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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Nov 29. 2021

손님



어디 하나 열린 곳은 없지만 이 작은 공간에 공기가 흐른다. 그가 왔다. 이전의 계절보다 의기소침해진 해가 전한 온기를, 응축해서 안고 있던 공간에 겨울밤이라는 손님이 들어선다.  거침없이 방석을 깔고 앉는다.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던 온기는 놀라 자리를 피해 위로 올라가버리고, 밤의 낯이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손바닥을 펴서 허공에 올려 든다. 그가 입김을 분다. 온기를 몰아낸 그 입김이 너무 차가워서 손가락이 아리다. 더 내밀지 않고 손을 거둬들인다. 서른아홉 해 동안 셀 수 없이 만났지만 악수를 할 만큼 서로 반기는 사이는 아니다.



겨울밤은 때가 되면 손님으로 오지만 자리의 주인처럼 당당하다. 그가 저 먼 서쪽, 얼음의 대지에서 가져다주는 문제는 늘 어려워서 답을 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다는 듯 방석에 눌러앉아 긴긴 시간을 기다려준다. 내게서 떼지 않는 그의 눈이 부담스러워 나는 작은 초를 켜고 촛불 뒤에 나를 숨긴다. 촛불도 둘 사이가 불편한지 아른아른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차나 한 잔 하실까요, 하아-작은 숨을 뱉는다. 손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아직 데워지지 않는 찻잔을 응시한다. 이 겨울밤은 집요하게 나에 대해서만 묻는다. 한 달 전만 해도 목놓아 울던 풀벌레 소리가 사라졌는데 나는 이 고요가 야멸찬 손님의 배려인 것을 안다. 겨울밤의 고요가 오직 나에게 집중하기를 종용하는 듯이 느껴져 못내 불편하다.



그와  사이의 공허한 공간을 채우기 위해 물을 끓인다. 바글바글  끓는 소리가 손님이 뿜는 한기와  손과, 천정에 들러붙은 온기 사이에서 정처 없이 진동하도록. 손님과 내가 찻잔을 사이에 두고 다시 자세를 정렬한다. 그는 여전히 나를 지켜보고 있고, 나는 아직 입을 떼지 못한다. 긴긴 시간 만에 차갑지만 뜨거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았던 젊은  밤에 빚진 것이 많다. 또다시 빚을 지고 싶어서 인내심이 좋은 손님 앞에   잔을 내어놓는다.



이번에도 오래 걸릴지 몰라요. 겨울밤이 끄덕인다. 그래, 기다림이 내가 하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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