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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연 Nov 14. 2021

저기요, 외로우신가요?

참견 민족

밤 산책


 새끼 강아지는 산책을 무서워했다. 태어나서 줄곧 실내에만 있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모든 강아지는 산책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우리 집 강아지는 달랐다. 줄을 매고 밖으로 나가면 낑낑거리며 제 자리를 맴돌거나 안아달라며 구슬피 울었다. 남편은 습관이 되면 좋아할 거라고 했지만, 나는 그런 날이 올까 싶었다.

 처음 집에 왔을 때는 워낙 작아서 목에 줄을 메는 것 자체가 어색해 보였다. 울타리 밖으로 꺼내주면, 행여 내가 걷다가 밟지나 않을까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강아지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고, 어느새 밖에 나가면 낙엽을 따라 뛰느라 정신이 없었다. 

 역시 모든 개는 산책을 좋아하는 게 맞았다.

 

 오전 산책을 나가면 꼭 옆 라인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는 “어머머” 하는 탄성을 쏟아내며 옆으로 바짝 붙어 강아지에게 아는 척을 했다. “나 너 알아. 예쁜 것.” 털 빛깔이 곱고 예쁘다며 말하다가 “순하죠?”라고 급작스레 내게 물었다. ‘네.“하고 내가 머뭇거리면 ”그럴 거야. 얘가 양을 모는 개라고. 양몰이.”라고 말하고 홀연히 다시 가던 길로 사라졌다.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건 좋아도, 무언가 태도가 불쾌했다. 다음날 또 마주치면 저 멀리서부터 양몰이, 양몰이 하며 한달음에 달려와서는 한참 동안 말을 걸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 새끼. 예쁘게 생겨서. 저게 양몰이야 양몰이.” 하는 말을 듣고, 난 이제 저 할머니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후가 되어 아이를 학원 셔틀에 태우고 나면, 단지 아래쪽까지 꽤 긴 코스로 산책을 하기도 했다. 사람을 잘 따르는 탓에, 강아지는 경비 아저씨 한 분 한 분 아는 척을 하려고 했고 이리저리 날뛰었다. 대부분 귀여워해 주셨지만, 혹여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달려들까 싶어, 나는 팽팽하게 줄을 당기며 긴장을 유지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

 “귀가 덮여 있어서 귓병이 자주 난대요.”

 마치 메아리처럼, 소리는 들리는 데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헐떡이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하얀 말티즈를 품에 안은 아주머니였다. 나에게 강아지 귓병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서 어디선가 달려온 모양이었다. 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묵례를 했다. 그리고 발길을 돌리는데, 사료는 뭘 먹이는지 간식은 얼마나 주는지를 거듭 물었다. 심지어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나를 계속 따라오면서 강아지 키우는 법에 관해 설명했다. 

 나는 조금 피곤해졌다. 최대한 예의를 지키며 자리를 떴다. 정신없이 날뛰는 강아지를 통제하기도 바쁜데, 이제 누가 오는지까지 살펴야 하는 지경에 이른 셈이다. 알아서 하겠다고 버럭 화를 냈어야 하나. 

 순수한 의도로 예의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건 언제나 힘들다.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사사건건 내 삶 속에 발을 넣던 사람들. 자기 생각과 방식이 모두 옳고 다른 건 다 틀렸다는 식, 그들은 예의가 없는 거였다. 살면서 적정한 선을 지킨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늘 실수하고 반성하고, 되짚으며 상기하는 부분이다.

 모두가 각기 다른 기준을 갖고 나름의 삶을 산다는 건 간단하면서도 당연한 진리인데, 그 당연한 진리를 못 지키고 살고 있다. 나에게도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권하고 싶은 욕구가 가슴 깊은 곳에 잠겨 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그들은 그냥 ‘말’을 하고 싶은 거라고. 당신과 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거란 확신에, 일단 대화를 시작하는 거라며.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한다. 

혹 그들이 많이 외로운 건 아닐까.

묻고 싶어진다.

저기요, 혹시 많이 외로우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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