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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병아리

유혹의 선물

by 쁘띠프렌


노랑 병아리


엄마엄마 이리 와 요것 보셔요.

병아리 떼 뿅 뿅 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봄(1953): 오수경 작사, 박세훈 작곡




봄이면 우리 동네 철물점 앞에는 사과 상자에 병아리들을 담아 놓고 꼬마 손님들을 기다리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반쯤 접힌 벙거지를 삐딱이 쓰고 한쪽 안경알이 깨져 금이 간 안경을 쓴 할아버지를 아이들은 ‘삐약이 할아버지’라 불렀다.


오후가 되면 할아버지는 낡은 카세트에 동요 테이프를 틀고 꼬마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이면 성공. 상자 앞으로 즐비하게 서 있는 그들을 재빨리 휘-익 둘러보며 영업용 미소를 발사하는 할아버지는 아랫니 한 개가 빠져 언뜻 보면 김이 껴있는 듯 까맣게 구멍이 나 있었다. 그는 헤벌쭉 웃으며 손주 대하듯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다란 꼬챙이로 보란 듯 상자 안 병아리들을 톡! 톡! 건드렸다.

“ 삐약. 삐약. 삐약. ”

사과 상자 안에는 좁은 공간에 이십여 마리 노랑 병아리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노랑 병아리들이 종종거리며 왔다 갔다 하면 아이들 머리도 일제히 좌우로 움직였다. 병아리들 귀여움에 참지 못한 아이가 상자 안으로 손을 쑤-욱 넣으면 할아버지는 꼬챙이로 아이 손을 톡! 치곤 병아리 한 마리를 꺼내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감질나게 유혹했다.

“ 오십 원 갖고 왔어? ”

아이들 가운데 돈 있는 친구는 손을 번쩍 들고 복권 당첨이라도 된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노랑 병아리를 쓰다듬으면 뾰족한 부리를 앞뒤로 왔다 갔다 묘기를 부렸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까르르 자지러지듯 아이들 웃음소리가 났다. 아이들에게 노랑 병아리는 마치 말하는 장난감 같았다. 잠깐 병아리 머리를 쓰다듬었을 뿐인데 할아버지는 잽싸게 병아리를 상자 안으로 집어넣었다. 말하는 장난감을 눈앞에서 놓친 아이는 안달이 나서 호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동전을 찾았다. 주머니에서 잊고 있던 동전이라도 찾아내면 쾌재를 부르며 할아버지께 내밀었다. 턱없이 부족한 돈. 단돈 20원이라도 나오면 그 꼬마 손님에겐 노랑 병아리 한 마리 당첨. 순식간 주변으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다시, 봄.

철물점이 철거되고 그곳엔 새 건물이 들어섰다. 철물점 앞에서 들었던 동요는 더는 들리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사과 상자 속 노랑 병아리들도 이제는 만날 수 없다. 그때 그 시절. 주머니 속 코 묻은 동전으로 유일하게 살 수 있었던 말하는 장난감 ‘노랑 병아리’. 할아버지의 노랑 병아리는 동심을 자극하는 ‘유혹의 선물’이었다.


삐약. 삐약. 삐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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