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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연 Nov 11. 2021

너를 위해 준비했어

너를 위한 A to Z



가족 준비물


 출산을 앞둔 예비 엄마들은 예정일이 다가오면 미리 출산 가방을 싸둔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중국에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리스트에 꽤 신경을 썼던 기억이 있다. 예정일이 되어서도 나올 생각이 없던 아들은, 타들어 가는 엄마 속도 모른 채 빙글빙글 뱃속에서 잘도 놀았다. 출산 가방 속 준비물이 이론에 의한 거라면, 출산 이후 집안에 흩어져 있는 각종 물건은 육아 현실을 반영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효과를 봤다며 추천한 물품이 정작 나에게는 무용지물인 경우도 허다하다.

 아들을 키우던 시절, 육아 파라다이스를 맛보게 해주던 아이템 중 하나가 스스로 돌아가는 모빌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면 내 눈이 뱅글뱅글 돌 정도로 단순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모빌 덕에, 난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갈 수 있었다. 아기가 많이 커서 앉을 수 있게 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다양한 장난감을 경험하게 해주면서, 잠시나마 쉴 틈을 얻기도 했다. 우리 집 꼬마가 어렸을 적만 해도, 해외 직구를 통해서만 구매 가능했던 물건들을, 요즘은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가끔 마트에서 육아용품을 보면, 치열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자꾸 식판을 흔들다가 던져서 아예 식탁에 찰싹 붙는 식판을 구했고, 바닥에 치발기를 떨어뜨리고 울어서 치발기에 줄을 달았던 기억. 돌아보면 아련하고 행복했지만, 온몸과 마음이 피폐했다. 그래도 난 그 시절로 기꺼이 돌아갈 마음이 있다. 아이는 점점 더 빨리 자라고, 나는 그토록 행복했던 순간들을 점점 잊고 살아가니 말이다.


 강아지의 시간은 사람의 것보다 4배는 빠르게 흘러간다. 누군가 말했듯, 반려동물로서의 개가 가진 가장 큰 단점은 사람보다 수명이 매우 짧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말랑말랑한 아기 강아지의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진다는 거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훅 지나가 버린 우리 강아지의 어린 시절이 너무 아쉽다. 발바닥도 말랑거리고 왕왕 짖어도 귀엽던 그때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기 강아지 시절은 휴대전화에 남아있다. 아들과 강아지가 한 컷에 담긴 사진을 보며 혼자 자주 웃는다. 

 사실 우리는 강아지를 입양할 준비 없이 충동적으로 맞이하다 보니,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미 용인 외곽에 겨우내 겨울 캠핑지를 예약해둔 상태였는데, 접종을 다 마치지 않은 아기 강아지를 데리고 외부에 있을 수가 없어 거실에 CCTV를 설치했다. 다행히 아기 강아지는 꽤 오랜 시간 잠을 잤다. 남편은 새벽에 집에 잠시 들러 불린 사료를 챙겨주고 잠시 머무르다가 다시 캠핑지로 돌아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5번의 접종을 마무리할 때까지 나는 꽤 긴장했다. 정말 아기처럼 약하고 작아서 보호해야 할 것 같았다. 울타리 밖으로 꺼내주면, 분홍색 발바닥으로 이곳저곳을 다니곤 했는데 몸이 작아 못 들어가는 곳이 없어서, 가끔 꺼내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8kg을 훌쩍 넘은 지금, 그때 더 많이 만져보고 느껴보지 못한 게 아쉽다. 마치 첫 아이 키우듯 조심조심 귀하게 다루기만 했나 후회가 됐다.


 필요한 용품도 한둘이 아니었다. 밥그릇과 물그릇 외에 갖가지 물건들을 차례대로 마련했다. 뭐든지 물어뜯는 기간을 대비하여 장난감도 여러 종류 준비하고 담요 형태의 집도 샀다. 손으로 만져보며 세심하게 골랐다. 배변 패드는 최대한 저렴한 걸로 많이 준비했다. 배변 훈련이 완벽하게 될 때까지 배변 패드는 많은 양이 필요할 게 분명했다. 목욕은 접종을 마치고 하라고 권고했지만, 접종을 마치기도 전에 온몸에 각질이 심하게 일어나 치료 개념의 수분 샴푸를 따로 사야 했다.

 “얘 돈 꽤 많이 드네.”

 남편의 말에 내가 따라 웃었다. 


 요즘은 애완동물 페어 알림이 문자로 도착한다. 반려동물용품 행사가 있을 때 구매 이력이 있는 업체에서 친절하게도 “보호자님. 사료가 떨어졌나요?”라며 자상하게 나에게 말을 건넨다. 세상은 넓고 살 것도 많다. 놀라운 아이템을 발견해서 장바구니에 담을 때, 스스로 묻는다.

 “지금 이 소비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 안은 강아지, 지금 누구보다 나에게 딱 붙어 지낸다. 


 모두 너를 위한 거란다. 

 우리 행복하게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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