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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콘 Sep 08. 2023

[차대왕] 졸본성전투(1/3)

 이미 소문은 퍼질 대로 퍼져 군사들의 사기도 땅 아래까지 떨어져 있었다. 개 중에는 원정을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무장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병사들도 꽤 있었다.




이들을 뒤에 두고 수성은 아무 말없이 적호를 탄 채 계속 진군하고 있었다. 그의 뒤를 진당이 따라가며 수성의 분노를 등 뒤로 느끼고 있었다.



진당은 출군 전 한백의 침소에 들러 그의 상태를 확인했으나, 독이 채 빠지지 않아 한백은 여전히 대화도 힘든 상황이었다. 진당은 그가 아무리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태라 하더라도 나쁜 소식을 귀에 담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아 말없이 다시 나오며 한백의 하인들에게 졸본과 관련된 이야기는 절대 입 밖에 내지 말라 신신당부 하였다.



수성은 뒤에 따라오는 진당에게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옥저군에 대한 대책은 들었소?”




“예. 그들 또한 졸본성 앞에 당도하여 진을 치고 있다 하옵니다.” 




수성은 옥저군이 진을 치고 있을 곳이라면 졸본성의 백성들이 머무는 마을 일 것을 생각하자 화가 치밀었다. 어찌하여 중간에 아무런 방비도 없이 그들이 곧바로 졸본까지 들어올 수 있었는가.



수성이 아는 옥저군은 그런 계책을 세우는 족속이 절대 아니었다. 뭔가 잘 짜인 함정과 같은 상황이었다. 




“부여와 옥저가 손을 잡은 적은 내 기억에는 없소.”




수성의 의중을 간파한 진당은 그의 말에 자기 생각을 곧바로 말했다.




“이 늙은이의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아무래도 한나라가 뒤에서 원조를 한 듯합니다.”




진당의 말을 들은 수성은 말없이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한나라의 도움이 사실이라면 이 방어전은 생각보다 훨씬 거칠고 고될 것이다. 이쯤 되니 수성은 국왕이 제발 계획이 있길 바라게 되었다.



수성군은 졸본성에서 이백리는 떨어져 있는 들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멈춰 섰다. 이곳에서 부여군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이미 부여군은 그들이 뚫었어야 할 곳들에 지내는 부여민들의 도움으로 큰 소란이나 전투없이 조용히 졸본성 부근까지 내려와 있었다. 수성에게는 군사 5천 뿐이었으나, 그가 뚫리면 부여군은 바로 졸본성을 공격할 수 있었다.



수성은 병사들에게 대열을 맞추라 지시하며 큰 소리로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병사들을 고무하기 시작했다. 




“두렵느냐!”




병사들은 말 위에서 아무 말도 없었다. 수성은 더 큰소리로 외쳤다.




“이 성을 빼앗기면 너희의 가족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병사들은 수성이 내뱉은 가족이라는 단어에 크게 고무되기 시작했다.  




“너희의 몸이 고구려에게는 마지막 방패다! 너희는 위대한 고구려군이며, 그 점을 저 부여군에게 똑똑히 각인시키도록 하라!”




병사들은 그의 말에 창과 칼을 위로 뻗으며 고함으로 답했고, 수성은 그들을 한 번씩 훑어본 후 다시 부여군을 향해 적호의 머리를 돌려 적군의 동태를 살폈다. 부여군은 보고된 수와 다르게 적어 보였는데, 이는 그들이 선봉부대였다. 하지만 수성군의 수적 열세는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무장한 모습을 보아하니 과연 한나라의 도움을 꽤 받은 듯 무기들이 갖춰질 대로는 갖춰져 있었다. 부여군들은 적호를 발견하고 들판 아래에 자신들의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대열이 갖춰지자 병사들 사이로 말을 탄 자가 앞으로 나와 외쳤다.




“고구려는 들으라! 우리는 부여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이곳까지 왔도다! 길을 비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적호가 그를 보며 낮게 으르렁댔다. 수성은 앞으로 나와 창으로 부여군을 겨냥하며 외쳤다.




“이 적호가 오늘 포식할 수 있겠구나!”




 부여의 선봉장은 분한 듯 창을 높게 들어 자기 뒤에 있는 병사들에게 진격을 명했고, 부여군이 신호에 맞춰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때 적호가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울자 그들은 멈칫거렸고, 부여의 선봉장은 그런 그들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진격명령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홀로 서 있는 수성 그 자체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더군다나 저 언덕 뒤로 얼마나 더 많은 군이 줄지어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이는 모두 수성이 그들에게 뿜어내는 패기의 결과였다.



결국 참다못한 부여군 장군이 함성을 지르며 돌진을 명했고, 부여군들이 두려움을 안은 채 자신들의 장군을 따라 언덕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수성은 부여군이 언덕 중간쯤까지 치고 올라오자 창을 들며 돌격했고, 언덕 뒤까지 이어져 있던 고구려의 기마부대의 절반이 부여 못지않은 함성소리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진영은 창 칼을 맞대었다. 




적호는 순식간에 거대한 덩치로 열댓 명 가까이 되는 부여군을 밀어냈다. 그중 한 명을 입에 물은 적호는 부여군을 입에 문 채 머리를 흔들어댔고, 그 병사의 비명이 울려 퍼지자 적호 주변의 창은 머뭇거렸다.



수성은 격하게 움직이는 적호 위에서도 능숙하게 창을 휘둘러 보이는 족족 부여군을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기마병들은 언덕에서 내려와 일렬로 부여군을 한 차례 관통하고는 먼 평지에서 우회하여 다시 부여군의 무리를 뚫기 위해 돌진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부여군의 대군은 고구려의 기마병들로 인해 두 동강, 세 동강이 나며 우후죽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기마병을 피하고자 뒤돌면 마주하는 적호와 수성의 무예에 부여군은 소리를 지르며 죽어 나가고 있었다.



진당은 언덕 위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전투가 일어나기 직전 수성으로부터 명을 하나 받았는데, 부여군이 두 차례 정도에 나눠 공격을 감행할 터이니 초반에는 도술을 아껴두라는 것이었다.



진당은 수성군이 격파하는 부여군의 뒤로 먼 곳에서 큰 무리의 병들이 또 접근하는 것을 발견하면서 실로 수성이 전쟁에는 통달한 투신이라 생각했다. 




수성은 부여군의 전진부대와 싸우기를 삼십 분 여 즈음 되었을 때, 창을 위로 길게 뻗어 신호를 보내 기마병들과 함께 언덕 위로 퇴각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기마병들은 적호의 곁으로 달려 함께 언덕 위로 향했는데, 이에 부여의 선봉장은 수성을 쫓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병사들에게 진격을 다시 명했고, 부여군은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자신들을 따라 언덕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본 수성은 다시 한번 창을 높게 들었고, 이 신호에 맞춰 기마부대는 우측으로, 수성은 좌측으로 갈라졌다.



그들은 부여군의 양쪽으로 돌진하여 내려온 후 그들의 후미를 다시 한번 공격했고, 그와 동시에 언덕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진당이 남은 절반의 기마병들에게 공격을 명하자 그들이 천둥과 같은 함성으로 언덕을 넘어 돌진했다.



이 방법은 부여군을 혼란에 빠트리게 하기엔 충분했고, 부여군은 언덕에 오르지도 못한 채 창을 어디로 겨눠야 하는지도 혼란스러워했다.



부여군을 세 덩어리로 나누고 중앙에서 만난 기마부대와 수성은 수성의 지시에 따라 부여의 선봉대를 관통했고, 수성이 퇴각이라 외침과 동시에 다시 언덕으로 올라갔다. 이와 같은 전술이 두세 번 적중하면서 부여의 선봉대는 순식간에 절반을 잃었으면서도 언덕 하나 점령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졸본을 지키고 있던 해치장군은 8천 명의 옥저군을 남쪽 성벽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노련한 장수였다.



졸본성에 배치되기 이전에는 주로 옥저와 백제를 마주하는 원정을 담당했는데, 그는 머뭇거림 없는 공격과 동시에 늘 미소를 머금고 있는 표정으로 인해 적군들에게 큰 위압감을 주었다.



정돈되지 않은 수염은 그의 광대까지 덮여 있었고, 도깨비와 같이 크고 둥근 눈은 사백안이어서 그 누구도 정면으로 그와 마주 보고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무예가 출중했지만 절대 자만하는 법이 없어 전투를 맡겼을 때 실패한 적이 없었고, 적군의 계략에 넘어가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의 괴력으로 어떻게든 살아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그도 나이가 들어 검은 수염이 흰 수염으로 바뀌고, 도깨비와 같은 미소도 주름이 붙기 시작하였으니, 국왕은 그의 노고를 인정하지만 그의 무병장수를 위해 졸본성을 지키는 임무를 맡겼던 것이다.



허나 수도가 바뀐 후 졸본에는 많은 군사들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천 명 정도만 남게 되었고, 이 규모로는 공성전을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을 해치는 알고 있었다.



그나마 기대를 걸어볼 만한 것은, 이른 새벽 국왕에게 보낸 사자가 돌아와 지원군을 약속했으니 분명 버티기만 하면 누구라도 지원이 올 것이었다.



어느새 옥저군과 대치한 상태로 오전이 지나 해가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르자, 옥저군은 그 높은 졸본성을 향해 언덕을 올라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해치장군은 곧바로 궁병들에게 공격을 지시했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옥저군은 사다리를 앞세워 올라오기 시작했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자들을 호위하기 위해 성벽 아래에서 불화살이 날라오기 시작했다. 해치장군은 기껏 해야 옥저군이라기에는 저들의 장비가 잘 갖춰진 옥저군의 기세에 놀랐다.



그들은 갑옷은 취약할지 몰라도 손에 든 무기들 만큼은 고구려군들과 견줄 만큼 탄탄했다.



사다리는 불화살의 지원과 함께 성벽에 다다르기 시작했고, 많은 수의 사다리가 고구려의 궁병들로 인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의 사다리가 안착에 성공해 해치군은 옥저군들을 성벽 위에서 맞이하기 시작했다. 




 전투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옥저군은 사다리 공격과 동시에 성문을 공격했고, 해치장군은 적은 수의 병사로 겨우 사다리공격만 막아 내는 실정이었다.



그는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빠른 검술로 성벽 위에서 적들을 베어나가 성문 앞까지 당돌했고, 가지고 있는 모든 석재와 목재로 성문을 막으라고 명했다.



하지만 어느새 성문은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 틈 사이로 한 두 발씩 날아오는 불화살들로 인해 황급히 성문을 막으려던 몇몇 군사들은 해치 바로 옆에서 불이 붙어 비명을 질렀다.



해치의 작전병 한 명이 그에게 뛰어와 외쳤다.




“장군님! 더는 버티기 힘들 것 같…”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가서 한 놈이라도 더 베도록 해라!”




그는 망연자실한 속내를 보이지 않고 작전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패대기치듯 내쳐진 작전병은 투구를 바로 쓰고 다시 황급히 다시 성벽 위로 올라갔고, 해치는 심난한 표정으로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전투가 서너시간쯤 되었을 때, 옥저군의 불화살들로 인해 성벽과 내부에 불길이 치오르기 시작했고 성벽 위의 군사들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해치장군은 성벽에서 퇴각하라 명하기 위해 황급히 눈앞의 적을 처치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남문은 절반 이상이 불타고 있는 동시에 옥저군이 거의 점령한 듯 보였고, 동문과 서문도 서서히 밀리고 있는 듯했다. 그는 기운이 빠진 어투로 혼잣말했다.




“아… 이렇게 끝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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