 부쳐서인지 아래부터 양갈래로 갈라져 비스듬히 몸을 구부리고 있다.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나무살이와 함께 신령스러움을 그렇게 보여준다.

산천단 주변에는 자생한 팽나무, 예덕나무 멀구슬나무, 쥐똥나무, 산뽕나무들이 이 해묵은 곰솔들을 호위하듯 감싸고 더욱 성스러운 제의적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으니 유적지에서 건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조경

임을 다시 한번 알겠다.

그런데 얼마 전, 여기에 참으로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천연기념물 곰솔을 벼락으로부터 보호한다고 곰솔보다 더 높이 피뢰침 철기둥을 세워놓은 것이다. 이게 잘한 일인가 못한 일인가? 나는 식물학자 박상진 교수께 여쭈어본 적이 있다.

"피뢰침을 꼭 저렇게 세워야 하나요?"

"아니죠. 저 산비탈 위쪽에 있는 나무에 설치하면 표도 안 나고 기능도 훨씬 뛰어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설치했을까? 아마도 이렇게 해야 피뢰침 탑을 세웠다는 표가 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 세상에 어려운 것이 표 안 나게 일하는 것이다. 산천단에는 오래된 작은 비석이 곳곳에 있어 이 제단의 연륜을 받쳐주었는데 근래에 '목사 이약동 선생 한라산 신단기적 비'라는 표 나게 큰 신식 비가 세워졌고 제법 큰 화장실도 만들어져 예스러움을 많이 잃었다. 그 뜻과 편리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고즈넉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미 세운 걸 어쩔 수 없다면 산천단 조경의 슬기를 배워 비석 뒤쪽과 화장실 앞쪽에 키 작은 나무들을 심어 적당히 가려주면 한결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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