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삶 속에서 추억에게 물어보기.
당신의 추억 속 강아지 이름은 무엇인가요?
강아지를 키우기로 했다는 말에 엄마로부터 처음 돌아오는 대답은 “너 더 힘들어서 어쩌니.”였다. 엄마는 알고 있다. 아무래도 엄마인 내가 가족 중 제일 고생일 거라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 결국 내가 강아지에게 가장 깊게 빠져들 거란 사실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절대적 시간의 양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깊이에 대해 엄마는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강아지가 궁금한 엄마와 아빠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미끄러지듯 사뿐사뿐 거실을 활보하는 아기 강아지를 보며 엄마와 아빠는 탄복했다.
“똑순이 닮았지? 아니, 똑순이가 더 예뻤지.”
“똑순이랑 비슷한 종이래. 역시 스패니얼이 예뻐.”
“그래, 참 똑순이가 예뻤는데.”
도대체 똑순이가 예쁘다는 건지, 우리 밍밍이가 예쁘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밍밍이를 어루만지며 똑순이 이름을 열 번도 넘게 언급하셨다. 손바닥으로 밍밍이의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으며, 두 분은 과거 속 어느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똑순이는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길렀던 강아지였다. 진한 갈색의 코카 스패니얼, 영국 태생의 혈통 있는 개라며 아빠는 어깨에 힘을 줬지만, 정작 녀석은 목줄에 묶여 우리가 먹고 남은 김칫국물과 생선 대가리로 밥을 먹고 살았다. 게다가 이름도 똑순이라니, 전혀 영국답지 않았다.
하긴, 그땐 많이들 그랬다. 실제로 개장수가 있었고 개를 기르고 또 먹기도 하는 기이한 문화. 좋은 혈통이라는 아빠의 목소리가 뇌리에 남아있을 뿐, 내 기억 속 똑순이는 목줄에 묶여 늘 컹컹 짖기만 하던 커다란 초콜릿 색 개일 뿐이다.
나는 종종 엄마 심부름으로 개밥을 주러 똑순이에게 갔다. 스크래치가 잔뜩 생긴 오래된 플라스틱 바가지에 개밥을 가득 담고서. 생선 대가리와 식은 밥, 새콤한 김칫국물을 붓고 간혹 작은 멸치가 들어 있기도 했다. 가족 식사가 끝나고 남은 음식을 한 데 섞어 먹였으니, 사실 똑순이와 나는 같은 걸 먹고 자란 셈이다.
똑순이에게 밥을 덜어주고, 나는 그 앞에 주저앉아 오래도록 녀석을 바라보곤 했다. 쩝쩝 소리를 내며 급하게 먹던 모습이 오래된 스냅 사진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개밥 주던 주걱을 쪽쪽 빨아 먹기도 했던 그때의 나는 몇 살이었을까? 때아닌 옛 생각에 한참 추억에 젖어 든다.
아기 강아지는 예뻐하는 사람을 알아보듯 아빠 무릎에 앉았다가 엄마 다리에 비볐다가 애교를 부렸다. 사랑받을 준비가 완벽히 되어있는 녀석이었다.
놀랍게도 시부모님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셨다. 예전에 길렀던 해피와 거의 똑같다며 손뼉을 마주치셨다. 해피는 나도 아는 개인데 털 색깔 말고는 같은 점이 거의 없는데 말이다. 물론 나는 해피가 어렸을 때의 모습은 모르니까.
“그려. 시츄가 제일 좋은 개여. 참 좋지.”
“밍밍이는 시츄 아니고 킹찰스 스패니얼이에요. 할아버지.”
손자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시부모님도 이미 추억 여행에 한창이었다. 해피가 똑똑해서, 얼굴이 예뻐서 모두가 좋아했다며 따뜻하고 잔잔하게 대화를 나누셨다. 얼굴이 워낙 예뻐서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다 칭찬을 했다며 뿌듯해 하셨다. 해피가 죽을 뻔했던 순간을 이야기하며 그리워하셨다.
해피는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라, 삶을 반려했던 식구였다. 자식들이 자라 떠난 후, 허전한 밥상에 마주 앉던 진정한 식구.
생각해보면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위해 강아지를 입양해서 기르는 나도, 자식이 출가해 가정을 이루고 또 그 옛날의 자신처럼 작은 강아지를 기르는 모습을 보는 부모들까지도.
그저 강아지 한 마리일 뿐인데. 강아지는 각기 다른 추억으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같은 시공간 속에 있어도, 우린 각기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추억은 선물 같았다. 미끄러지듯 사뿐사뿐 걷는 아기 강아지와 함께 도착한 뜻밖의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