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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Nov 11. 2021

너만 보인단 말이야

신묘한 시선의 끝

너만 보인단 말이야. 진짜 진짜로!


 기묘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이가 한창 유아기를 보내던 시절, 왜 그렇게 길거리에 유모차가 많은지 정말 신기했다. 이 동네에 유독 애가 많은가보다, 나는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세발자전거와 킥보드가 훅 늘어났고, 그 많던 유모차와 갓난아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무럭무럭 자라난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나의 온 신경은 유치원 입학에 집중됐다. 입학하고 싶은 유치원의 설명회를 부모가 반드시 듣고 번호표를 받아 직접 추첨에 참여해야 했는데, 경쟁률은 어마어마하게 높았고 난 시작도 하기 전에 미리 좌절했다. 유치원 설명회가 겹치기라도 하면 한 곳을 포기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차 안에서 빵을 먹으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운전석에 앉아 마른 빵을 먹다 보니 마음이 울컥했다. 세상 돌아가는 질서가 엉망이라고, 추첨에 다 떨어지면 유치원은 못 가는 거냐며, 함께 있던 다른 엄마와 함께 툴툴거리며 나라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런데 난 운 좋게도 120명 정도의 지원자 중 20명만 선발하는 유치원에서 놀랍게도 합격 공을 뽑았다. 


 오 나의 신이시여!


 그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자면, 지금도 몹시 부끄럽다. 심각한 표정으로 정부의 유치원 정책을 논하던 날카로운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만세를 부르며 “네! 108번 여기 있어요!” 하며 깡충깡충 제자리 뛰기를 했으니 말이다. 너무 기쁘고 설렌 나머지, 내 목소리 끝이 염소 울음처럼 바르르 떨었다.

 여전히 유치원 문제는 다 해결되지 않았지만 난 터널을 빠져나와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그 시간을 잊은 채 지금을 살고 있다. 물론 그때와는 다른 문제로 더 깊게 고민하지만, 한편으로 꽤 평안하다. 삶의 크고 작은 변화에 요동치지 않기 위해 진중해지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예상치 못한 상황 끝에 들이닥쳤던 부끄러움도 돌아보면 재미있다.

 삶의 우선순위는 계속 바뀐다. 공부가 제일 중요했던 시간을 지나 직업의 틀 안으로 안착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삶이 통째로 바뀌었다. 가족이 생긴 뒤의 상황을 그려본 적 없었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갈등과 위기 앞에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그땐 숨 막히게 힘들었던 일도, 지나고 보니 별것 아닌 시간 속에 스며들었다.   


 요즘의 나는 휴대전화를 목에 걸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초등학생들을 눈여겨본다. 아들은 아직 휴대전화가 없고, 언제쯤 사줘야 하나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유독 아이들의 휴대전화만 눈에 들어오나 보다. 그리고 또 하나, 사뿐사뿐 산책하러 다니는 강아지들이 많이 보인다. ‘강아지 키우는 게 유행인 건가, 다들 많이 키우네.’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과거에도 지금도 강아지는 많았을 것이다.

 산책 줄을 매고 걷는 강아지들의 표정을 살핀다. 사람처럼 치아를 드러내고 활짝 웃진 않아도 무언가 웃는 표정을 짓는 강아지가 있다. 더불어 옆에서 줄을 잡고 나란히 걷는 사람의 얼굴도 밝아 보일 때 난 좀 행복한 것 같다. 


 세상은 역시나 내가 보는 대로 보이는 것.

 사람의 마음가짐이란 게 이렇게 기묘하다. 물건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할 정도로 ‘관심’의 힘이란 참으로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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