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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Nov 12. 2021

걱정 나무

님아 그 나무를 키우지 마오.



 강아지는 아무거나 먹어댔다. 어린아이가 있는 우리 집에는 레고나 수수깡 조각 같은 자잘한 물건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늘 불안했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들 방에 찰흙, 지우개 조각, 색연필 가루 등이 흘러넘쳤고, 강아지는 아들 방 앞에서 자주 서성였다. 종이나 휴지는 무조건 씹어 먹고, 산책길에는 길가에 자라난 잡풀들을 와작와작 뜯어 먹었다. 몸에 닿는 부드러운 느낌도 엄청나게 좋아해서, 밖에서는 꼭 풀 위로 뛰어다녔고 집에서도 쿠션이나 매트, 그리고 사람의 몸 위에 붙어 앉곤 했다.

 “얘가 아무거나 먹어요.”

 한 달에 한 번 동물병원에 심장사상충 약을 받고 기본적인 검진을 하러 들르면, 나는 수의사에게 걱정을 가득 섞어 고민을 토로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고, 걱정은 개운하게 털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도 할 겸 동네 천변을 강아지와 함께 걷던 중이었다. 강아지는 많이 걸으면 용변을 보곤 했는데 그날도 그랬다. 치우는 게 번잡하고 괜히 운동하시는 분들 눈치가 보여 용변은 한 번으로 끝내길 간절히 원하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자꾸 머뭇거렸다. 이윽고 한 덩이 떨어뜨리나 싶었는데 그 뒤로 빨간 잉크가 뚝 뚝 떨어지는 게 아닌가. 혈변을 보는 건 처음이라 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용변을 치우는 동안, 강아지는 묽은 잉크 방울을 두 번 정도 더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녀석의 표정과 상태는 여전히 발랄했지만, 난 순간 온 머릿속이 걱정으로 가득 찼다.

 강아지를 폴짝 들어 팔 사이에 끼고 일단 부지런히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숨을 헉헉대며 들어서는 나를 보며 수의사도 깜짝 놀란 눈치였다. “혈변을 봐서요. 걱정 돼서 왔어요.” 수의사는 강아지를 받아 안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 강아지는 수의사가 반가웠는지 연신 손을 핥고 꼬리를 흔들어댔다. 겉으로 봐서 알 수 없으니 일단 장 검사를 한다고 했다. 수의사는 긴 면봉을 꺼내 강아지의 항문에 찔러 넣었다가 빼더니, 거기 묻어나온 무언가를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봤다. 

 역시나 별다른 의학적 소견은 없었다. 다만 장에 바이러스가 의심되니 약을 먹이고 아무거나 먹지 못하게 잘 관리하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아지는 몹시 즐거운지, 깡충깡충 뛰며 내 주변을 맴돌았다. 기뻐 날뛰는 녀석을 보니, 내가 무언가에 홀렸었나 싶었다.

 강아지는 단 몇 시간 만에 아무렇지 않은 상태로 돌아왔다. 이후에 생각해보니, 아무거나 주워 먹는 녀석의 습관 탓에 뭔가 문제가 생겼던 것 같았다. 끝이 날카로운 것을 먹어서 어딘가가 살짝 긁혔을 수도 있었다. 앞뒤 따져보지도 않고, 일단 강아지를 끼고 병원으로 달린 내 모습이 좀 바보같이 느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절반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되었다. 손으로 이마를 짚고 “음. 괜찮군.”하면 정말 괜찮았다. 등 뒤에서 들리는 아이의 기침 소리만으로도 병명을 진단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돌 즈음 아이가 열이 올랐을 때, 나는 병원에 전화를 걸면서 서럽게 울었다. 그저 열 조금 났을 뿐인데, 난 도대체 뭘 걱정했던 걸까. 밥을 잘 먹으면 잘 먹어서 걱정, 음식을 가리면 가려서 걱정, 넘어져서 피부가 살짝 벗겨져도 걱정했다. 

 엄마가 처음이라 그만큼 자신이 없었고, 내 어깨에 올라탄 부모라는 부담감이 날 그렇게 예민하게 만들었다. 아이를 여럿 키워본 분들은 일단 하루 정도 있어 보고, 그다음에 결정하라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하루 이틀 있어 봐도 차도가 없거나 더 심해질 경우, 그때 병원에 가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도 지금은 여유를 제법 부린다. 무언가 조짐이 보일 때, 선제적으로 시럽을 먹이거나 휴식을 처방하기도 한다. 

 아이가 꽤 자라고 난 후 스리슬쩍 사라진 줄 알았던 걱정 나무는, 강아지의 컹컹 소리를 듣고 다시금 자라나고 있나 보다. 평소와 다른 컨디션으로 보일 때, 거실 구석에서 갑자기 무언가를 게워낼  때, 가슴 속 저 먼 곳에서 걱정 나무가 부르르 몸을 떤다. 아들이 슬픈 눈으로 머리가 아픈 것 같다고 하면 살짝 겁이 난다. 강아지가 생전 처음 듣는 목소리를 내며 낑낑거릴 때 마음이 혼란하다.


 그러나,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아들이 원하는 건 게임이고 강아지가 원하는 건 간식이다.

 이제 걱정 나무를 뽑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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