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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연 Nov 12. 2021

아프지마, 울지마.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우리는 형제


 아들은 6살 여름에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HS 자반증이라는 면역성 질환 중 하나였는데, 아들의 경우는 관절이 붓고 다리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증상을 동반했다. 

처음에는 그저 발이 조금 아프다고 했다. 아프다는 꼬마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잠시 지나가는 통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오후엔 걷지 못하겠다며 앉은 채로 울음을 터뜨렸다. 걷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에 난 잔뜩 겁을 먹었다. 동네 정형외과에 두 번이나 다녀왔지만,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순 없었고 미열과 함께 다리에 붉은 반점이 돋아나는 걸 보고 대학병원에 가기로 했다. 

 아이가 막상 입원하니 난 너무 정신이 없었다. 난생처음 병원에 입원한 아이는 모든 것을 신기하게 바라봤지만, 막상 손등에 주삿바늘을 꽂을 땐 병원이 떠나가라 울었고, 내게 더욱 달라붙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들은 스테로이드 치료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증상이 호전됐다. 이틀이 지나고, 발의 부기가 빠져 걸을 수 있게 됐고 붉은 반점도 줄어갔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아기들이 세 시간마다 분유를 먹고 울어대서 난 정말 온종일 각성상태였지만, 오히려 정신이 혼미해서 스스로 자책할 여유조차 가질 수가 없었다.

 재미있었던 사실은, 아들에겐 그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는 점이다. 큰 침대에 누워, 게임을 맘껏 할 수 있고 날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상 장난감을 사서 오니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이의 표현을 덧붙이자면, 밥도 맛있고 간식도 잘 나온다고 했다. 5성급 호텔 느낌.

 매년 추적 검사 시기가 돼서 병원에 갈 때면, 어김없이 묻는다. 


 “엄마. 나 이번에는 몇 밤 자는 거야?”


 여하튼 나는 긍정적인 아들에게서 또 많은 걸 배우고 말았다. 


 난산의 과정을 겪으며 난 소위 건강염려증을 갖게 됐다. 산후 회복이 지나치게 더뎠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출산 후 몇 주간 제대로 자지도 쉬지도 못하는 각성의 상태가 이어졌다. 산모에게 가장 중요한 회복의 시기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나는, 그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체력 저하와 각종 질환에 시달렸다.

 건강해진 후에도 조금만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더럭 겁부터 났다. 또 아픈 건가? 또 빨리 낫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은 걱정을 낳고 키워서 날 더 괴롭게 했다. 아프다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직시하고 의연한 대처를 위한 연습이 절실했다. 아기의 웃음 한 번에 행복이 우르르 쏟아지던 시절이었는데도, 난 자주 아팠고 아파서 많이도 울었다.

 그런 나를 긍정적이고 엉뚱한 아들이 지켜줬다. 몸을 피곤하게 하는 각종 말썽으로, 울고 떼쓰다가도 엄마를 최고로 사랑한다는 어설픈 사랑 고백으로. 

 나는 그저 뱃속에 품은 생명을 낳아줬을 뿐인데, 용감하게 태어난 보석 같은 아이가 작은 손으로 날 위로했다. 태교라고 말은 했지만 지루하게 길어지는 입덧을 견디느라 힘들어만 했던 시간도 길어서, 그 괴로움이 전달됐을까 문득 미안함이 차오른다.


 ‘엄마’라는 말끝에 울림이 있다. 미세한 파동을 타고 말로 담지 못할 감정이 전해진다. 어떻게 노력해도 갚지 못할 감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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