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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Nov 11. 2021

천천히 걸어서 멀리까지 함께

속도는 중요치 않으니까.




천천히 친해져요


 두 달이 갓 넘은 강아지에겐 울타리가 필요했다. 기본 접종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보호자의 의무였다. 울타리 안에 배변 패드를 잔뜩 깔고 물통과 몇 가지 장난감을 넣은 후에 강아지를 울타리 안쪽에 넣었다. 손바닥만 한 강아지는 부산스럽게 배변 패드를 뒤집기도 했고 울타리에 매달려 낑낑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아들은 강아지가 귀엽다고 말하면서도 뒤로 물러났다. 처음에 뻣뻣하게 서서 머리를 살짝 만졌다.

 “부드러워. 귀여워.”

 잠깐 좋아했다. 그다음엔 깡충깡충 뛰다가 배변 패드를 밟고 미끄러질 때 크게 웃었다. 그리고 오줌 얼룩 위에 엎드릴 때 더 크게 웃었다. 순조로운 과정이었다. 아이의 마음이 순식간에 활짝 열렸다.

 아기 강아지는 물에 불린 사료만 먹을 수 있었는데, 먹어도 허기가 지는지 밥을 줄 때마다 밥그릇에 머리를 박고 허겁지겁 먹었다. 울타리를 올라타려다가 물그릇에 발을 빠트렸고, 잠시 후 그 물을 먹었다. 울타리 밖으로 꺼내주면 미끄러질 듯 스케이트 걸음으로 움직였다. 아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놀랍게도 아기 강아지를 향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털을 만져보고 발바닥을 관찰하면서 차차 사랑이 돋았나 보다. 사실, 자신을 향해 짖지도 공격하지도 않으니 귀여운 털 뭉치 정도로 인식했을 수도 있다.

 친구들의 부러움도 한몫했다. 강아지 동생이 생겼다는 말에 모든 친구가 방방 뛰며 부러워했고 강아지를 보러 집에 가도 되냐고 물었다. 겁 많은 아기 강아지는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초등학생들을 보고 기겁하며 뒷걸음질 했다. 소파 아래 중간쯤, 식탁 의자 밑 구석 같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피해 숨을 돌렸다. 

 아이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사진을 찍기도 했고, 강아지 케이지 안에 직접 들어가서 배꼽 빠지도록 웃기도 했다. 강아지 케이지 안에 두 명이나 들어가 있는 걸 보고 나도 정말 놀랐다. 심지어 아이들은 문까지 닫고 들어가서 깔깔깔 웃고 있었는데, 강아지가 어리둥절 지켜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간 친구들이 “나도! 나도! 강아지!”를 외쳤다고 했다. “그럼 한 마리 키워 봐요.”라고 내가 말하자, 엄마들은 대부분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가 두려움을 덜어내고 나니,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아기 강아지를 괴롭힌다는 것. 물론 같이 놀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었지만, 아이가 적정 수위를 지켜가며 강아지와 노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난 미처 몰랐다. 배려와 보호 뿐 아니라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아이가 자라나는 속도에 비해 강아지는 몇 배나 빠르게 성장할 것이고, 성견이 된 후에는 지금처럼 과격한 행동을 참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 때나 만지면 안 돼. 특히, 뭘 먹을 때 만지면 빼앗길까 봐 물 수도 있는 거야.”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끄덕이지 않았다. 꼬리를 잡아당기기도 했고 작은 인형을 던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끊임없이 타일렀다. 그리고 그사이에 몇 번 강아지의 입질이 있었다. 강아지는 아들의 거친 놀이 방식이 별로인 모양이었다.

 그때그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했다. 예측했던 어려움이었는데도 해결할 수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둘 다 한창 크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각자의 속도에 따라, 부지런히. 내가 더욱 부지런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반려견에 대해 공부도 더 많이 해야겠지만. 


 강아지가 성견이 되었고, 아들도 부쩍 큰 요즘엔 둘 사이에 안전상의 문제는 없다. 함께 부대끼며 노력하는 시간이 준 선물이다. 


 조금 천천히 친해져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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