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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디지털카메라

by 쁘띠프렌





디지털카메라

가로:9.5cm 세로: 5.5cm 두께: 1.9cm




2014년 9월 18일 - 9월 29일. 13박 15일 스페인 자유여행.

여자 나이 ‘오십’이 넘으면 나타나는 증후들. 외모는 표가 덜 나도 신체 나이는 속일 수가 없었다. 아킬레스건인 피부가 먼저 신호를 보내고 불면증으로 꼭두새벽까지 기면증 환자처럼 서성거리고 나면 수면 부족으로 비몽사몽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즈음. 남편은 지인인 자유 여행가 K로부터 ‘2014년 하반기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고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게 참여 의사를 물었다.

“ 나 혼자? ”


직장인으로 보름 남짓 휴가를 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새 프로젝트를 출시해서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남편과 동행하기는 어려웠다. 홀로 떠나는 여행에 부담 느낀 아내가 결정 장애인처럼 행동하는 것을 본 그는 일단 K에게 사정을 말하고 예약금을 보냈다.


“ 일주일 더 생각해 보고 알려줘. 항공권 예약되면 취소 시 위약금 있는 거 알~쥐? ”

변죽이 죽 끓듯 하는 아내 마음을 알기에 그는 장난치듯 못을 박았다. 오히려 자의 반 타의 반 결정하고 나니 홀가분했다. 일주일 내내 여행 일정을 들여다보며 당시 컨디션 난조에 몇 달 후 일어날 일을 예측하며 앞서 걱정을 했다. 혹시 타지에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만한 음식과 과일 소스를 검색해 보고 미리 비상약도 준비했다. 갈등의 연속인 취소 기간을 넘기고 드디어 여행을 떠나기로 정하고 고민을 끝냈다.

여행 떠나기 며칠 전. 퇴근한 남편이 불쑥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넸다. 상자를 열어보니 손바닥 크기의 앙증맞은 ‘S사 디지털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짐을 싸며 사용하던 ‘DSLR camera’를 작은 체구로 메고 다니기엔 역부족이라 핸드폰 사진기로 충분하다고 말했는데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아내 취미를 챙기는 세심한 그만의 센스에 감동 한 아름. 여행하는 동안 디지털카메라는 애착 인형처럼 크로스 가방끈에 매달아 부착시켰다.

여행 4일째.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내부를 관람하던 중. 달리 작품을 설명하는 현지 도슨트에 이끌려 바삐 움직이고 있을 때 관람객들과 마주치는 과정에 묶은 끈이 풀어졌는지 미술관 입구에 도착해서야 카메라 분실을 알아챘다. 순간 사색이 되어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니 안내원에게 제지를 당하고 언어불통에 발만 동동거렸다. 천금 같은 시간이 흐르고 기다리는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적잖이 당황스럽고 속상했다. 다행스럽게도 관람객이 주워 안내소로 가져와 찾을 수 있었다. 비록 값비싼 카메라는 아니지만 아내의 취향을 고려해 물건을 고르고 용도에 맞는지 꼼꼼히 살피며 정성을 다하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기에 내게는 더없이 귀한 물건이었다.

리무진 버스에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끈이 풀어지지 않게 한 번 더 꼬아 졸랐다. 이후 물건이 제자리에 있는지 재차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5일간의 스페인 여정 동안 애착 카메라는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고 무사히 귀환해 여전히 선물처럼 포장되어 간직하고 있다.

갱년기를 보내는 아내를 위하여 여행을 기획하고 추진해 준 것도 고마운데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에 감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물 같은 여행을 계기로 위태로운 시기를 슬기롭게 대처했고 삶의 두려움도 조금씩 사라졌다.

이제 몇 년 남지 않은 그의 은퇴식.

이번엔 내게 건네준 선물 같은 휴식을 그에게 전해 주고 싶다.

“ How about ~ 블라♪블라♪블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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