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너의 삶인데 말이야
반려동물의 중성화는 이미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기르던 동물을 유기하는 행태도 엄중히 금해야 하지만, 소위 마당 개(농촌 지역에서 보통 주인은 있으나 특별히 관리하지 않고 마당에 풀어놓거나 묶어놓고 키우는 개)의 관리가 시급하다는 언론 보도를 본 기억이 난다. 마당 개의 반복적인 임신 출산으로 개체 수가 급증하고, 강아지들이 유기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도 대대적인 중성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처음부터 밍밍이의 중성화에 찬성했다. 어차피 집에서 함께 살 가족이고, 아직 어린아이에게 강아지가 발정 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했다. 남편은 조금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그 역시 사람의 편의 때문에 삶 자체를 결정하는 것이니, 나 역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중성화에 찬성은 했지만, 실제 수술하는 시기에 대해선 고민이 됐다. 동물병원에서는 5차 기본 접종이 끝나자마자 하면 되고, 얼마 안 걸리는 수술이니 그냥 잠시 맡긴다 생각하면 된다며 쉽게 말했다.
사실, 나와 남편은 중성화 과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수의사의 호기로운 실력 자랑이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다른 건강 부분에 타격이 있는 지, 언제가 적기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실제 중성화 수술의 후유증은 많이 알려져 있다. 일단은 식욕이 급증하고 호르몬의 변화로 살이 찌고, 관절의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고 했다. 개중에 우울감을 느껴 산책을 거부하고 활력도 떨어진다는 온라인 카페의 글을 보니 걱정이 훅 끼쳤다.
마지막 접종을 하던 날, 수의사와 상담을 했다. 우리가 궁금했던 부분을 다 말하고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중성화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수의사가 우리를 잠시 훑어보더니 “개 키워보신 적 있어요?”라고 기분 나쁜 투로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중성화 안 하면 못 키워요. 밖에서 키워야 해.”라고 덧붙였다. 강아지 삶의 질 따위는 묻기조차 민망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남편은 나보다 더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그 길로 나와 우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어린데, 뼈도 피부도 성장해야 하는 생명체에 대해 깊이 고민하려는 게 그렇게 우스워 보이는지. 물론, 온종일 진료를 보고 상담을 하는 수의사 입장에서는 우리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해도 말이다.
지인에게 추천을 받은 동물병원으로 진료를 옮겼다. 그리고 심각하게 또 중성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만난 수의사는 나와 코드가 좀 맞는 듯했다. 그리고 세밀한 진료를 위해 복부 초음파를 진행했는데, 웬걸, 밍밍이가 잠복고환을 갖고 태어난 걸 알게 됐다. 수의사는 아직 어리니, 간혹 기다리면 복부에 잠복한 고환이 제 자리로 내려오기도 하니 기다려보겠느냐 물었다. 다만, 만약에 아래로 내려오지 않으면 결국 개복을 해야 하니, 무한정 기다릴 순 없다고 말했다.
강아지는 결국 생후 8개월 차에 개복 수술을 하게 됐다. 복강에 잠복한 고환은 종양으로 번질 수 있어 수술하는 게 좋다고 했다. 수술 날이 정해지고 나는 오전 중에 밍밍이를 병원에 데려다주었다. 맡기고 돌아서는 데 주책맞게도 눈물이 흘렀다. 안타까움과 걱정, 미안함 등이 섞인 복잡한 눈물이었다. 혈관을 잡고 약물 알레르기 검사를 하고 저녁 늦게야 수술에 들어갔다. 밤 10시가 다 돼서야 마취에서 깼고, 데려가도 되고 하루 병원에 뒀다 다음 날 데려가도 된다고 문자가 도착했다. 데리러 가겠다고 연락을 하고 병원으로 갔다. 유리문 밖에서 보니, 개복 후 봉합한 지 한 시간밖에 안 된 강아지가 네 발로 똑바로 서서 병원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역시 개와 사람은 다른 모양이었다. 그 놀라운 회복력이란 말이지.
밤사이 난 낑낑거리는 강아지가 걱정 돼서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둥근 넥카라를 목에 끼고 어떻게 누워도 영 불편한지 앓는 소리를 냈다. 손을 뻗어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었다. 나도 모르게 “미안해”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만 하루 만에 밍밍이는 아픔을 잊고 잘 뛰어다녔다. 역시 큰 수술은 아니었나 보다. 중성화를 진행하고 나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냄새도 좋아지고 성격도 더 온화해진 듯했다.
결국은 좋은 결정이었다. 강아지에겐 미안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내 마음이 아파서 내심 놀랐다.
정말 나는 녀석의 엄마가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