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니다
케미스트리
키즈 카페라는 신세계가 있다. 적어도 내가 아기를 키우던 때는 진정 신세계가 맞았다. 집에 콕 들어앉아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과정을 무한 반복하다 보면,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르는 채 머리를 풀어 헤친 좀비가 되기 일쑤였다. 물론 그 시간은 분명 지나가고 다시 돌아오지도 않기 때문에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긴 하지만 그만큼 매우 힘들었다. 모든 것을 아기의 타이밍에 맞춰 생활하다 보면, 엄마의 먹고 자는 리듬은 엉망이 되기 마련이었고 말이다.
이럴 때 비슷한 월령의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 큰 힘이 된다. 한번 모여서 아기들끼리 어울리게 해주면, 옹알이하는 아기도, 기저귀를 차고 힘차게 기는 아기도, 뛰어다니면 온갖 물건을 다 꺼내는 아기도 모두 잘 논다. 울거나 안기는 횟수가 줄어들면 엄마는 한결 편해지고, 태도도 부드러워진다. 엄마와 아기 모두 윈윈하는 게임이랄까. 모아놓고 한 데 어울리면 그만큼 육아의 어려움이 후루룩 지나가버리기도 했다.
그 쉴 틈의 정점을 찍는 게 바로 키즈 카페다. 재미있고 신기한 장난감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실내 테마파크인데, 아들은 주로 볼풀이나 트램펄린을 좋아했다. 친구들과 키즈 카페에 다녀온 날이면 밤에 재우기도 수월했고 확실히 떼도 잘 부리지 않았다. 비용은 대략 만원 정도였는데, 나는 아낌없이 그 비용을 지출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아주 좋아했고, 나는 좀 편안했으니까. 따뜻한 커피를 호로록 마시는 잠깐의 여유는 몹시 달콤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난 각종 키즈 카페를 섭렵했다. 에어바운스, 실내 기차, 편백 놀이방, 미술 체험실 등 종류와 운영 방식도 다양해진 그곳은, 입장료만 내면 아이도 즐거운 경험을 하고 나도 모처럼 여유롭게 무언가를 마실 수 있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반려견 놀이터’를 알게 됐다. 시에서 운영하는 무료 놀이터도 있지만, 각양각색의 사설 놀이터들이 저마다 매력을 뽐냈다. 강아지 가족을 맞이하고, 난 늘 그곳이 궁금했다. 아들에게 그러했듯이 강아지에게도 신세계지 않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반려견 놀이터에 방문해보기로 했다.
초여름이었다. 아들이 태권도장에서 체험학습을 떠난 날, 우리 부부는 강아지를 데리고 외곽에 있는 반려견 카페에 방문했다. 말로만 듣던 애견 카페에 간다니, 매우 설렜다. 입구를 통과하니 넓게 깔린 초록빛 잔디가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예쁜 의자와 테이블이 휴양지 분위기를 연출했다. 메뉴판에 적힌 ‘강아지를 위한 수제 간식’ 글씨가 지나치게 귀여웠다. '수제 닭가슴살' '강아지용 퍼프치노' 모든 것이 얼마나 귀엽던지.
우리는 편안한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봤다. 참 다양한 사람과 강아지가 있었다. 주먹 두 개만 한 치와와가 데님 치마를 입고 도도하게 앉아 있었다. 검은색 닥스훈트는 어찌나 계속 달리기만 하는지 보는 내가 다 지칠 지경이었다. 예민한 타입의 강아지들은 주인의 무릎에 앉아 간식을 먹거나,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앙칼지게 짖었다. 남녀와 강아지가 커플티를 맞춰 입고 온 팀도 있었다. 반려견을 위해 손수 만든 간식을 주머니에 넣고 강아지를 따라다니며 "엄마가" "아빠한테 와."를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강아지는 겁쟁이였다. 그것도 왕 겁쟁이. 주변 사람들이 예쁘다며 손을 내밀어도 내 의자 안으로 파고들어 가 벌벌 떨었다. 이왕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으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냄새도 맡고 활발하게 놀면 좋겠는데, 나와 남편 옆에 딱 붙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예쁜 초록 잔디를 배경으로 강아지 사진을 남기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 의자 밑에 숨어 있느라 우리 강아지는 잔디를 밟아 볼 틈이 없었다.
의자 밑에 두고라도 일단 휴식을 취했다. 우린 이미 돈을 냈거든!
“겁이 많은가 보네요.” 하며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이라 몰랐는데, 겁이 엄청 많네요.”하고 내가 답하자, 그 사람은 우리 강아지가 귀엽다고 말하면서 근처에 앉아 일장 연설을 늘어놨다.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하며 반려견 훈련법에 대해 한껏 아는 척을 했다. 그는 나에게 ‘어머님’이라고 했다가, ‘견주님’이라고 하고, 또 ‘보호자님’이라고도 말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에는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았고, 세 가지 호칭이 혼란스럽기도 해 겨우 웃음을 참고 있었다.
“키즈 카페랑 비슷하지 않아?” 돌아오는 길에, 운전대를 잡은 남편이 말했다. 맞다. 키즈 카페의 강아지 버전이었다. 강아지를 예쁘게 단장 시켜 뽐내는 사람, 시끄럽게 왈왈 짖어대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을 하던 사람, 자꾸만 옆에 와서 참견하는 사람. 남편과 한참 대화를 나누다 어떤 포인트에서 함께 큰 소리로 웃었다.
세상은 넓고 다녀 볼 곳이 이렇게 많다니. “너로 인해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되네.” 하며 강아지를 쳐다봤다. 내내 숨어있기만 하던 녀석은 뭐가 그리 피곤했는지, 이미 옆으로 쭉 뻗어서 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