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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Nov 17. 2019

에필로그 - 다시 출근합니다.

더 촌스러운 직장생활 2막을 시작합니다.

일 년이 넘는 휴직 후, 복귀까지 이제 한 달 남짓. 내가 지금 겪는 이 감정은 걱정일까, 설렘일까. 이 글을 시작할 때 나는 내 과거 업무일지를 정리하면 일과 나에 대해 어느 정도 규정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글을 다 쓰고 다시 들여다본 내 업무일지 속 나, 그리고 동료들은 신기루 같았다. 어느 날은 어린 시절 생기 넘치는 영광의 순간인 것처럼 보이다가 또 어떤 날 들여다보면 다시는 들어가기 싫은 진흙탕 냄새가 나기도 했다.


다행히 에피소드를 이어 하나의 책으로 엮는 과정에서야 좀 더 솔직한 내가 드러났다.


지난 휴직기간 동안 난 기만이 만든 과거의 영광 속에 있었다. 마치 세계 최고의 성실함과 빼어난 능력, 동료에게 사랑받는 내 모습이 주를 이루었던 것 같던 조작된 기억의 편린들. 망각이 선물한 기억 속에서 나는 잠시 넋을 놓고 행복해했다.


하지만, 책을 퇴고하면서 인정하기 싫은 내 모습이 선명해졌다.  


겸손하다 믿었지만 사실은 오만했다.

나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너그럽고자 했지만 나에게 엄격하고 남에게도 엄격했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남 탓하는 그저 그런 직장인이었다.

일을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성과를 좋아하는 거였다.

후배에게 좋은 선배가 되고 싶었지만 그저 덜 진화된 꼰대 정도였다.


처음 이 글을 쓸 때 나는 사실에 근거한 생생한 에세이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믿고 있는 사실이 사실이 아닐 수 있고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의도가 없었다 해도 누군가 불쾌했다면 잘못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이 책을 마친다. 언제고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불편한 순간이 겁이나 문장 하나 써내려 가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괜찮다고 말해준 이들이 있었다.


언제나 나 하고 싶은 건 다 하라며 나보다 나를 더 지지해 준 '남편'.

육아휴직 중인 나이 많은 아줌마일 뿐인데 함께 글을 읽고 써준 '사각사' 모임.

초면에 '제 이야기가 재미있을까요?'라고 물었던 나에게 '충분히 재밌을 것 같다'라고 답해준 브런치 작가님.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다며 백기를 들 즈음, 그래도 이런 업계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동기 언니.

비공식 검수 위원회로 활동하며 글의 중심을 잡아주신 증산 랩몬님. 

10년 전처럼 학회에서처럼 브런치에서 함께 글을 쓰고 피드백을 나눠주던 선배.

마지막으로 말할 필요 없이 영광이던 진흙탕이던 그 시간 속에 함께 해준 동료들. 

너무나 많은 이가 이 책을 함께 해주었다.


혹자는 그저 온라인 오픈 플랫폼에 올리는 글 모음에 뭐 그리 의미부여를 하나 할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그럴지 모르나 이 글은 내 '촌스러운 직장생활' 1막을 정리하는 쫑파티다. 


내 촌스러운 직장생활 1막은 내 마음대로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생활이었다. 내 감정, 내 체력, 내 실력, 내 의지, 나만 잘하면 되는 직장생활. 하지만, 이제 펼쳐질 내 직장활은 다르다. 아이가 있다. 아이의 감정, 체력, 건강, 발달 등. 내가 감히 통제도 예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 함께할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기대해보려 한다. 감사하게도 내가 촌스러운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주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내 뒤를 버티고 있다. 그뿐인가. 나를 기다려준 사람들이 있다. 이따금씩 메시지를 보내며 굳이 필요하지 않을 나의 의견을 한 번씩 물어봐주던 상사와 바쁜 일상 속에도 나에게 그리움을 표해주는 동료. 그리고 회사에 놀러 오라며 복귀 일정을 물어주던 후배들까지.


이제 나는 이들과 함께 내년부터 나의 '촌스러운 직장생활 2막'을 시작하려 한다. 과거의 반성, 미안함, 자부심은 이 책에 묻어두고 다시 출근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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