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모든 게 처음이었지.
모든 게 처음이더라
어느덧 나는 마흔 고개를 넘었다. 이제 막 들어섰지만, 한편으로 혹독하고 다른 한편으론 배짱이 두둑해지는 오묘한 나이인 듯하다. 십 대 때는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입학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알았다. 공부하느라 궁둥이에 잔뜩 붙은 살도 저절로 빠질 것이고, 즐겁고 신나는 일들만 가득할 것이며 마음대로 결정하고 즐길 일도 곱절은 늘어날 거라며, 학교 선생님들과 엄마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그 거짓말 중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대학 생활은 즐겁지만 불안했고,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도 난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구체적으로 내 미래를 설계하고 결정하기엔 정보도, 계획도, 돈도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살도 빠지지 않았다.
이십 대 중반에는 회사원이 되었다. 상상 속 나는 꽤 멋지고 실력까지 겸비한 재원이 되고 싶었지만, 성과를 내며 눈치까지 봐야 하는 그저 그런 직원이었을 거다. 행복한 일들이 있었고 좋은 친구들이 생기기도 했다. 직업을 갖는다는 건, 경제력을 갖추고 ‘나’라는 인간의 내실을 다지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무언가를 끊임없이 포기해야 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을 마주하며 상실감에 끝없이 무너지기도 했고, 별것 아닌 것에 기분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복잡한 시간이었다.
이십대 후반에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심장 밑에 꾹꾹 눌러놓은 오래된 꿈같은 거였다. 다시 책을 읽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스무 살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학생 식당에서 학식을 먹었지만 늘 마음이 가벼울 순 없었다. 스무 살에 허락됐던 실수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했다. 난 그 만큼 성장했고, 더 많은 경험을 토대로 뚜렷한 성과를 내야 하는 경계선에 서 있었다. 어느새 난 곧 서른이었으니까.
사실 이십 대를 지나서 곧 삼십 대가 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이가 달라지고 피부의 탄력과 체력이 달라지는 정도. 여전히 내겐 모든 일이 다 처음이었다. 새롭게 맺게 되는 인연에는 더럭 겁이 났고, 주변인의 자잘한 잘못을 눈감아주다가 오해에 사로잡히기도 했으며, 결혼은 했지만 늘 집안일이 버거운 초보 주부이기도 했다.
어느 날 문득 난 왜 늘 조금씩 부족할까. 한계선 너머로 도전해볼 마음은 없는 걸까 스스로 따져 묻다가 밤잠을 설쳤다. 아무도 정해놓지 않았는데, 혼자만 끝없이 좌절하는 불가능한 행복의 기준점. 무언가 편해지고 싶었지만, 어느 정도가 적정한 기준일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어느새 마흔을 넘어섰다.
강아지를 기르게 되면서 그 시간이 떠올랐다. 내 인생에 강아지가 빠진 적은 없었던 것 같아서, 나는 강아지를 기르는 것에 전문이라 자신했지만, 사실 아니었다. 가장 기본적인 배변 훈련도, 용변을 처리하는 일도 늘 부모님의 몫이었다.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며 끌어안고 사진은 찍었지만, 직접 샴푸를 풀어 싹싹 씻긴 적은 기억 속에 없었다. 얼마만큼의 사료를 먹여야 하는지, 이 시기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멍한 머릿속으로 검색 창을 두들겼다. 예뻤던 강아지들의 모습과 행복감이 남아있을 뿐, 그 외엔 모든 것이 처음인 셈이었다.
지금 이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나의 과거는 그저 풋풋하기만 했다 싶다. 예뻤던 시절엔 내 모습을 몰랐고, 조금 진득하게 기다리면 좋았을 타이밍에 난 조바심을 냈다. 열심히 살았지만 무엇을 위해 달리는 줄 몰랐다. 마흔이 넘어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고 어깨와 다리가 쑤시지만 스무 살로 돌아갈 마음은 없다. 다만, 가끔 넘어져 홀로 울던 예전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그냥 그 자체로도 충분한 것을, 난 처음이라 몰랐던 거다.
감사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또박또박 걷자고 스스로 다독인다. 털북숭이 친구를 꼭 끌어안으니 온 가슴이 따뜻하다. 그것 역시 새로 안 사실이다.
강아지의 체온은 38.5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